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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Rail이 캐나다의 대평원을 건널 때

안봉자 시인 lilas1144@yahoo.co.kr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10-16 17:29

안봉자 시인의 <빨강머리 앤> 테마 여행기(3)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캐나디안 대평원 (Canadian Prairie)을 건넜다.

광활한 벌판은 초록 물이 묻어날 듯 윤기 흐르는 목초밭들과 먼 지평선까지 펼쳐진 이름 모를 파랗고 샛노란 꽃밭들이 모자이크 판화처럼 선명했다. 말과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장과 누런 건초 둥치들이 둥글둥글 누운 마초 농원의 나른하고 평화로운 풍경들, 너른 들판에 드문드문 눈에 띄는 한두 채 농가들과 농가 마당에 우뚝 선 탑 모양의 사일로 (Silo / 마초와 곡식 창고)들. ㅡ  사진작가들과 화가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습들이 어서일까, 처음인데도 모두 고향처럼 익숙하고 정겨웠다

      알버타, 사스카치완, 마니토바의 역사와 생활, 풍습을 설명해주는 승무원에게 저 파랗고 노란 꽃밭들이 무슨 밭이냐고 물으니, 파랑 꽃 핀 것은 아마( Flax)밭이고, 노랑 꽃 핀 것은 겨자 (Mustard) 밭이라고 한다. 노랑 꽃밭은 으레 유채밭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겨자는 유채의 사촌쯤 되며, 겨자보다 재배가 훨씬 쉽고 캐나디안 평원 토양에 잘 맞아서 세계 겨자 소모량의 70%가 캐나디안 대평원에서 재배된단다.


<▲ 사스카츄완포타쉬(Potash / 칼륨) 광산; 포타쉬는 비료의 중요한 성분으로  사스카츄완에 세계 최대의 포타쉬 광산이 있으며, 캐나다는 세계 포타쉬 생산량의 제1위 국가이다.  >


       사스카치완의 포타쉬(Potash / 염화칼륨) 광산에 산처럼 쌓인 포타쉬 적재도 놀랍고 든든했다.  포타쉬는 비료의 중요한 성분으로 사스카츄완에 세계 최대의 포타쉬 광산이 있으며, 캐나다는 세계 포타쉬 생산량의 제1위 국가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Uranium도 세계 강대 수출국 중 하나다.   

     Via Rail은 가는 도중에 반대편에서 화물열차가 오면 언제든지 옆의 간이 노선으로 물러앉아 자리를 내주고 기다렸다가 화물차가 다 지나간 뒤에 다시 본선에 올라 움직이곤 했다. 어떤 때는 2 ~ 3분, 혹은 5 ~ 6분씩 기다릴 때도 있었다. 승무원의 설명인즉,  Via Rail은 주로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고, 화물 열차들은 농산물, 육류, 낙농품 등 상하기 쉬운 음식물과 우리 삶에 필요한 생필품들, 그리고 시간에 맞춰서 외항선에 실어야 하는 수출용 곡물을 실어 나르기 때문이란다.

     그뿐 아니라, 이따금 집도 절도 없는 오지에서 기차가 멈춰 섰거나 뒷걸음질할 때도 있었다. 자동차나 버스도 아닌 21차량의 기차가 갑자기 멈춰서 슬근슬근 뒷걸음질할 때는 무척 신기하고 궁금했다. 한 번은 거의 10여 분이나 뒷걸음질친 적도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Via Rail의 승객 중엔 하이킹, 낚시, 혹은 사냥을 오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이들은 철도 당국과 미리 연락하여 장소와 시간을 약속해 놓고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내리거나 타거나 한단다.

그런데 가끔 승객이 약속 시각보다 늦게 도착할 때가 있어서, 그럴 때면 기다려 주기도 하고, 또 기차가 장소를 잘못 알고 지나쳐 왔을 때는 뒷걸음질 쳐서 데리러 가기도 한단다. 문득 나 자랄 때 한국의 완행버스가 생각났다. 멀리 마을 어귀에서 손 흔들며 달려오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있으면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가 태우고 가던 그 뚝배기처럼 질박하던 60년대 내 모국의 인정. ㅡ 지금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는지.


<▲캐나다 대평원의 노을; 노랑꽃 겨자 (Mustard)밭과  파랑꽃 아마 (Flax)밭이 판화처럼 선명하게 지평선까지 펼쳐 있다.  >


<▲ 에드먼튼 초원의 농가와 마초 둥치들 >



     세상에--,  모두 ”빨리빨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요즘 세상에, 이처럼 푸근하고 넉넉한 정(情)이 이곳에는 훈훈하게 흐르고 있다니! 그 말을 듣고 나니까 갑자기 내가 타고 있는 Via Rail이 쓰다듬어주고 싶도록 착하고 예뻐 보였다.

     그렇게 서서 기다리기도 하고 뒷걸음질도 치면서 가니까 기차는 일정표보다 점점 늦어졌다. “기차가 예정보다 - 시간 - 분  늦으니 다음 역에서 내릴 승객 중에 역에 마중 나올 사람이 있는 분은 미리 연락해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스피커로 나오곤 했다.

     기차가 마니토바의 위니펙에 도착했을 때는 예정보다 자그마치 4시간이나 늦어져서 자정이 너머 있었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알려진 위니펙을 이 기회에 자세히 보고 싶었던 나는 너무나 실망이 컸다. 그래도 잠 안  자고 기다렸다가 창문으로 내다본 한밤의 도시는 푸른 달빛 속에 심해처럼 적요했다. 방금 기차에서 내린 승객 몇 사람이 무거운 가방들을 끌고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역사(驛舍) 안으로 사라진 뒤에도 기차는 한참을 더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역사 옆 강물의 수면 위에 긴 한숨을 토해놓고서 예술의 도시를 빠져나왔다.  

     온타리오 주 초입에서 잠시 멈췄던 시욱스 룩아웃(Sioux Lookout)이란 작은 마을도 아주 인상 깊다. 인구는 5천 명 안팎, 위치상 북미의 중간 지점이라 일찍이 항공과 철도가 발달했다는 곳, ㅡ 어찌나 예쁜지 그 마을 사람들은 꿈도 예쁘게 꿀 것 같았다.

     온타리오 주로 들어서면서 푸른 숲이 눈에 띄더니 갈수록 짙푸른 숲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숲은 싱그러운 스프루스(Spruce / 가문비나무) 침엽수들로 빽빽했다. 기차가 숲 속을 달릴 때는 마치 푸른 터널 속을 달리는 듯했다. 그 숲 속에서 크고 작은 호수들이 8월 햇빛에 반짝였다.

     온타리오 주에는 무려 2,000여 개 호수가 있다고 한다. 그중 1,000여 개는 이름이 있고 다른 1,000여 개는 이름도 없다고. 과연 캐나다는 호수의 나라라는 말이 실감났다. 호수 중에는 크고 작은 섬이 있는 곳도 많은데 큰 섬들은 대부분 주인이 있단다. 2백여 년 전, 캐나다가 영국 연방으로 영국의 통치를 받을 때, 영국이 이 넓은 평원에 더 많은 사람이 와서 살게 하려고 누구든 원하는 사람에게 호수의 섬을 공짜로 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후예들이 섬을 유원지로 꾸며 놓고 피서객이나 낚시꾼, 혹은 카약(Kayak)이나 캐누(Canoe) 타러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번다고.  

     호수들은 모두 수정같이 맑은 물로 그득했다. 얼마나 풍요로운가. 오늘날 대지 오염과 기후의 변화로 지상에서 식수가 점점 줄어들고, 언젠가는 세계 강대국 사이에 식수 전쟁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데, 캐나다는 가는 곳마다 저렇게 맑고 신선한 물이 충만하니, 얼마나 크나큰 축복인가!  

       이따금 시커멓게 타다 남은 나무등걸들이 쭈삣쭈삣 늘어선 곳들은 산불이 났던 자리란다. 화마가 휩쓸고 간 전쟁터를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팠다.

     토론토엔 예정보다 자그마치 일곱 시간이나 늦은 오후 네 시 반경에 도착했다. 지난 4박 5일간 수고한 식당 직원들과 우리 침대방 담당 승무원 아가씨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팁을 건네준 뒤, 우리는 토론토 역 청사를 나왔다. 서쪽 하늘에 한 고삐쯤 남은 오후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며 캐나다 대륙의 반대쪽에서 온 우리를 반겨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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