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수필을 쓰는 사람은 예술가다.
존 워너커에 따르면 작가는 예술가다. 그는 저자와 작가의 가치를 구분해 누구나 책을
내면 저자가 될 수 있지만, 작가로 불릴 수는 없단다. 저자는 그 사람이 하는 일, 글을
쓰는 행위를 말하고 작가는 자기 자신을 쥐어짜 글을 쓰는 사람, 그 사람을 정의한다.
그의 가치 기준에 따르면 수필을 쓰는 사람은 작가다. 수필가는 예술가다.
수필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오로지 나 자신이 되어 살아가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또 한 편의 수필을 위해, 나 자신을 비틀어 몸부림을 치다 뼛속까지
후벼 파 묶여 있던 글의 실마리를 풀어내려 애쓴다. 자칭 예술가라 하기에는 이름 없는
글쟁이라 쑥스럽고 부족한 점이 있지만, 분명 나는 수필을 쓰는 작가다.
수필은 나를 작가로 살게 한다. 다양한 시간의 변주 속에서 과작寡作이라도 멈추어
지지 않은 수필 쓰기는 여전히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나에게 수필은
작가로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중심을 놓치지 않고 붙들 수 있도록 잡아주는
버팀목과 그 버팀목에 꽁꽁 묶어주는 끈이 있어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수필의 끈과 버팀목에 의지해 글을 쓰며 작가로 산다.
내 수필의 큰 버팀목은「현대수필」이다. 현재 통권 110호를 발행한 「현대수필」로
통하는, 또 하나 작은 버팀목은 동인지 제21집을 낸 분당수필문학회다. 현대수필과
분당수필은 멀리 떠나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쌓인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어 나를
잡아주는 튼튼한 기둥이다. 그 버팀목엔 항상 자신의 그늘에 자리를 내어주고 울타리가
되어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 있다. 언제나 내 수필의 끈이 되어 등을 두드리며
글쓰기를 북돋우고 버팀목에 단단히 매어주는 정겨운 손길이다.
수필의 끈과 버팀목, 그것은 곧 변치 않고 함께하는 사람이다. 분당수필문학회에서
만난 선배와 후배, 동기 문우와 더불어 현대수필 문인회로 맺어진 인연이다. 우리는
수필의 길을 함께 가꾸어 가는 선후배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당겨주고 밀어주는 문학
도반으로서 서로의 끈이 되고 버팀목이 된다. 수필의 끈과 버팀목은 결국 문학의 끈과
버팀목이다. 모두 나의 문학에 튼튼한 버팀목을 세워주고 동아줄 같은 끈을 묶어주는
사람이다. 그중 중심에 떡 버티고 우리를 두루 어우르는 한 사람은 수필의 거목인
윤재천 선생님이다.
운정 윤재천 선생님은 내 수필의 스승이며 아버지다. 울퉁불퉁 흔들리던 문학의 길을
수필의 길로 다듬어 이끌어 주시고, 20년 가까이 늘 그 자리에서 말없이 지켜주고
계신다. 첫 수필집을 내고 난 뒤 긴 시간이 지나갔지만, 아직 두 번째 수필집을 상재
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선생님의 큰 사랑에 못 미치는
글쓰기는 늘 부끄럽고 죄스럽기 그지없다. 지난해 가을, 수필집이 아닌 시집을 들고
찾아 뵈었을 때도 선생님은 누구보다 더 기뻐해 주시고 축하해 주셨다.
선생님은 가장 단단한 끈과 버팀목으로 내 문학의 바탕이 되어 주는 사람이다.
다짐한다. 선생님의 미수 기념 문집에 올리는 이 글을 쓰며 선생님과 나 자신에게
약속한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제2 수필집을 세상에 내놓을 것을 꿈꾼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 또한 나의 얼굴이고 내 글쓰기의 역사다. 욕심은 버려야 하리. 조금 더
성장한 작품집을 생각하면서 자꾸 미루어 두었던 발걸음을 이제는 내디뎌야 할 때다.
나는 작가다. 작가로서 글을 쓰며 살겠다면, 작가로 살아남겠다면 써 놓은 글을
정리하고 묶어내는 일도 거쳐 가야 할 숙제다. 작품을 묶어내는 일 이야말로 작가의
글쓰기가 한 단계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던가. 멀지 않은 어느 날 새 작품집을 들고 다시
찾아 뵐 그때, 주름 든 얼굴에 여전히 소년 같은 어설픈 미소를 띠고 계실 선생님을
떠올려 본다. 수필을 쓰는 우리 모두에게 수필의 끈이며 버팀목이신 윤재천 선생님.
오래오래 건재하시어 예술가를 꿈꾸는 우리 문학의 바탕을 더 여물게 다져 주시기를
빈다.
영원한 수필의 끈, 수필의 버팀목이신 선생님께 미수 건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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