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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에 올바른 우리 생활문화 전하고파”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1-17 00:00

특별한 과거, 이 분야 전문가 '왕년에...' 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한국생활문화학회 이사 현 ‘예랑’ 대표 이경란씨

철종임금(조선 제25대 왕1849~1863 재위)의 5대 손녀인 이경란씨. 그는 역대왕손 가운데 성공한 CEO로 꼽히는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 이우영회장과는 사촌지간이다.

우리나라 최후의 정경부인인 할머니와 살며 어릴 때부터 궁중의 예법과 문화를 보고 배우며 자랐다. 대학에서 가정학을 전공하고 주부로 지내던 그는 아이들이 장성하고 난 49세에 성신여대 대학원에 입학, 우리 전통 ‘반상문화’ 논문으로 석사 학위, ‘재북미 한인청소년을 위한 한국문화교육프로그램 개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왕손이면서도 누구보다 소박하고 근검절약하며 살아 온 그는 성신여대 강의를 끝으로 밴쿠버로 이민, 써리에서 ‘예랑’을 운영하고 있다. 

◇ 밴쿠버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한국어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까”하는 관심이 애정으로 바뀌어 우리 생활문화 홍보대사로 나선 이경란씨. 늦은 나이에 시작해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배워서,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으로‘우리 생활문화’를 선택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예랑’에서는 아기의 돌잔치 상과 폐백, 다도, 혼례 큰상 차림을 전통 방식으로 재현해 대행해 주고 있다.

 ■밴쿠버의 우리 문화 지킴이 자청

외국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우리 전통생활문화를 그저 호기심과 관심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반질거리는 장독대와 우아한 한복의 고운 선의 흐름을 보면 가슴 한 켠이 ‘찡’해 옴을 느낀다. 우리 전통문화는 그런 것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바라보면 느낌으로 고요하게 전달되는 그런 강한 터치가 있다.  

2002년 밴쿠버에 도착한 후 “한국문화의 불모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경란씨. 토요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우리 한인2세들을 보며,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훗날 그 아이들이 자라나 우리 생활문화를 ‘불편하고 형편없는 구시대적인 소산’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 그 ‘누군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일이 곧 이 땅에서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우리 문화를 가르치고 지켜야 할 교육의 한 ‘축’이라 여기며, 2백 여벌의 한복과 전통 혼례에 필요한 의복들을 마련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밴쿠버 속의 한국생활문화 전시관

그의 집은 밴쿠버 속의 한국 생활문화 전시관 같은 곳이다. 우리 전통 족두리를 전시 해 둔 현관입구에서부터 한지(韓紙)를 곱게 물들여 만든 ‘지함(紙函)’, 병풍으로 나눈 거실에는 아이들의 돌상 차림에 필요한 비품과 사진, 전통 문양의 고가구가 놓여 있고, 전통 한실로 꾸민 지하에는 다도(茶道)예법을 배울 수 있는 공간과 전통 다실, 그 곁으로 우리 한복 2백 여벌이 전시되어 있는 옷방이 마련되어 있다. 다기와 놋그릇, 화로,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우리 전통 소품들은 모두 한국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이다.
“한국에서 짐을 보낼 때 고가구와 소품들만 한 컨테이너를 넘었더니 이삿짐 회사 직원이 ‘외국 가서 전통 한정식 음식점 하실 거냐’고 물었어요. 화로만 10개를 가지고 왔는데 한 개가 깨어지고 나머지 가구들도 흠집 하나 없이 고스란히 와서 참 감사했어요.”
 
■철종의 생가 ‘누동궁’에서 출생

철종임금의 생가인 ‘누동궁’에서 태어난 이경란 씨. 당시 ‘누동궁’의 주인은 그의 친 할아버지인 청풍군 이해승씨였다.
곱디고운 단아한 자태와 달리 1949년생 소띠인 이씨. 내년에 환갑을 앞둔 나이에 외국에서 ‘우리 생활문화’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는 지금 자신의 열정에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어릴 때 내가 우리 생활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매달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늘 어른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야 하고, 외출에서 돌아와서도 절을 해야 하는 예법 속에서 살면서 이 다음에 절대 예절, 가문 따지는 집안에는 시집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왕실가문 못지 않은 고지식함과 전통 따지는 경상도로 시집을 갔어요.  그것도 7남매 맏며느리로 막내 시동생이 초등학생이었어요.”
그의 나이 마흔이 되면서 생각이 서서히 바뀌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우리생활문화 전문가가 된 것은 서울의 유명한 한정식 집을 가서 음식을 먹고 나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는 무언가 부족하고 찜찜한, 그런 답답함 같은 사소한 이유에서 출발했다.
“시동생까지 모두 출가시키고 아이들 웬만큼 키워놓고 눈을 떠보니까 제 나이 쉰이 코 앞이더군요. 그래서 이왕 공부할 거면 할머님과 어머님이 살아계시는 이 때 늘 저를 답답하게 했던 그 부분을 정확하게 한번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입학했죠.”
그때부터 할머니와 어머니, 고모…… 살아계시는 웃어른들을 찾아 다니며 자료를 정리하고 하나씩 정확히 배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83세까지 사신 할머니를 모시고 상궁나인 3명과 결혼 전까지 함께 생활하면서 궁중의 법도 및 예절과 음식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힌 그는 어렵지 않게 빠른 기간에 익힐 수 있었다. 당시 집안에 남아 있는 수저 하나까지 귀한 자료로 쓰일 수 있어 석사과정을 졸업할 때 학교에서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우리문화 엄청난 교육적인 힘 발휘

“우리 생활문화는 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교육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차분하게 흐르는 한복선의 부드러움처럼 정적인 듯 하면서도 올바른 인성 교육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우리 생활문화죠.”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품위 있는 몸가짐과 행동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우리 전통 생활문화의 역할이다. 그의 말은 우리 생활문화의 불모지인 이 땅에서 단순히 1년에 한 두 번 한복을 입히고 절하는 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우리 문화를 가르쳤다’고 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외국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체험의 기회를 주장하기엔 이곳 환경과 부모님들의 인식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조급했다.
“예법이란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상품 같은 것이 아닙니다. 외국에서도 명가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그들만의 예법을 가르치지 않고 체험해서 익히도록 합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예법이 품위가 되어 풍기는 것처럼, 우리 전통생활문화 속에도 세계 어는 문화에도 뒤지지 않는 기품이 담겨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 선조들의 멋스러움과 품격, 지혜로움은 저절로 체득하게 되는 원천이며 힘이라고 했다. 그렇다 해도 더러 상업적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의 눈길 속에서 이 땅에 우리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의연하게 ‘예랑’을 열었다. ‘예랑’은 우리 전통 돌상 차림과 폐백을 대행해주고, 한국전통음식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헨더슨 몰’에서 폐백시연과 10월에는 ‘구정 상차림’시연도 했다.
 
■’한국문화원 개설하는 것이 꿈

앞으로 그의 목표는 이곳 밴쿠버에 한국문화원을 개설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이벤트로 우리문화를 시연하는 것에서 그칠 게 아니라, 어머니들에게 우리 다도와 상차림을 가르쳐 학 한글학교마다 어머니들이 주축이 되어 꾸준히 아이들을 지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한복 입는 날도 지정해 생활 속에서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일깨우며, 젊은 부모들에게 그들이 어릴 때 받았던 백일상, 돌상, 폐백, 다도 등은 물론 음식문화까지 곁들인 우리 문화를 상품으로 개발하여 국제적인 상품으로 개발하고 싶은 꿈도 가지고 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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