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22-06-01 11:01

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마음에 결이 났다.

 항아리의 한쪽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것을 표현하는 형성 문자다무거운 항아리를 옮기는데 필요한 손잡이가 없으니 항아리가 제구실을 못 한다는 뜻이 이지러지다없어지다모자라다는 의미로 이어진다결점이나 부족한 것이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되기는 어렵겠지만나름 바르게 걸어가려고 노력한 시간이 흩어진다어느새 결이 난 마음한번 이지러진 마음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다세상사의 쓸데없는 번뇌와 망상에 시달려 이지러질 대로 이지러진 마음이 억눌러지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밖으로 튀어나와 나이 든 얼굴을 추하게 만든다.

어쩌다 우리는 풍요롭고 따스한 어머니의 뜰을 떠나왔는지어쩌다 낯선 북방의 벌판에 발이 닿은 디아스포라 우리서로 닮은 사람끼리 반갑게 만나 엮어가야 할 이야기가 왜 이리도 시리고 시끄러운 것인지분명닮은 얼굴에 쓰는 말이 같은 우리끼리 써나가는 정겹고 포근한 이야기도 많을 텐데옹색한 이방인의 들에 삭막한 바람이 불어와 사람의 마음을 구기고 이지러지게 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이 나버린 내 마음이 무섭다.

이 난 마음엔 무수한 이 자리한다.



은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은 자신을 스스로 결박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지 못하게 만드는 악이다항상 자기 생각이 옳고 자신의 행동만이 최선이라 믿는 사람자기 생각대로 타인을 조정하려는 사람은 마음에 맺힌 것이 많은 사람마음에 번뇌가 많은 사람이다마음에  많은 사람그런 사람 누구라도 마음에 맺힌 번뇌를 풀고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심리학자 에드거 루빈이 고안한 루빈의 꽃병은 하나의 피사체가 다르게 보이는 흑백의 그림이다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꽃병 혹은 두 사람의 옆 얼굴로형태가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사람은 아는 대로 보고본 대로 보며보고 싶은 대로 본다누구나 자신의 기억경험습관을 토대로 그림을 해석하며 자신이 이해한 것을 하나의 진실로 믿을 뿐이다또 사람은 누군가 선입견을 불어넣어 주면 그 범주를 벗어나기가 무척 어려워 착시의 틀에 갇힐 수밖에 없다사실은그림 속 흑과 백 중에 각자의 선택이 무엇이든 흑백 모두를 함께 보아야만 어떤 형태 하나를 볼 수 있다흑백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선택되지 못한 나머지가 있기에 꽃병이나 얼굴 중 하나의 형태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시간이 지나가면 그림의 형태는 전경과 배경이 번갈아 지각되면서 다른 형태로 역전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루빈의 그림이 보여주는 착시현상은 인간관계에도 적용이 된다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바라보는 것이 다르고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대상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느끼게 된다우리는 이성을 가진 인간이다살면서 맞닥뜨리는 인간사에 순간적으로 전경이나 배경어느 한 편으로 기울 수 있지만다른 편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차이 나는 현실을 인정하고 상대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동일한 사건과 결과를 두고 저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언제나 이성의 불을 켜고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 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면 루빈의 그림을 떠올려 보면 좋겠다눈앞에 드러나는 타인의 행동만 보고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는 편협한 생각에 갇혀 관계를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시간을 갖고 타인의 행동과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상황을 함께 보는 여유를 가진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로를 품고 이해하며 오래도록 단단한 관계의 끈을 가져가리라 믿는다.

어느새 나잇살만큼 늘어난 내 마음속 결結이 훤히 보인다루빈의 꽃병 하나 마음 한쪽에 놓아두며 자유롭고 싶은 오늘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결이 있다.

결은 그 사람의 삶이다그 사람만의 고유한 삶의 무늬이며 색깔이다흔히 말하는 결이 다르다.’ 혹은 결이 다른 사람이다는 사람을 칭찬하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삶의 기준과 신념이 서로 맞지 않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나와 달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내포된다어디라도 사람이 모이는 뜰은 저마다 결이 다른 사람이 어우러져 있다 보니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해 일어나는 충돌이 있다일이 생길 때마다 비틀거리고 이리저리 쏠려 흐르는 주변을 본다.

누구나 살다 보면 엮이고 싶지 않은 일에 섞여 들 때가 있다어떤 일이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하지 않던가처신이 애매한 상황이라 물러선 자신을 팽개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책임감을 느끼고 현실을 피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부딪히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고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다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도 알며 자신의 어떤 모습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자기만이 가진 자신의 결로 소소하지만 따뜻하게 하루하루 삶을 가꾸어 나가는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다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되어 자신만의 결을 만들어나가는긍정적인 의미로 결이 다른 사람이다.

우리가 그리워하고 꿈꾸어야 할 사람은 진정 결이 다른 사람이다진정으로 결이 다른 사람은 만사를 억지로 움켜쥐기보다는 비우고 내려놓으려 노력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그는 결이 아름다운 사람이다결이 아름다운 사람은 마음에 결이 나지 않은 넉넉한 사람마음에 이 없는 편안한 사람이다.

오늘은 결이 아름다운 사람이 그리운 날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봄 비는 온종일 2022.06.08 (수)
그리워그리워서보채는구나일어나라일어나라두드리는구나나가지도들지도 못하고 나는보고 싶다 보고 싶다허공을 붙잡고칭얼대는구나봄 비는 온종일그리워그리워서….
한부연
찰스 플럼 (CHARLES PLUMB) 은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월남 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이었다. 그가 그곳에서 75회 출격 하는 날 그의 비행기가 월맹군의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 되었고 그는 낙하산 탈출을 감행하였으나 불행히 착륙 지점이 월맹군 거점 지역이어서 그곳에서 체포된 후 6년 간 포로 수용소 생활을 한 후 석방되어 지금은 그 당시의 시련과 고통을 어떻게 감내 하였던가를 강연을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다.그런 그가 어느 날 그의...
정관일
그 때 아라 가야국 그 왕궁 추녀끝고풍스레 쨍그랑 거리던 풍경소리와칠백 수십여년 죽은듯 버려졌다기적 같이 되살아난아라 홍련 씨앗의 발아와 개화 사이의그 꿈결 같기만 한 아득한 세월 그 때 그 왕궁 뜰 연못 위에 피었던아라 홍련과저 하늘과 땅을 수직으로 가르는아득한 세월의 수평선 너머 잊혀진 자와 버려진 자 사이의애틋하고도 사무치는 그리움과...
남윤성
이번에 내가 걸린 코로나의 시초는 딸에게서 부터 시작되었다.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는 나이가 적당히 든 딸이 최근에 프랑스 문화 축제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다가 비를 맞고 오더니 감기 기운이 엄습한 것 같다.함께 자원 봉사하는 동료들과 지내면서 또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서 감기에 걸렸는데, 그렇게 2-3일 앓고 난 뒤 우리 부부에게도 전염이 되었다.나는 기저질환자로 평상시 감기를 의식해서 생강과 대추 끓인 물을 2-3년 전부터 마신 탓인지...
이종구
소중한 것들 2022.06.01 (수)
정가표가 없었네흥정이 필요 없었네공기처럼 물처럼늘 그렇게 곁에 있었네—검은 머리 부모님들치맛자락에 매달리던 어린것들꽃다운 나의 지난날왜 진작에 몰랐을까가장 귀한 것들에는가격표가 없다는 것을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나의 젊음도어느 날 문득 뒤 돌아보면이미 돌아오지 않는 세월의 강을 건너훨훨 가버리고 없는데왜 좀 더 일찍이 몰랐을까그들이 내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말면이토록 사무치게 그리울 줄을The Precious ThingsBong Ja AhnNo...
안봉자
대한민국의 근대 역사는 실로 기적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이조 말기로부터 시작된 근대화 과정에서 오랫동안 나라를 지켜왔던 유교의 풍습이 무너지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혼란의 과정을 겪어왔다.  각종 정변은 물론이고, 일제의 침략, 그리고 6.25전쟁을 통해 국민들은 큰 아픔을 겪었다. 이 시대를 잡초와 같이 살아온 우리 부모님들의 세대는 나라를 지키려 목숨을 잃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가난속에서 가족을 지키려 온몸이 부서져라...
김유훈
결, 결, 결 2022.06.01 (수)
결缺마음에 결缺이 났다.결缺은 항아리의 한쪽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것을 표현하는 형성 문자다. 무거운 항아리를 옮기는데 필요한 손잡이가 없으니 항아리가 제구실을 못 한다는 뜻이 ‘이지러지다, 없어지다, 모자라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결점이나 부족한 것이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나름 바르게 걸어가려고 노력한 시간이 흩어진다. 어느새 결이 난 마음, 한번 이지러진 마음은 쉽게...
강은소
6월의 연가 2022.06.01 (수)
길 섶에눈부시게 피어 올린양귀비 한 송이가슴에 맺힌 한삭일 길 없어바람결에눈물 바람 하고 있는데어디선가 날아온나비 한 마리갑자기 붉은 입술에황홀한 입맞춤을 하니가녀린 허리를한껏 뒤로 제치고뒷걸음질 친다바람 탓일까기분 탓일까
유우영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