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캠퍼의 입양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11-12 17:01

김춘희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아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이 녀석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었다. 녀석의 나이와
무슨 종자인지 그리고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까지 받아 보고 내게도 보여주었다.
  '중간치 보다 좀 작은 듯해야 내가 데리고 다니기 좋고, 털 많이 빠지는 것도
싫고..' 잔소리 하듯 중얼 거리는 나에게 아들은 녀석의 몸무게와 키는 어느 정도며 영국
사냥개 스패니얼이 섞인 잡종이라며 엄마의 산책 견으로 좋을 거라 나를 안심시켰다.
  동물 애호가 단체의 하나로 버려진 개들을 구하여 입양시키는 일을 하는 비영리 사설
단체가 있다. (Furever Freed dog Rescue Society) 이들은 주인이 버렸거나 또는 이러 저러
난처한 처지에 있는 개들을 구조한 후 새 주인이 나올 때까지 돌봄이 집을 거쳐 새
주인에게 넘겨주는 매체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아들이 입양한 녀석은 멀리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까지 온 후 차로 국경을 넘어 우리에게 오던 중이었다. 동물
애호가들의 활약은 정말 눈부시다. 이들은 한국 뿐 아니라 동남아와 남미에서도 크게
활약한다.
드디어 동물 애호가 직원 아주머니가 잘 생긴 링고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나는
링고에게 '에고,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다. 얼마나 힘들었니!' 라고 한국 말을 해 주니까
알아 듣는 듯 귀를 쫑긋 했다. 아들은 부르기 쉽고 개가 잘 반응할 수 있는 발음이 확실한
이름이어야 한다며 링고 대신 캠퍼로 개명했다. 제주도가 고향인 캠퍼의 새 삶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다음 날 가까이 사는 애들 고모는 입양을 축하한다고 웰컴 홈이라 요란하게 쓴 카드와
강아지 장난감 선물을 보내왔다. 또 아들 내외는 강아지 훈련에 필요한 공 기구와
장난감, 그리고 훈련에 필요한 강아지 쿠키 등 잔뜩 사들였다. 다음 날부터 캠퍼의 훈련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들은 아이들과 함께 집 앞 공원으로 나가서 아침 저녁 강아지
훈련을 했다. 아직 학교가 개학하기 전이었다.
  한편 나의 산책 반려 견 아치는 새 식구가 온 것에 대한 반응인지 아니면 망령을 부린
건지 처음 몇일은 여기 저기 실례를 하여 난리였다. 아치는 나와 거의 십년을 산책을 해
주었지만 이제는 10분 산책으로 만족한다. 다리 관절이 너무 심해서 제대로 걷지 못하기
때문이다. 입양 강아지가 새로 들어온 후 아치는 더욱 불쌍해졌다. 아이들의 귀여움을
캠퍼가 몽땅 차지하면서 아치는 이제 뒷전으로 물러난 신세다. 캠퍼가 공원에서 아이들이
던진 공이나 프리즈비를 단번에 뛰어가서 물어 오면 아이들이 잘 했다고 쓰다듬어 주면서
쿠키를 준다. 쿠키 얻어먹는 재미에 캠퍼는 또 뛴다. 캠퍼가 신나게 뛰고 쿠키를 얻어먹는
것을 바라보는 아치는 이따금 아이들의 동정심 때문에 쿠키를 얻어먹는다. 늙으니
서럽다. 아이들이 아치를 쓰다듬어 주는 것은 불쌍해서지 같이 놀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러나 아치는 인내한다. 피곤하면 조용히 자기가 좋아하는 방구석에 웅크리고
누워 버린다.
  며칠 전 며느리는 어떻게 구했는지 캠퍼의 DNA 중명서를 떼 왔다. 잉글리쉬
쎄터, 스페니얼, 스타피(어메리칸 스타포드샤이어 테리어), 3 종류의 피가 흐르는
잡종이다. 잡종은 순종보다 더 건강하게 산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잡종은 더 잘 생긴 것
같다. 흰 바탕에 검은 색과 밤색이 드문드문 박혀 있고 다리에는 새 깃털 모양의 털이

옆으로 뻗어 있고 귀는 축 늘어졌지만 굽실거리는 짙은 밤색털이 만지고 있으면 새의 가슴
털을 만지듯 부드러운 촉감만으로도 귀티가 나는 잡종이다.
  사람도 순수 민족 보다는 혼혈이 더 우수한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자매로
섞여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곳 사람들은 한 집에 개 한 마리는 다 키우는
것 같다. 개가 아니라 견공으로 모시며 키운다. 개가 상전이다. 아들 내외의 침실에는
두개의 강아지 매트레리스가 있다. 개들이 안방까지 차지하고 사는 아들 내외의 삶은 개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개와 함께 하루를 마친다. 그 정성이 대단하다.
  주인의 돌봄과 아낌과 사랑을 받는 애완견들의 팔자가 사람의 팔자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세상 저편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너무 먹어서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어느 나라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요즘 나의 마음을 많이 슬프게 하고 있다. 쓰레기장에서 어린아이가
무언가를 줍고 있는 사진이다. 이 아이를 보여주던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 '저 아이가 내
조카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내 가슴이 갑자기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 그
질문이 강하게 나를 때렸다. 세상이 너무 고르지 못하다. 잘 사는 나라는 늘 가난한 나라에
빗진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해마다 년 말이면 교회마다 자선의 손길을 준비한다. 서리 한인 성당에서도 청년들이
매년 슈박스(Shoe Box) 수집을 한다. 박스 안에 행려자들을 위한 성탄 선물을 넣어 예쁘게
포장한 후 행려자들에게 선물한다. 작년에도 슈박스 하나를 했다. 양말, 치약
칫솔, 쵸콜릿, 그리고 따듯한 커피를 사 마시라고 멕도날드 선물 카드를 하나 사서 넣어
보냈다.
올해도 우리 집 강아지들만한 호강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성을 다 해 슈 박스
안에 차곡 차곡 사랑을 싸서 전달해야겠다. 내가 보낸 슈 박스를 선물 받은 행려자가 성탄
선물을 받고 따듯한 미소를 지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2024년은 나에게는 특별한 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4년 11월 23일  우리가  독립 이민자로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 공항에 발을 디딘 지  50년을 맞는 해다.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1974년 육군본부에서 공병 장교로 일 잘하던 남편을 설득하여 아직  두 살이 채 안 되는 딸아기를 안고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던 낯선 캐나다 땅에 랜딩 했다. 남편의 본적은 함경북도, 하얼빈 출생이다. 러시아계와...
김춘희
  용인 가는 고속도로에서 수원가는 표지판이 눈에 띄고서야 문득 수원 양로원에 있는 요안나가 생각났다. 아! 수원이구나! 요안나가 있는 수원이구나!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우리 일행은 용인에서 다른 가족팀과 합세하여 다음 날 전주로 떠나기로 하고 용인 라마다호텔에 묵었다. 한국을 떠나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아온 세월 때문에 용인과 수원이 인접해 있다는 사실을 전연 모르고 있었다. 나는 한국어를 하는 이방인이다....
김춘희
   지난해 추수 감사절 다음 주, 제주도 앞 바다에서 들개처럼 방황하던 캠퍼를 구해 준  이효리씨와 그의 친구 인숙 씨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녀들은 우리 집에서 1박을 부탁했고 터키 디너도 가능한지를 문의해 왔다. 전 주에 우리는 이미 추수 감사절 터키를 먹었지만, 그들을 위해서 아들 내외와 가까이 사는 딸이 기꺼이 준비했다. 그때 나는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편도선을 앓고 있었기에  정중한 인사와함께  아이들과...
김춘희
  마지막 한 장 달랑 남은 2022년 달력은  더 이상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2023년 새 달력에 자리를 내 주어야만 한다. 월말이면 어김없이 한 장씩 넘기다가 오늘은 12번째 막장을 내린다. 새 달력을 걸어 놓고 이제 막 내려놓은 낡은 한해를 한 장씩 훑어 본다. 크고 작은 일들이 어제 일처럼 펼쳐진다.  내 산책 견이 강원도 강릉에서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여 마중 나갔던  일, 형제들의 방문, 아이들과 여기저기 여행했던...
김춘희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별러 왔던 동생들의 방문길도 열렸다. 혼자 사는 큰동생과 막내 부부가 서로 때를 맞추어 드디어 나를 찾아 주었다. 8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아들 집 아래층(Suite in law)에 사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형제들의 만남으로 꽉 찼다. 거동이 불편한 큰동생의 방문은 어렵사리 준비한 여행이었기에 뜻깊었고, 미국에서 찾아온 막내 부부의 방문은 여의찮은 형편에서 용단을 내린 여행이었기에 감사할 일이었다....
김춘희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별러 왔던 동생들의 방문길도 열렸다. 혼자 사는 큰동생과 막내 부부가 서로 때를 맞추어 드디어 나를 찾아 주었다. 8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아들 집 아래층(Suite in law)에 사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형제들의 만남으로 꽉 찼다. 거동이 불편한 큰동생의 방문은 어렵사리 준비한 여행이었기에 뜻깊었고, 미국에서 찾아온 막내 부부의 방문은 여의찮은 형편에서 용단을 내린 여행이었기에 감사할 일이었다....
김춘희
대구떼의 수난 2022.06.20 (월)
유네스코가 지정한 관광지 가스페 반도(Gaspé)는 우리가 1980-90년 사이에 여름마다 찾아갔던 여름 휴가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St-Laurent) 강을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한나절 드라이브 길에 벌써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대서양 어귀에 리무스키(Rimouski)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여태껏 보아 왔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새우나 조개 같은 어패류의 롤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판매소가 여기저기 눈에...
김춘희
대구떼의 수난 2022.06.15 (수)
유네스코가 지정한 관광지 가스페 반도(Gaspé)는 우리가 1980-90년 사이에 여름마다 찾아갔던 여름 휴가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St-Laurent) 강을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한나절 드라이브 길에 벌써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대서양 어귀에 리무스키(Rimouski)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여태껏 보아 왔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새우나 조개 같은 어패류의 롤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판매소가 여기저기 눈에...
김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