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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시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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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8-09-12 00:00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하필 추석을 앞두고 천상병의 ‘귀천’을 떠올렸다.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있다 하지만 ‘귀천’만큼 서정적이지는 않다. 인간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이처럼 간절하게 담을 줄 아는 시인의 무채색 언어가 놀랍다. 시의 곳곳에서 그의 내면의 숙성이 손에 잡힐 듯 와 닿는다.

도연명의 시에는 벼슬과 명예를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장부(丈夫)의 기개가 뚜렷하다. 하지만 천상병은 굳이 속마음을 감춘다. 오직 돌아가야겠다는 시인의 의지만 숨을 죽이고 번득인다.

추석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매년 길바닥에서 생고생을 하고서도 이듬해 연어 떼처럼 고향으로 향했다. 그 길을 가는 우리의 마음은 매 한가지다. 우리는 돌아 가야만 했다. 아마도 추석 귀성은 우리의 본능일지 모른다. 

그러니 이국에서 추석을 맞는 동포들의 마음은 편안치 않다. ‘귀소본능’을 누르고 있으니 들뜬 마음이 진정될 리 없다. 적어도 스무 살 가까이 한국에서 자라다 온 동포라면 그 본능에서 벗어 날 수 없다.

한민족은 유달리 한(恨)이 많다. 보름달만 보아도 울컥 설움을 느끼는 게 우리의 보편적 정서다. 한이 많음으로 상처도 깊다. 상처에는 아픔이 따르기 마련. 자연 내 주변 중심으로 생각이 흘러 갔다.

그러니 우리라는 공동체의 부름에는 소홀했다. 가족끼리, 동창끼리, 고향사람끼리는 잘 뭉친다. 그러나 서로를 묶는 울타리가 사라지면 불신의 방패를 높이 든다. 자신이 몇 차례 당해 보고 주위의 과장된 전언(傳言)까지 더해져 점점 도가 심해진다.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비정함이 얼마나 우리를 힘들 게 하는지.

우리의 과거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의 전통은 작은 음식일 망정 나누는 정담을 인지상정으로 알았다. 그러나 일제를 거치고 천박한 자본주의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우리의 아름다운 과거는 숱한 상채기로 제 모습을 잃었다.

이번 추석 나는 또 고향에 가지 못한다. 벌써 10년째다. 하지만 마음은 늘 고향에 가 있다. 그곳에 이제 누가 있겠나. 동구 밖까지 나와 기다리던 어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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