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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웰 록과 마그네틱 힐, 그리고 르나르의'뱀!'

안봉자 시인 lilas1144@yahoo.co.kr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11-07 17:16

안봉자 시인의 <빨강머리 앤> 테마 여행기(6)
다음 날 아침, 식사 전에 잠시 남편과 산책하러 나갔다. 지난밤엔 늦게 들어오느라 못 본 리조트 정원이 무척 넓고 깨끗했다. 우리는 정원 옆을 흐르는 강가로 내려갔다. 제법 폭 넓은 강이 새벽안개 속에 길게 누워서 조용히 여명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뉴브런즈윅 주의 주도 프레드릭턴 市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른다는 세인트존 강 (Saint John River)이다. 하늘엔 찌그러진 열여드레 달님의 창백한 이마가 소슬하고, 가까이 자작나무에서 멧새 몇 마리가 새날을 조율하느라 분주했다. 꼭 어느 조용한 강 마을 휴양지에 온 기분이었다.

      뉴브런즈윅 주는 퀘벡의 동남쪽에 접해 있고, 캐나다의 대서양 관문 역할을 하며, 캐나다에서 영어와 불어를 공식으로 사용하는 유일한 주다. 중요 산업은 목재와 사냥이고, 세계에서 제일 큰 바닷가재 (Lobster)로도 유명하다. 때 묻지 않은 원시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 그리고 세계 어디서도 보기 드문 신기한 자연 현상들은 뉴브런즈윅의 자랑거리다. 바람이 세서 나무의 성장이 느리고 단풍이 기막히게 곱단다.


<▲차창에 스쳐가는 뉴브런즈윅의 평화로운 농촌 풍경: 세인트존 강 줄기 따라 이런 Scenic Drive가 계속된다. 우뚝 선 건축물들은 곡물이나 마초를 저장하는 silo.  >


      일행은 아침 아홉 시경에 호텔을 출발, 베이오브펀디(Bay of Fundy)로 향했다. 그 유명한 타이달 보어(Tidal Bore)의 현장인 호프웰록 (Hopewell Rocks)의 기이한 바위들을 관광한 뒤, 몽턴(Moncton) 공항에 들려 이날 새로 합세하는 한국 관광객 5명을 픽업, 몽턴 근교의 마그네틱 힐(Magnetic Hill)을 체험하러 가는 날이다. 그런 다음 세계에서 가장 긴 해양 다리 컨페더레이션 브리지를 건너 PEI에 들어갈 것이다.   


<▲뉴브런즈윅의 주도 프레드릭턴을 가로지르는 Saint John 강 선착장의 새벽:  우리가 하룻밤 머문 Riverside Resort 정원 옆을 흐르는 세인트존 강이 새날의 여명을 건져올리고 있다.  >


     예정대로 11시경에 베이오브펀디의 호프웰록 바닷가에 도착했다.
     베이오브펀디는 뉴브런즈읙과 노바스코샤 사이로 들어간 270km의 긴 만(灣)으로, 조수간만의 차이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하루에 두 번 있는 밀물 때마다 자그마치 1,600억 톤의 물이 좁은 펀디 만으로 1 ~ 2m 높이에 13km/h의 속도로 밀려들어오는 장관의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런 조류 현상을  '타이달 보어' 혹은 '보어'라고 한다.  만조 때는 바닷가 3 ~ 4층 건물 높이의 절벽을 채웠던 물이 간조 때는 쓸려 나가고 바닷가 돌 바닥을 드러낸다.


<▲간조로 들어난 Bay of Fundy 의 Hopewell Rock 바다 밑바닥:  만조 때는 이 3~4층 건물 높이의 바위 절벽들이 물 에 잠긴다고 한다. 절벽 밑에는 크고 작은  동굴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



     우리가 호프웰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간조 때여서 벌겋게 드러난 돌밭에 들어가 바위 아치(Stone Arch)들 밑을 걷고, 입 벌린 동굴들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긴 세월 거센 타이달 보어에 씻기고 깎인 붉은 샌드스톤 바위들의 모습은 기이하며 환상적이었다. 몇 시간 후에 물이 들면 이 바위 아치들 아래로 카누와 카약들이 드나든단다 .  바위들 꼭대기엔 나무가 수북이 자라서 화분 같다 하여  플라워팟(flowerpot)이라고도 부른다.  베이오브펀디는 2007년에 세계 7대 자연경관의 하나로 뽑혔다.

     점심 후에 찾아간 몽턴 근교의 마그네틱 힐 역시 유명해서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모은다.
     몽턴은 뉴브런즈윅의 동남쪽 페팃코댝 강 언덕에 위치하며, 캐나다 대륙과 세 연해 주들을 연결하는 중심부로서 철도와 항공 및, 해양 교통이 일찍이 발달했다.  광역 몽턴의 인구는 약 13만 명 정도인데, 인구의 2/3은 영어, 1/3은 불어를 사용한다.  최근에 한인 이민자들의 숫자가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마그네틱힐은 몽턴 시의 서북 쪽 외각 룻스(Lutes) 언덕이다. 2백여 년 전에 이 언덕에 마차 길응 만들었는데, 주변 지형의 특이한 구조로 하여 길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우리 눈에는 반대로 보이는 신기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곳이다. 우리의 운전기사는 이 언덕을 두 번이나 내려가서 버스의 엔진을 완전히 끈 채 버스가 저절로 언덕을 올라가는 것을 일행이 경험하게 해주었다. 두 번째 올라갈 때는 여러 사람이 버스 앞으로 다가가서 운전기사가 버스의 엔진을 끄는 것을 확인까지 했다. 그때 버스 통로에 서서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상태로 창 앞 언덕을 사진 찍고 있던 나는, 버스가 막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려는 순간에 나의 몸은 내려갈 때 자동으로 일으키는 신체 균형 유지 반응을 하는 것을 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게 이런 '마그네틱힐'의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25년 전, 모국 방문 중 셋째 여동생과 제주도에 갔을 때도 버스로 1,100고지 오르는 길에 '도깨비고개'라는 데서 똑같은 경험을 했다. 그날 1,100고지 행 버스엔 승객이 동생과 나 단둘뿐이어서 운전기사는 우리 자매를 버스 앞까지 오라 하여 버스의 엔진을 끈 상태로 버스가 저 혼자 언덕을 오르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때도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냥 보면, 몽턴의 '마그네틱힐'이나 제주도의 '도깨비고개'나, 우리가 한적한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언덕들과 별다르지 않다. 다만, 자연이 그 주변의 어떤 특이한 지형에 의해 우리에게 무공해로  제공하는 신기하고 즐거운 착각이다.  ㅡ 무공해 착각의 즐거움 ㅡ  굳이 과학으로 설명하려 애쓰지 말고 기꺼이 즐길 일이다.
       몽턴의 어느 중국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한 후, 일행은 길 건너편 Sobey라는 대형 마켓에서 각자 쇼핑을 했다. PEI는 물가가 몹시 비싸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여기서 사라는 가이드  P 씨의 말에 우리도 과일 몇 봉지를 샀다. 과일값이 밴쿠버보다 많이 쌌다. 몽턴을 떠나온 버스는 이윽고 컨페더레이션 다리를 건넜다.


<▲ PEI 쪽에서 보는Confederation Bridge:  총 길이 13km, 높이 60m, 1993년에 착공하여 1997년에 완공했다.  >


       컨페더레이션 브릿지(Confederation Bridge)는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  해협을 가로질러서 뉴브런즈윅의 케이프쥬리맹(Cape Jourimain)과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항구 보든-칼튼 (Borden-Carlton)을 연결하는, 얼음이 어는 물 위에 놓인 세계에서 가장 긴 해양다리다.  1873년에 캐나다에 연합된 후에도 지형적으로 본토에서 계속 고립되어 있던 캐나다에서 가장 작은 연해 주 PEI를 캐나다 본토와 연결하기 위해 오랜 숙원 끝에 건설한 다리로, 이 다리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범선 (Schooner), 페리, 빙상요트  (Iceboat) 들이 캐나다 본토와 PEI 사이를 오가는 교통 수단이었다고 한다.  
       어마어마하게 긴 이 다리는 세 부분으로 연결된 연속식 다리로 유연한 곡선을 이루며, 다리의 중앙 부분을 완만하게 높여 그 아래로 유람선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했다. 총 길이 13km, 높이 60m, 넓이 11 미터의 2차선 도로이고, 자동차 전용이다.  1993년에 착공하여 1997년에 완공했으며, 공식 명을 갖기 전에는 주민들 사이에 “Fixed Link”라고 불렸다고 한다.
       노섬벌랜드 해협을 건너온 우리는 다리 옆 보든-칼튼 등대하우스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눈 시리게 하얀 벽에 빨간 모자를 쓴 등대 앞에 서서 방금 건너온 켄페더레이션 다리의 장대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까 느닷없이  프랑스의 소설가 쥘 르나르(Jules Renard)의 詩 한 편이 생각났다;   ㅡ  '뱀, 너무 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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