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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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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2-09 09:16

김춘희 /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몬트리올 공항에서 밴쿠버 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키가 늘씬하게 큰 검은 색 피부의 두 청년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머리를 여러 갈래로 땋아 뒤로 묵고, 황금빛 바탕에 현란한 튜닉과 바지에 번쩍대는 금 목걸이와 금색 운동화를 신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외모보다 마치 새들의 지저귐같이, 큰 관악기의 고음처럼 들리는 그들의 언어가 더 나를 매혹 시켰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기내에서 한 자리 띄어 바로 내 옆에 앉게 되었다. 그들의 언어가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어 궁금하던 차에 그가 먼저 말을 걸어 왔다. 도대체 몇 살인데 컴퓨터 작업을 하느냐고. 나는 의뢰 받은 급한 번역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어느 나라 말인데 그리도 아름답냐며 서로의 호기심을 풀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네갈 말을 하며 퀘벡에서 그룹으로 활동하는 음악인들로, 빅토리아에서 열리는 주말 콘서트에 공연 가는 중이라 했다. 그의 이름은 밤바 디아우 라고 했다. 호기심에 이끌려 밤바에게 세네갈 노래 한 소절만 맛 볼 수 있게 해 줄 수 있느냐는 나의 청을 그는 쾌히 들어 주었다.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는 좁은 공간에서 밤바는 멋진 즉흥 콘서트를 열었다. 한 소절이 아니라 노래 하나를 다 들려주었다. 크지 않은 소리로 때때로 하이 톤으로 이어지는 그의 노래는 환상적이었다. 노래의 의미는 모든 악한 것을 몰아내고 조상들이 빼앗겼던 그들의 전통을 되찾아 평화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정글의 warrior 노래라 했다. 함께 들었던 승무원들도 즐거워하며 박수를 쳤다.
  노래가 끝나고 자리에 앉은 밤바는 자기 그룹 소개를 했다. 드럼을 치는 세네갈 친구 아쓰와 두 명의 퀘백 인 반주자로 구성된 4명의 그룹이었다. 그는 나를 마미라 부르며, 밴쿠버 여행은 초행인데 콘서트가 끝난 후 우리 집에 초대 해 줄 수 있느냐고 매우 적극적인 제안을 했다. 조금은 당황했지만 못 할 일도 아니기에 아들과 의논하고 그리 하겠노라 초벌 약속을 했다. 공항 픽업을 나온 딸 내외에게 그들 일행을 소개 하자 그들은 마치 오래 전부터 알았던 친구마냥 곧 친근해 졌다.
  주말이 끝난 후 월요일 저녁 나는 아들 내외의 승낙을 얻어 조촐한 저녁 식사에 그들을 초대했다. 4명의 손님과 우리 식구 모두 11명, 아들이 준비한 식전 애피타이저로 시작한 후 우리는 모두 식탁에 앉았다. 나는 밤바에게 조심스레 짧은 노래로 식전 기도를 대신 해 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밤바는 배가 고팠던지 식사가 끝나고 하겠다며 어서 먹자고 서둘렀다. 나는 그 날 밤 근사한 콘서트가 열리리라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그들이 밥과 불고기, 김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애써 음식을 장만한 보람으로 가슴이 훈훈해졌다. 처음 먹는 한식 밥인데 어쩜 그리도 잘들 드실까! 어린 손녀들은 할머니의 색다른 손님들이 집에 초대되어 온 것을 무척 흥미로워 했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모두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밤바는 즉시 노래를 시작했다. 두 반주자는 거실 한 켠 에 있던 키보드와 작은 손녀의 장난감 같은 우쿨렐레로 반주하고 아쓰는 talking drum(말하는 북)이라는 북을 쳤다. 우리나라 장구 같기도 하고 모래시계처럼 허리가 잘록한 작은 북을 왼 팔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 손에 담뱃대 같이 생긴 북채로 북을 두렸다. 앙증스럽게 작은 북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까 싶었지만 북소리는 의외로 청아하면서도 강력한 소리를 내며 우리들을 아프리카로 이끌어 갔다.
 
  밤바는 노래를 잠시 중단하고 말하는 북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그들의 북은 지난 수백 년에 걸쳐 소통의 수단으로 쓰여 왔다. 동네의 기쁜 일이나 슬픈 일, 중대사를 전해야 할 때 북을 쳐서 알렸다. 북 소리는 10km. 이상의 거리까지 전달되었다. 우리나라 선조들이 글을 써서 의사 전달을 했다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청각에 의존한 소리로 의사 전달을 했다. 아프리카 서부 여러 나라의 언어는 음의 높낮음과 크고 작음에 의존한 악센트로 언어가 구성되었기 때문에 말하는 북으로 음을 조합하면 거의 그들의 언어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했다.
밤바의 노래는 계속 되었다. 아들이 대학 다닐 때 갖고 있었던 낡은 기타를 찾아 먼지를 털어내었고, 밤바는 기타를 치며 즉흥으로 노래 말을 붙여 우리 식구 한 사람 한사람에게 노래를 선물 했다. 며느리의 후덕함에 감사하다, 아들에겐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아라, 딸 내외에겐 사랑을 노래 해 주었고 아이들에겐 평화를 노래했다. 노래 사이사이에 ‘예 예 예’ 를 모두 함께 부르도록 이끌었고 수줍음을 잘 타는 손녀들도 어른 들 틈에 끼어 ‘예 예 예’를 즐겁게 불렀다.

  말하는 북 소리와 밤바와 우리들의 ‘예 예 예’ 소리는 국경도 언어도 초월한 한마음 한 소리가 되어 밤이 무르익어 갔다. 밤은 깊어 가고 우리집 거실의 작은 아프리카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말하는 북도 조용히 아쓰의 가방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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