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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무참히 살해한 현행범 얼굴 왜 감추주나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10-21 00:00

경찰이 서울 논현동 고시원에서 6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7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방화·살인 피의자 정상진(30)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또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0일 오후 5시20분쯤 형사과 사무실에서 정상진과, 그가 범행에 사용했던 흉기 등 압수품을 공개했다.

정은 챙이 있는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상·하의, 흰 마스크를 쓰고 형사과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팔은 포승으로 묶인 상태였고, 손은 수건으로 덮여 있었다.

정이 쓰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는 그가 범행 당시 쓰고 있던 것이 아니라 경찰이 제공한 것이었다. 그가 범행 당시 사용했던 모자와 마스크는 프레스라인(press line) 바로 앞 원탁 책상에 흉기 등 다른 압수품과 함께 놓여 있었다.

경찰은 지난 3월 안양 초등학생 납치·살해범 정성현(39)을 체포해 경찰로 압송할 때도 모자에 점퍼를 뒤집어씌웠고, 일산 초등학생 납치·성폭행 미수범 이명철(41)에게도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 얼굴이 전혀 드러나지 않게 했다.

이 때문에 "경찰이 피해자 인권보다 피의자 인권 보호에 더 신경을 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찰청 훈령에 따라 피의자 얼굴 가려"

강남경찰서 김갑식 형사과장은 정의 얼굴을 가린 것에 대해 "얼굴을 공개하면 인권침해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그 책임은 우리(경찰)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라며 "경찰청 지침에 따라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왜 그런 지침을 내렸는지 물었다. 경찰청 홍보1계 김희종 경감은 "흉악범의 경우 모방범죄나 후속범죄 예방 차원에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걸 안다"며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의 사생활과 인권 보호라는 두 가지 원칙이 상충하고 그 논란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아 (피의자) 인권보호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처음부터 피의자 얼굴을 가린 것은 아니다. 1994년 부유층을 납치·살해하고 시체를 소각한 이른바 '지존파' 사건 범인들이 현장 검증할 때 그들의 얼굴은 공개됐다. '지존파'를 모방한 '막가파' 사건(1996년), 4세 여아를 토막 살해한 '최인구 사건'(2001년) 때도 얼굴과 이름이 공개됐다.

그러다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수사와 피의자 공개 관행이 변했다. 당시 담당 경찰관이 피해 여학생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는 등 인권침해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수사 관행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경찰청은 2005년 10월 경찰청 훈령으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마련했다. 여기에 "경찰서 안에서 피의자와 피해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초상권 침해금지' 규정이 포함돼 있다.

이번 고시원 방화·살인 피의자 정상진의 얼굴을 가린 것은 이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일 언론은 흉악범 얼굴 공개

경찰의 이런 규정에 대해 법원과 검찰에서조차 "지나친 피의자 보호"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안양 초등학생 납치·살해범과 관련해 "자백을 했고 확실한 물증까지 나왔는데도 경찰이 계속 그의 얼굴을 가려줄 필요가 있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도 "범행 증거가 매우 명확한 경우나 용의자가 법정에서 범행을 자백한 경우에는 공개할 수 있다고 본다"며 "중범죄자에 대해서는 범죄자의 초상권보다 범죄 예방의 공익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에도 흉악범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 피의자에 대해서는 언론이 실명과 얼굴을 그대로 공개한다. 지난 6월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가토 도모히로(25)라는 청년이 행인들에게 칼을 휘둘러 7명을 살해하고 10명을 다치게 했을 때 일본 방송과 신문들은 그의 얼굴 사진과 이름을 보도했다. 경찰은 드러내놓고 그를 카메라 앞에 세운 것은 아니지만 검찰 송치 등 이동할 때 모자나 마스크, 옷 등으로 얼굴을 덮어씌우지 않아 자연스럽게 언론 카메라에 노출되도록 했다.

미국 AP통신은 경찰이 체포한 용의자들의 얼굴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유력 언론사들의 홈페이지도 용의자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한편, 강남경찰서는 21일 정상진에 대해 살인 및 방화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은 "'달콤한 인생'이라는 조직폭력배 영화를 보고 주인공이 멋있다고 생각해 범행도구를 준비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이 전했다.

국과수는 "피해자에 대한 부검 결과 사망자 6명 중 5명은 피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고, 1명은 추락에 의한 장기 손상으로 숨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안준호 기자 liba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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