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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얼쑤, 좋다! 신명 나는 축제의 한판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8-18 00:00

“이젠 다문화 사회 초청에 더욱 힘쓸 때”

유구한 역사를 지탱해 온 우리민족의 고유문화는 예술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다. 우리에게 있어 음악은, 춤은 뛰어난 테크닉을 뽐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수동적 관객의 찬사나 경외심 따위를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의 예술은 연주자와 무대 밖 관객들이 모두 흥겹게 즐길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한다. 이 마당에선 연주자와 관객의 경계가 사라진다. 북소리는 마당에 모인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이 울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대 위의 사람들과 하나되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닌다. 어떤 이는 “한국인에겐 축제문화가 없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이 허술한 평가는 우리네 ‘노는 마당’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뿐이다.

8월 15일, 써리 아트 센터에서 개최된 ‘건국 60주년 기념축하 공연’은 한민족의 신명을 재확인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밴쿠버에서 활동 중인 한국 무용단(단장 정혜승)과 한창현 전통예술원이 마당에 멍석을 깔면서 축제는 시작됐다. 물론, 고국에서 온 손님 ‘정동극단’은 이 멍석 위에서 걸쭉하게 노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공연은 예정보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됐지만, 이 날 모인 400여 명 관객들은 여전히 ‘더 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모처럼의 술자리가 일찍 끝나게 된 걸 아쉬워하는 주당들처럼 관객들은 “2차 가자, 3차 가자!”를 연호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을 들썩이게 했던 한 바탕의 놀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공연이 끝나고, 기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씁쓸함과 조우해야 했다. 공연 자체와는 전혀 무관한 씁쓸함이었다. 이날 행사에 모인 사람들은 몇몇 정치인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한인이었다. 다문화 사회인 밴쿠버에서, 우리들은 우리들만의 잔치를 한 셈이었다.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은 자식을 꽁꽁 숨겨놓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굳이 팔불출 부모가 될 생각은 없지만, 자랑거리를 일부러 감출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른 집 자식과 내 자식을 굳이 비교할 이유는 없겠지만, 같은 아시아계로서 중국 커뮤니티와 일본 커뮤니티가 누리는 지위가 솔직히 부러울 때가 있다. 캐나다와 엇비슷한 고국의 경제규모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인 커뮤니티 역시 밴쿠버 지역 사회의 한 축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실상은 우리의 자부심을 종종 외면하곤 한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선 ‘중국 커뮤니티의 날, 일본 커뮤니티의 날’은 마련하면서도, 한인들을 배려하는 행사는 기획하지 않는다. 한인들의 비중이 꽤 높은데도 말이다. 캐나다인들 중 일부는 우리의 문화를 중국 문화의 아류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 역시 씁쓸한 일이다.

이번 ‘건국 60주년 축하 기념공연’은 우리 문화의 독특함을 알릴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그 기회를 온전하게 살리지 못한 게, 한바탕 신나게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너무 아쉽다. 앞으로 열릴 축제의 초청장은 좀 더 세심하게 만들어야겠다. 다문화 사회에 자랑하고 싶은 ‘자식’을 더 이상 꽁꽁 숨겨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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