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긍정 정서 높이기

조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12-11 11:00

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11월 중순으로 접어들어 대기는 자주 안개에 감싸인다. 산허리에 구름 띠를 두른 겹겹의 산들이 물안개 피는 핏 리버와 어울려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잎을 다 떨군 미루나무 꼭대기에선 먼 곳에 시선을 둔 흰머리 독수리가 묵언 수행 중이다. 서울에서 돌아와 시차를 겪는 요즘, 새삼 밴쿠버의 신선한 공기와 한가로운 주변 풍경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친구들로부터 고국의 현 정치 상황과 사회구조에 대한 결기 어린 성토를 듣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대립과 갈등의 정치 상황과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상반된 논쟁을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제한된 정보와 각자의 입장에 따라 갖게 된 대안 없는 갑론을박은, “말은 들끓고 세상은 요지부동이다.”라는 말을 실감 나게 했다. 우리 모두 정쟁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 때쯤, 공익을 위해 일할 올바른 정치인에게 투표권을 행사하자는 결론으로 어색한 분위기는 겨우 마무리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 공감대를 나누며 소통하고 있었을까. 지극히 내 관점으로 본 세상에 분노하는 일이 우리들 일상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지혜를 나누는 일보다 의미가 있었을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복잡한 세상살이 저 너머 우리를 잠시라도 위로해 주는 이야기들을 왜 우리는 화제에 올리지 못했을까. 감동을 준 책과 음악, 사람들 그리고 저마다 무엇에 마음을 두고 살고 있는지, 무엇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지 또 어떻게 자신을 다독여 존재의 공허함을 이겨내는지---. 우리가 고정된 관점으로 분노하며 생의 에너지를 소비할 때, 우리 삶의 버팀목이 되는 긍정적 정서는 평온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를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물의 객관적 실제 모습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견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따라 상황을 다르게 보며 각자의 그릇 크기만큼 세상을 이해하기에, 가끔 사실과 다른 견해를 갖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항상 거대 담론의 부정적 견해를 화제에 올리기 좋아하는 한 친구는 일방적으로 분위기를 주도해 끝내 서먹하고 부담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곤 한다. 오랜 친구 사이라도 자기의 종교와 정치 성향만을 주장하며 상대를 쉽게 단정하고 비난한다면, 우정의 바탕인 신뢰감은 사라지고 회복하기 어려운 관계가 되고 말 것이다. 친구나 이웃이 내 정치 성향과 다르다고 비난하는 것은 세상과 어울려 사는 성숙한 태도라 할 수 없으며, 갈등으로 인한 내면의 분노는 자신의 긍정적 에너지를 앗아가 결국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게 할 것이다. 내 고정된 사고의 틀을 깨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객관화 시켜 볼 때 우리는 분노의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지구촌 수많은 사람의 지지 속에 행동으로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과 인종 차별, 기상이변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환경 오염 그리고 총기 규제를 막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분노하며 대항하는 사람들이다. 2019년 UN ‘기후 행동 정상 회의’에서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점에 있다.”고 연설한 16살 스웨덴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기후 변화 대응 촉구 시위를 주도하며 올해 4번이나 경찰에 체포된 베트남 반전 운동에 참여했던 81세 미국 영화배우 제인 폰더, 수익금을 환경 오염과 총기 소지 금지를 위해 사회에 기부하며, 최근 2년간 5,890억 원의 공연 수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와 쓰레기 등 환경 오염을 막기 위해 예정된 공연 일정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한 영국의 록 그룹 콜드플레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안전한 미래를 약속하는 이들의 긍정적 분노는 세계인들의 전폭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나는 며칠 전 남편과 친구네 집에 초대되어 정성스럽게 준비한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가족들 안부와 우여곡절의 여행담, 서로의 건강과 주거 문제를 화제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사람 중 누구도 대화를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는 가운데 생각과 말사이에 틈을 두어 화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는 격한 자기주장은 감정을 부풀리게 되고 원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알고있었다. 서로를 인정하며 진정성 있는 대답을 주고받는 대화 분위기는 편안하고 유쾌했다. 늦은 밤, 우리를 가볍게 안아 등을 토닥여주는 두 사람의 배웅은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오는 먼 길도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충만한 삶을 유지시키는 긍정의 정서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최선의 가치가 아닐까!’ 어느새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이 내 마음에 들어와 환히 빛나고 있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보리굴비 한 두름 2023.06.28 (수)
 맛의 기억은 회귀본능을 일깨운다. 텃밭에 올라온 여린 머위와 미나리를 조물조물 무쳐 맛을 보니 아득한 고향 들판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펼쳐진다. 나물 바구니를 든 어릴 적 친구 얼굴도 아지랑이 속에서 가물거린다. 기억회로에 깊이 저장돼 있다 불현듯 나타나는 고향 들녘은 나를 설레게 한다. 모든 것이 신비롭게 채색돼 있던 그때 그 시절을 다시 살아보고 싶은 간절함에 목이 메는 봄이다. 이제 밖으로 떠돌던 삶의 여정은 뿌리를 찾아...
조정
따로 또 같이 2023.02.13 (월)
 오늘은 집에 손님이 오는 날이다. 저녁 준비로 동동대는 내 옆에서 남편은 어느 때보다 협조적인 자세로 하명을 기다리고 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거실 유리창을 닦고 바베큐 그릴도 달구고… . 바쁜 가운데 손발이 맞는 손님맞이는 수월하게 마무리가 되어 간다. 오늘 손님은 같은 해 밴쿠버에 정착해 한동네에 살던 유고인 프레드락과 수잔나 부부이다. 연배가 비슷한 우리는 긴 세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일상의 애환을 나누고 살아온 귀한...
조정
뿌듯한 하루 2022.10.04 (화)
  루틴이 몸과 마음을 변화시킨다. 부드러운 커피 향이 퍼지는 아침,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목 안으로 넘기는 일은 하루를 시작하는 저항감에서 벗어나는 의식이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데크 난간에 매달린 모이통에 앉은 새들을 관찰하며 잠자는 근육과 정신을 깨운다. 푸른 숲을 내다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모으는 일 또한 나의 소소한 아침 일과다. 달리기 출발선과 같은 하루의 시작, 커피의 카페인은 오늘의 경기를 위한 전략을 하나둘...
조정
캠핑 단상 2022.06.28 (화)
  오월은 싱그러운 봄빛으로 눈부시다. 골든 이어스 캠핑장을 향하는 듀드니 트렁크 로드 주변은, 색의 연금술사들이 펼쳐놓은 화사한 화폭 같다. 신록의 나무 사이로 뭉게뭉게 흰 불두화가 피어있고 짙고 연한 초록빛이 서로 스미고 어우러진 산자락은, 마크 샤갈의 파스텔화처럼 몽환적이다. 버드 그린, 모스 그린, 파인 그린…, 보드라움으로 마른 가지를 뚫고 나온 연둣빛 잎새들이 시나브로 생동감 넘실대는 초록의 물결을 이룬다.  캠핑은...
조정
겨울에 크는 나무 2022.03.21 (월)
꽃을 시샘하는 풍설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헐벗은 나뭇가지들은 눈바람 속에서도 새순을 틔우고, 뿌리들은 더 깊게 땅속으로 내려가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린다. 적막한 숲속, 고목 우듬지에서 날아오르던 레이븐 몇 마리가 동굴 밖 기척에 놀란 곰의 단잠을 깨운다. 들숨과 날숨을 고르던 곰의 그루잠 속에, 연어들의 마른 눈물 자국과 홀씨를 띄우지 못한 노란 민들레꽃 무리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새해 들어 곰과 동병상련의 정을...
조정
포도주와 노부부 2021.12.10 (금)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림뿐이다. 그늘진 곳에 놓인 항아리 속 포도주는 지금 숙성 중이다.와인을 ‘병에 담긴 시(Wine is bottled poetry)’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어느 날 저녁, 포도주의 혼이 병 속에서 노래하더라/ 나는 알고 있나니 내게 생명을 주고 영혼을주려면/ 저 불타는 언덕배기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땀과/ 찌는 듯한 태양이 있어야 하는가를--- (샤를 보들레르)  올가을 14년생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많은 양의 레드 딜리셔스 품종의...
조정
조정 (사)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대자연의 땅에 사는 가난한 유목민들, 그들은 헤어질 때 언제나 같은 인사말을 건넨다.“길 위에서 다시 만나자.“  '앞으로 어떤 상황에 놓인다 해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서로의 다짐이 실린 말이다.서리 덮인 황량한 평야와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 벼랑 밑으로 넘실대는 파도---, 고립된 외로움을 안고 목적지를 향하는 유목민들은 그 말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영화...
조정
생각을 품는 둥지 2021.06.07 (월)
조정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어느새 봄기운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교감하고 있다. 눈 부신 햇살과 단비는 새순을 돋게 하고 온 산야를 누비던 바람은 초록 물결을 몰고 온다. ‘날마다 알을 품는 새로운 나’, 알을 생각으로 풀이한 사람이 있다. 마음에 어둠이 사라지고 새벽빛이 스며드는 순간을 경험한 그는, 몸에 생각이 머물러야 온전한 하루가 된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춘 가운데 흙을 고르는 20평...
조정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약속했었지,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프린스는 며칠 전부터 시골 은별이 누나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됐어요. 오래된 한옥 마루 밑에서 살아야 하는 믿지 못할 일이 시작됐지요. 함께 살게 된 바우는...
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