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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값으로 싱싱한 재료 사서 요리해 먹죠”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3-14 00:00

묵밥 오명근씨(킹스웨이)

▲ 36가지 육수 재료를 행여 한가지라도 빠질새라 꼼꼼하게 옹기에 담아서 사진 찍기 좋게 차려 놓은 모습.  평소 남편의 이런 자세에 부인은 오히려‘남자가 극성스럽다’고 핀잔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한국, 일본의 예쁜 그릇은 몽땅 사다 놓은 듯 싱크대 수납장 안에 멋스러운 도자기 그릇이 가득하다.

“건강에 해로운 것: 담배·술·과로·과식·욕심·불규칙적인 생활, 건강에 이로운 것: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정확한 시간·세끼 챙겨먹고 욕심 없는 마음”

몸에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해 놓고 ‘나쁜 건 멀리하고, 좋다는 건 열심히 하는 것’이 건강의 첫 번째 비결인 오명근씨. 여자들도 혼자 살다 보면 귀찮아서 대충대충 해먹기 마련인데, 혼자 살면서도 한끼 굶는 법이 없는 그는 평생 한번뿐인 한끼를 절대 소홀하게 차려 먹지 않고 제 시간에 맞춰 직접 조리를 해서 식사를 한다.

그렇다고 먹성이 좋거나 식탐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요리가 재미있어서 음식점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나면 메모를 했다가 그대로 만들어보며 점점 솜씨가 늘었다는 그.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으니 음식관련 칼럼 맡은 지 십여 년 족히 넘은 기자도 ‘묵밥’에 배추로 끓인 ‘해물배추국’ 잘못(?)얻어 먹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무슨 대금산조 선생이 요리로 아줌마 무릎을 꿇린담. 덕분에 60살이 넘은 지금까지 영양제니 비타민이니 일체 먹어 본 적이 없다는 그. 영양제 살 돈으로 아프기 전에 미리 미리 싱싱하고 좋은 재료 사서 삼시 세끼 정확히 챙겨먹으면 그게 건강비결이고 장수 비결이라는데 할말 없음. 누가 그걸 모를까. 귀찮아서 못하고 몰라서 못하는 게지.

그의 집을 가면 거실과 주방 사이에 하얀 플라스틱 통 두 개가 있다. 뚜껑을 가만히 열어보면 하나는 쌀통, 하나는 비어있거나 채워져 있는 이상한 통이다. 흔하디 흔한 흰색 플라스틱 그 통이 텅 비어있을 때 열어 본 사람은 그것이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묻게 되고, 아무리 유추를 해도 도무지 그 용도를 알아 낼 재간이 없다. 냄새도 흔적도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득 차 있을 때 열어 보는 사람은 횡재하는 거다. 이 말은 곧 자주 열어보라는 메시지라 생각해도 좋다.

▲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올 것 같지 않은 단아한 모습의 오명근씨. 일주일에 두번 교민들에게 무료로 대금을 가르치는 일 외  명상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지내는 그의 취미는 단연 요리. 요즘 한국 주부들 사이에서 화제인 살림꾼 이효재씨가 쓴‘효재처럼’ 요리 책도 그의 집에서 찾아냈다. 책꽃이에는 대한민국 최고 요리사들의 요리책이 종류별, 지역별, 메뉴별로 총 망라되어 있다. 요리는 대접해도 책은 절대 빌려주지 않는다는 그의 집에서‘효재처럼’을 빼앗다시피(?) 빌려왔다.

이 비밀의 통, 이름하여 ‘오명근의 비움 바구니’다. 이 통은 그에게 요리를 얻어 먹고 난 손님들이 답례로 무언가 손에 들고 오면 담아 두는 보관함 같은 것이지만, 이틀이면 과일이며 떡, 과자가 가득 차는 이 통의 이름이 ‘비움 바구니’가 된 것은 채우는 사람도 비워내는 사람도 손님들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동화에 나오는 알라딘의 요술램프도 아닌데 비우면 채워지는 통? 결국 ‘무소유’가 ‘세상을 소유하는 것’이라는 심오한 그의 철학이 배어 있다.

“츠음에 국수나 묵밥이나 한 그릇 같이 먹자고 부르믄, 사람들이 자꾸만 뭔가를 가지고 와요. 그러믄 그 통에 담아두었다가 사람들이 가고 나서 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조금씩 몰래 나눠주고 통을 비워요. 아, 그런데 그 사람이 또 뭔가 다른 것들을 들고 와서는 통을 채웁디다. 허허허……”

하, 그렇게 깊은 사연이…… 하지만 후다닥 30초면 끝날 이야기를 충청도 버전으로 설명하니 명 짧은 사람 숨 넘어 갈 지경이다.

그는 소위 이민조건해제를 위해 식당을 운영한 적이 있다. 평생 대금만 만들고 연주한 대금선생이 운영하는 일식당, 게다가 느릿느릿한 말투에 재료 중에 한 가지라도 빠지면 롤(Roll)을 풀어서 다시 싸진 않았을까. 모르긴 해도 그 집 손님들 ‘속이 터졌거나 복이 터졌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게 뻔하다.

허, 말투와 칼질은 반비례 하는 걸까. 요리를 시작하는 순간 그의 손길이 날렵해 지는가 싶더니 도마 위 재료들이 그의 칼질에 ‘찍’소리 못하고 고분고분 토막나고 꺾어지고 만다.

놀라서 동그랗게 눈을 뜨는 걸 본 그가 서랍을 열어 뭔가 부스럭 부스럭 꺼내 보여 준 물건은? 흐미, 조리사 자격증이다. 2003년 취득했노라며 당당하게 꺼낸 그것은 대한민국 국가공인기관 직인이 금박으로 ‘콱’ 박혀있다. 벌써 5년이 지났는데도 광택 하나 죽지 않고 ‘때깔’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걸 보니 아마도 그에게 인간문화재 이수증만큼이나 소중한 게 틀림 없다.

충청도 버전의 느릿한 말투에 늘 ‘허허’ 웃기만 하는 그는 지진이 나도 물 한 모금 마시고 집 밖으로 나갈 것만 같은 사람이지만, 요리를 시작하면 성격이 나온다. 특히 손님을 초대한 날은 그 극성이 ‘극’에 달한다.

묵밥 하나 만드는데 36가지 재료를 넣고 10시간씩 고아낸 국물로 만드는 건 흔한 일. 자동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킹스웨이에서 코퀴틀람 한인 마켓까지 옆집 드나들 듯 들락날락 하며 필요한 재료를 한가지도 빠짐없이 갖춰 요리를 시작하는 그. ‘이제 고만~’ 말리고 싶지만 그가 만든 요리를 맛보고 나면 젊지 않은 연세(?)에 힘들고 ‘왜 그래야만 했던가’ 그 대답은 요리에 들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45호 대금산조 이수자인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사람들에게 무료로 대금 지도를 하고 남는 시간은 책을 보거나 명상을 하며 지낸다. 학생인 막내 아들을 걱정하던 부인은 지금 한국에 가 있다. 밴쿠버로 곧 돌아올 예정이지만 ‘사랑방’, ‘풍류방’인 그의 작은 아파트는 앞으로도 대금을 배우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활짝 문을 열어둘 생각이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 재료   도토리묵, 쑥갓, 김, 신 김치
육수: 가부랭이, 다시마, 새우, 멸치, 무, 배추, 파, 양파, 생강, 마늘, 송이, 느타리 버섯
양념장: 간장, 고춧가루, 들깨, 참기름, 깨소금, 매운 고추, 맵지 않은 고추, 설탕, 다진 파, 다진 마늘

만드는 법
① 가다랭이와 육수 재료를 모두 넣고 3시간 이상 우려낸다.
② 끓인 육수의 속을 모두 건져내 고운 체로 걸러 맑게 가라 앉힌다.
③ 신 김치를 잘게 썰어 꼭 짠 다음, 참기름, 깨소금, 마늘, 설탕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④ 도토리묵을 얇게 편으로 잘라 다시 고운 채로 썬다.
⑤ 묵을 그릇에 담고 뜨거운 육수를 부어 김치를 얹은 후 쑥갓, 김을 올려 장식한다.

오명근씨의 한마디!
■ Cooking Point
① 묵밥은 조리과정이 필요 없는 만큼 육수가 관건. 배추와 멸치를 비린내가 날 정도로 많이 넣으세요.
② 신 김치는 물기를 꼭 짜서 참기름 듬뿍 넣어 고소하게 무쳐주세요.
③ 육수를 뜨끈하게 해야 묵밥 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 Cooking Tip
① 김은 구워서 비닐에 넣고 주물러서 가루를 뿌려도 먹기 편합니다.
② 도토리묵은 납작하게 썰어 채를 썰어 물에 살짝 데치면 더 쫄깃합니다.
③ 도토리 묵을 썰어 살짝 말려서 꼬들꼬들한 묵밥으로 만들어도 맛있어요.
④도토리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청포묵으로 만들어도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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