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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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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7-07 10:44

김줄리아헤븐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제목만 보면 뭔 사랑이기에 사랑 앞에 개가 붙나? 할 것 같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자조적인 탄식을 토로하며 내뱉는 말처럼 들릴 것도 같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목숨을 내던진 운명적인 사랑인가? 그렇게도 생각할 것 같다. 한탄하듯 체념마저 깃든 좋지 않은 어감의 개탄하는 말투. 남모르는 누군가의 지독한 사랑을 두고 도대체 뭔 사랑을 했기에? 그렇게들 생각할 것 같다. 상스러운 욕지거리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혐오스러운 경멸을 보낼 것도 같다. 사실, 개 같은 사이에 ‘와’라는 접속조사 한 글자 빠졌을 뿐인데 느낌이 매우 강렬하지 않은가? 숨어있는 조사 하나로 욕을 얻어먹는 처지가 되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처럼 아름답고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달리 대체할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듣기에 거북할지언정 현재 진행 중인 사랑을 과감하게 자랑하고 싶은, 호기도 객기도 아닌 그저 이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일 뿐이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집콕으로 일관하던 지난여름, 우리 집에는 귀여운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았다. 생후 8주 3일 된 테리어 종인 스코티시로 새카만 털에 반달곰처럼 가슴의 흰털이 매우 인상적인 재롱둥이다. 강아지 이름을 아들과 고심 끝에 성경 속의 인물로 ‘노아’라고 지었는데, 꼬리를 흔들며 친밀감을 표하던 녀석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얼음이 되어버린다. 행복한 얼굴도 절대 아니다. 시원한 타일 바닥의 욕실로만 가 있는 녀석에게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봐도 기척도 없다. 이틀이 지나가는 동안 자신에게 집중된 관심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녀석의 답례는 연신 물고 뜯고 핥고 싸는 것으로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름을 불러주면 귀가 머리 뒤로 바짝 붙으며 넘어가고, 꼬리는 축 처진 채로 슬그머니 화장실 바닥에 가 드러눕는 것이었다.
 “노아~” 부드럽게 불러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 녀석에게, 촌스럽다고 단박에 아들에게 거절 받은 그 이름, 캔디를 불러 보았다. 목소리의 톤을 높이며 마치 아리아를 부르듯이, “캔디~” 불림을 받자마자 쏜살같이 뛰어오는 녀석의 꼬리는 사정없이 좌우로 흔들며 뒤뚱거리는 짧은 다리로 껑충껑충 달려 나온다. 진짜 좋아서 정말 행복해서 신나게 뛰어오던 그 모습은, 아들과 내게 선명하게 각인되어 앞으로 추억 놀이에 빠지지 않을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저장되었다. 또, 내 손에 흥건히 묻은 녀석의 흔적으로 행복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다.
“그래, 네 이름은 이제부터 캔디야!” 그 캔디 소리에도 반응하며 더 껑충거리는 모습에 곁에 앉은 아들도 뭐라 반박할 수 없는 상황에 웃기만 한다. 스스로 이름도 선택한 똘똘한 녀석은 어디서든 캔디 소리에 만사 제쳐 두고 달려와 머리를 흔들며 물어 댄다. 가장 신나고 즐겁다는 표시이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노아 이름에 반응하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는데, 충분히 내게도 이해가 될 만했다. 영어를 사용하는 캐네디언 가정에서 태어나 두 달 동안 노! 라는 말로 행동에 제재를 받던 호기심 많은 강아지에게 노아는 그다지 즐겁지 않은 기억 속의 헷갈릴 만한 말이었을 것이다.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칠 개월을 갓 넘기는 동안, 세 번의 종합 주사와 중성화 수술까지 마친 캔디는 한국 텔레비전 동물 프로에서 섭외도 오겠다는 말을 들을 만큼 개인기가 많다. 손, 앉아, 엎드려, 돌아, 굴러는 기본이고, 빵~ 손가락권총에 쓰러지는 것 역시 껌이다. 입을 맞추는 뽀뽀를 시작으로 맞닿은 엄지와 검지 안에 윤기가 반지르르한 검은 코를 끼우고, 양손으로 만든 손 하트에 자신의 얼굴을 쏙 밀어 넣고 미소 짓는 애교 삼 종 세트도 있다. 캔디는 생각하는 놀이를 가장 선호하는데, 그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어쩌면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 있는 보상과 칭찬에 매료된 탓도 한몫할 것 같다. 곰과 미니온, 토끼, 코끼리를 맞히는 사물구별 놀이를 정말 좋아하고 잘한다. 더욱 신통한 것은 영어와 한국어로 모든 것을 알아듣고 행동을 한다. 나의 시원찮은 영어 발음도 이해하는 똑똑한 녀석이다. 간식이 먹고 싶을 때는 스스로 벨을 눌러 알리고, 과자를 먹기 전엔 고개를 꾸벅 인사하는 예의도 있다. 게다가 베란다에 마련해 준 전용 화장실을 이용할 줄 아는 에티켓도 갖춘 귀염둥이다. 심지어 “고 피(go pee), 고 푸(go poo)” 하면, 나가서 배변 패드에 볼일을 본다.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이나 우리 집을 방문했던 지인들은 한결같이 “영재 견 캔디” 탄성을 자아내며 아낌없는 칭찬을 쏟아 준다. 그때마다 기분이 좋아진 캔디의 두 발 댄싱까지 앙코르 공연으로 이어지며 웃음꽃이 만발해진다. 그뿐이랴 크리스천 가정의 캔디는 매 끼니 식전 기도가 빠지지 않고, 영어 주기도문과 함께 한국어 기도로 마무리까지 해도 얌전히 경청한다. ‘아멘’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먹기 시작하는 캔디를 볼 때마다 대견하고 기특하다. 지금은 자기 식탁 앞에서 우리의 식전 기도가 끝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고 함께 식사를 시작한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함함하다’는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는 뜻으로 뻣뻣하고 뾰족한 가시조차 부모의 눈에는 보드라운 털로 보여 날카로운 가시의 아픔도 사랑 속에 감내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듯 나 역시 내 눈에는 캔디가 정말 귀엽고 삐뚤빼뚤 솟아 나온 뻐드렁니조차 예쁘기만 하다. 나와 아들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결정하고 난 후, 두 달 동안 반려견과 함께하기라는 프로젝트 아래 열심히 조사하고 공부를 했다. 물론 내가 태어나던 해에도 강아지가 있었고, 캐나다에 와서도 역시 시추, 해피와 함께 했다. 귀엽던 해피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낼 때까지 내 곁에 강아지가 없었던 적은 거의 없다. 그 후로 새로이 정을 붙이고 산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도 결여 되고, 한편으론 샤워에 미용에 손이 가는 것들에 대한 게으름도 생겨 조금씩 성가시고 버거운 존재로 느껴지던 터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와 아들은 강아지를 향한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강아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모르는 척 일관하던 내가 마음을 바꾼 계기는 있다. 몇 해가 지나가도록 유튜브 강아지 훈련 영상을 보는 아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늘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은 내가 품고 있던 우려를 걷어내고 되레 기대와 설렘으로 채워 주었다.
 우리는 함께할 강아지가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강아지 집을 비롯하여 장난감이며 옷이며, 마치 출산 준비하는 산모와 같은 마음으로 준비를 해나갔다. 조그마한 강아지가 간격이 넓은 베란다 펜스 사이로 낙상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아지 펜스를 주문하여 덧대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맞이하니 생각한 것 이상의 좋은 결과를 얻었다. 위에 나열한 것처럼 정말 훌륭한 영재 견 캔디는 착하고, 점잖고, 무엇보다 정말 반긴다. 날이 밝아 방문을 열면 쏜살같이 달려들며 입을 맞추고 손을 물고 핥고 가끔 좌우로 흔들어대는 꼬리에 뺨을 얻어맞긴 해도 캔디만의 열렬한 환영 방식은 행복한 오늘의 시작을 끌어낸다. 마트를 다녀오거나 잠시 우편함을 보고와도 그의 진한 사랑의 인사는 변함없다.
 
 어느 날 장을 보고 오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캔디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중학교 때 친구 집에 있던 펌프가 생각이 났다. 기다란 손잡이가 달린 독특한 모양의 펌프가 멋들어진 자태로 마당 한쪽에 있었다. 꼿꼿이 서 있는 펌프 곁에는 늘 물이 담긴 양동이가 있었는데, 나는 그 펌프를 무척 좋아했다. 물 한 바가지를 펌프 위 구멍에 붓고 손잡이를 힘껏 아래위로 올렸다 내렸다 몇 차례 하면 신기하게도 내가 부은 물보다 더 많은 물이 시원한 소리와 함께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작은 불꽃이 큰불을 일으키듯 보잘것없는 양동이의 한 바가지 물이 깊은 샘물을 퍼 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것에 마냥 놀랍고 신기했다.
 마중물처럼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지 않고 유익을 주는 그런 사람…. 사춘기에 접어든 그 당시 마중물은 내게 존재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주었는데, 그러고 보니 샘물을 맞이하러 가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나를 맞이하는 캔디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만면에 웃음을 띠고 기쁨과 사랑으로 캔디를 꼭 안으니 이 순간만큼은 캔디와 내가 서로의 기쁨을 끌어내는 마중물인 것 같다. 하물며 강아지와의 사랑도 이러한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오죽하랴! 감사의 기도와 기쁨으로 드리는 찬양이 주님의 사랑을 향한 나의 마중물이라면? 작은 감사도 폭포처럼 쏟아지는 큰 사랑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 그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달으니 나와 관계 속에 얽힌 사람들과도 서로서로 긍정의 마중물이 되어 준다면…. 선한 말 한마디나 선한 행실은 신뢰와 믿음을 끌어내는 마중물이 되어 기쁨과 행복으로 이어질 것 같다.
 비록 어감은 별로지만, 오늘도 개(와) 같은 사랑을 통해 소중한 추억이 쌓여가는 행복한 날을 만끽하니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어디 있으랴!
 
 
-2021년 마중물 같은 사랑의 한 해가 되길 새해 첫 소망을 담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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