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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시절은 일본 식민지 시대였고 조선인들은 모두 일본 이름으로 개명하고 살았다. 우리 집에서도 김 씨를 가네하라 라 했고, 우리 형제들 이름도 모두 일본 이름을 썼으며 내 이름도 金春姬(가네하라 슝끼?)라 했다. 해방 후 아버지는 두 아들과 맏딸 이름은 모두 한국 이름으로 고쳤는데 내 이름만은 고치지 않았다.그런데 내게는 또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천주교에서 세례명으로 받은 이름이다. 유아세례를 받았으므로 내겐 선택의...
김춘희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떠나간 그대는 어디로 갔소..”해방 후 이남으로 내려와 살았던 우리들은 아버지의 두만강 노래를 심심치 않게 듣고 살았다. 떠나간 내님을 그리는 실향민의 마음, 북한에 살아 있을 부모와 친지들을 그리는 마음이 너무나 아려서 아버지는 그 노래를 부르며 그리움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을 것이다. 아버지의 고향으로 향한 꿈은 십년 전에 꿈으로 남아서 그대로 안고 하늘나라로...
김춘희
 바다와 산이 있으면 자연은 우리에게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위슬러를 가는 길이 그렇다. 위슬러로 가는 길에 알리스 레이크(Alice Lake) 파크 캠핑 사이트가 있다. 아들 식구들을 따라 나는 가끔 내 나이에 걸맞지 않는 캠핑 나들이를 한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캠핑장마다 느끼는 것은 하늘을 찌르는 나무 숲속에 반듯반듯 캥핑 사이트가 들어앉은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알리스 캠핑장은 어느 곳보다 더욱 애착이 갔다. 물론...
김춘희
할매 피부가 아직도 팽팽하던 50대 초반이었을 테지. 어느 날 한가로이 작은 약국 한 귀퉁이에 잡스런 물건들과 함께 진열대에 걸터앉아 있던 나를 그날 아직도 피부가 팽팽했던 지금의 할매가 나를 사갔다. 그 날 이후로 아줌마, 아니 이젠 할매가 된 이 여인의 화장실 거울 아래 늘 같은 장소에 놓인 작은 주머니 안에서 나는 살고 있다. 할매는 길거나 짧거나 여행을 갈 때면 반드시 이 작은 주머니를 챙겼다. 주머니 안에는 나 외에도 끝이 날카로운...
김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