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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역사문화 기행> 포트 무디 - 예술인의 마을

이원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6-07 14:18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정다운 인사는 사라졌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누가 먼저 비껴서나’ 기 싸움을 한다. 대부분 옹고집으로 뭉친 의지(?)의 한국인이 이긴다.

그러나 덩치가 검은 곰만한 사람이 전방 1미터까지 접근하면서도 비껴 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이 내가 양보한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이것 봐라. 젊은 놈이 예의도 없이 늙은이 가는 길 양보도 하지 않아? 고얀놈. 그러나 여기는 남의 땅.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는 한국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캐나다 땅에서랴.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새로운 일상(New Normal). 어색하고 슬프지만 살기 위해서는 적응해야 한다. 자고 나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비보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접하는 현실. 자발적인 자택연금이 언제나 풀릴 지 모르는 이 사태를 피할 수 없을 바엔 차라리 즐기는 수 밖에 없다.  

사실 전염병에 의한 새로운 일상은 나 같은 은퇴자들에게는 예전의 일상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월화수목금토일’의 매 주간 매일이 일요일인 내게는 아등바등 돈 벌기 위해 출근할 일도 없고, 2차, 3차로 이어지는 회식문화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함께 할 일도 없다. 이웃나라 미국과는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의 왕래는 중단된 지 오래지만 생명을 부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필수품은 여전히 예전처럼 오가고, 코로나 발병 초기의 야단스러운 사재기나 슈퍼마켓 앞에서의 기나긴 줄서기도 없어졌으니 먹을 것 살 수 없어서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오히려 최근 주상복합 아파트단지에 이사 오고 난 후 건물 내에 있는 대형슈퍼마켓을 다람쥐 도토리 줍듯 드나들 수 있으니 더더욱 건물 밖으로 나갈 일이 줄어든다.      

문제는 방랑벽이다. 사람들은 그날이 그날인 다람쥐 쳇바퀴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욕망이 잠재한다.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낯선 곳으로 잠적하여 낯선 사람들과 웃고, 낯선 음식을 맛보고,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인간의 노마드(nomad)적 본능이 우리 속에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할 수 없다. 우리 부부는 밴쿠버 우기의 절정인 1~2월이면 강남제비처럼 따뜻한 곳으로 여행하기로 했었다. 하와이는 수 차례 다녀와서 내 집처럼 편하고, 카리브 크루즈여행을 비롯한 남미여행은 이미 첫 발을 들여놓았고,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유럽 남부를 공략하려고 우리는 ‘계획이 다 있었는데’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고약한 바이러스가 발목을 잡았다.

어쩌랴.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 보건당국은 주 경계선을 넘는 여행은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을. 연초 계획했던 알곤퀸 단풍구경도, 나이아가라 폭포구경도 물 건너갔다. 캐나다 내에서도 서부보다 동부가 미국과의 인적, 물적 거래가 더 많아서인지 전염병이 더 극성을 부려왔는데, 수명을 단축할 의사가 없는 한 동부를 비롯한 원거리 국내여행이 꺼려진다. 도리 없이 이제는 메트로밴쿠버 안에서 이 마을 저 마을 동네구경에 만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포트무디(Port Moody).  내가 사는 버나비에서 차로 20분미만 거래에 있는 작은 도시다. BC주 동북부 산악지대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태평양으로 합류하기 전, 마치 잠시 쉬어가기라도 할 듯 살짝 포트무디로 굽어 든다. 목재소가 있어 가공된 목재를 실어 나르던 배가 드나들어서 항구(Port)였던 이 도시는 영국 식민지 시절 BC 주 제1부지사였던 리차드 클레멘트 무디의 성(姓)을 붙여 작명되었다.

무디는 BC 주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영국육군 소속 왕립기술자부대 대령이던 그는 태평양연안에 ‘제 2의 영국’을 건설하기 위해 영국정부에 의해 캐나다로 파견되었다. 그는 먼저 현재의 메트로밴쿠버 동남부에 위치한 뉴웨스트민스터 지역을 선정하여 BC주의 주도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뉴웨스트민스터는 인접한 프레이저 강을 따라 태평양으로 나가는 상선의 출입이 가능하여 물자수송에 문제가 없고 강폭이 크게 넓지는 않아 적 선박들의 침투가 용이하지 않은 지역적 이점이 있었지만 북쪽 버라드 해협을 따라 적이 상륙하여 육로로 남진한다면 큰 피해를 당할 수 있었다. 해서 무디는 포트무디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주도를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건설했다. 당시의 적이란 독립된 미국을 말한다. 지금은 둘도 없는 이웃이지만 미국 독립전쟁 당시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무디 부지사가 남긴 업적은 무수하다. 약속대로 BC주를 훌륭하게 잘 만들어 가꾸었다. 비록 캐나다가 연방을 만들어 독자적인 국가의 길로 접어드는 바람에 “제2의 영국”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업적을 기려 메트로밴쿠버 여기저기에 무디의 이름을 가져온 공원, 거리, 마을 등이 제법 있다.

그의 업적 중 하나는 BC주 문장(紋章)이다. 여왕을 상징하는 왕관 위에 영국의 기상을 나타내듯 용맹한 사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수 가지에 둘러 쌓여서. 오늘날에는 좀 더 다양한 상징물이 추가되었지만 문장이 새겨진 주 깃발 아래서 북아메리카에 제2의 영국을 건설하겠다는 야무진 꿈이 가멸차다.

33,000평방스퀘어에 추산하여 약 38,000명이 거주하는 작은 소도시는 아주 거대한 도시가 될 뻔한 기회가 있었다. BC주가 동부로부터 서부까지 연결되는 캐나다 태평양 횡단철도(CPR-Canada Pacific Railway) 건설을 캐나다연방 가입조건으로 내세웠을 때 포트무디가 서부지역 종착역이 될 것이라는 계획이 서 있었다. 더구나 1886년 7월 4일 150명의 승객을 태운 첫 열차가 포트무디 역에 도착했을 때 그 기대는 현실화되는 듯 했다. 하지만 CPR 건설책임자이자 사장인 윌리엄 밴혼이 포트무디보다 더 발전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밴쿠버를 열차의 서부 최종 도착지로 결정되었을 때 이 꿈은 사라져 버렸고, 지역주민들도 보다 나은 경제적 가능성을 보며 이 도시를 떠났다.  

그래서인지. 밴쿠버, 버나비, 코퀴틀람 등에 비해 인구증가폭도 크지 않고 부동산가격도 높지 않으니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이주해 오기 시작하더니 포트무디는 예술인의 도시로 탈바꿈하였고, 종래는 2014년 6월 16일 포트무디 시장은 공식적으로 “예향(City of Arts)” 선포를 했다. 해서 예술행사만큼은 타 도시에 비해 더 다양하고 풍성하다.

포트무디에서 미래의 예술인들을 양성하고 현재의 예술인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 포트무디 예술센터(Port Moody Arts Centre, 약칭 PoMoArts)이다. 

연령불문, 성별 불문, 초보자에서부터 전문가까지 예술인이라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이 센터건물은 사실 1900년대 초만 해도 미학적이고 감동적인 예술이 탄생하는 공간이 아니라 경찰서, 교도소, 공습대피소, 소방서, 시청 등이 있던 다소 무시무시하고 무미건조한 장소였다. 그러나 1994년 새로운 시청 건립으로 시청기능 등이 이전되고 건물이 비어있게 되자 예술인들에게 전시장, 실습장 형태로 빌려 주었는데 1998년에 비영리단체인 포트무디 예술센터협회가 동 건물을 관리하면서 차츰 예술센터 건물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오늘날 동 센터는 포트무디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예술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여러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이를 보면 주민들의 다양한 회합장소로 사용할 수 있는 두 곳의 커뮤니티 미팅 룸, 다섯 곳의 비주얼 아트 스튜디오, 완벽한 장비를 갖춘 도자기 공방, 방음장치가 잘 되어있는 다섯 곳의 뮤직스튜디오, 세 곳의 미술갤러리, 매력적인 리셥션 홀 등이 구 시 청사와 시 문화유적인 센터니얼 애플야드 하우스가 결합된 건물의 3개 층 전체에 걸쳐 운영되고 있다. 

 1910년에 건립, 100여년이 넘는 애플야드 하우스는 아마도 처음 그 건물이 지어졌을 때 뒷마당에 사과나무가 많아서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닐까 상상할 뿐 아무도 작명의 연유를 모른다. 그러나 포트무디 예술인들의 활동무대가 되기 까지는 우여곡절을 격어야만 했다. 누군가의 주 거주지에서 피자식당이 되었다가 주정부가 에버그린 라인 경전철 노선계획 선상에 있는 건물을 사들였고, 그 유서 깊은 건물을 차마 철거하지 못하고 2012년 단돈 1달러에 포트무디 시에 넘긴 것을 시는 건물 채 옮겨 현재의 장소에 있는 구 시 청사 사이에 복도를 놓아 한 건물이듯 만들어 현재의 예술센터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불과 수백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캐나다는 100년된 건물도 문화유적지로 보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나라는? 글쎄 100년나이의 건물을 보존하자고 하면 코미디언 소리 듣지나 않을까? 

예술센터 앞마당 잔디밭에는 대형 원반구조물이 있다. 예술센터가 각종 단체 및 시민들로부터 기부 받은 5만달러로 만든 이 구조물은 포트무디시의 옛 최초 학교부지(현재도 무디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는), 전화교환소 건물, 시의 최초 은행건물 2동, 그리고 포트무디 역 박물관 등 5개 건물의 실제사진이 모자이크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밴쿠버 유명 사진작가 블레이크 윌리엄이 제공한 사진으로 조각된 이 모자이크는 과거의 역사를 조명하자는 뜻에서 ‘Illumination(조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태양전지판, 블랙베리 덩굴이 오래된 건물사진들과 곁들여져 있고, 원형조각의 테두리에는 캐나다태평양 대륙횡단 철도가 처음으로 도시에 도착했을 때를 기록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우리는 그다지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먼저 기적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소나무들 사이로 마치 오래 전부터 보아 왔던 것 같은 열차의 연기가 피어 올랐다. 이어서 땡땡땡땡하는 엔진 벨 소리를 내면서, 기차가 선로를 따라 서서히 들어왔다. 기다리고 있던 500~600명의 시민들은 환호를 했다. 불과 1분이내에, 대륙을 횡단하여 먼 길을 온 열차는 그 모습을 들어내 보였다.’ 

에디 엥거스라는 여성이 쓴 글이다. 참 문학적이다. 혹 시인이 아니었을까?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것도 문학인의 사명이라면 원반구조물이 존재하는 한 그녀의 업적은 오래 존재할 것이다. 

포트무디 예술센터에서 지원하는 예술단체 중 포트무디 문학가 모임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 온 작가들을 비롯,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작가 지망생, 그냥 문학이 좋아 참여하는 문학애호가 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작품발표를 한다. 나는 버나비 작가협회 소속이었지만 조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문학인들의 작품을 담은 책자 ‘새로운 출발(New Beginning)’ 출간에 동참하자는 제의를 받고 영역된 자작시 한 편을 보내고 작년 5월 고풍스럽고 단아한 갤러리 비스트로 레스트랑에서 그 시를 낭독도 하였다. 

“너무 염려마세요. 어머니…(중략)…전화드릴 때 마다/이역만리 타향에서 웬 고생 이냐며/종일 우시더니 요즘은/매일 저를 찾아 오시네요//괜찮아요. 저는/사지 멀쩡하고/아직 삶의 의욕이 충만한데/무슨 일 하든 먹고 살지 못할까요/아무리 냉정한 세상이라지만//어머니도 계시는데/지금은 차가운 땅 속에서도/저를 염려하여 밤마다/꿈길 찾아 오시는. <필자의 자작시 ‘괜찮아요>
어머니는 평생 자식걱정이었다. 그나마 내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행복한 일가를 이루어 살 때는 좀 덜하셨다. 대신 다른 자식 걱정에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그러나 1997년의 IMF 경제위기로 다니던 직장이 없어지고, 한동안 실업자였을 때 아들에 대한 걱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50이 넘어 캐나다로 이주하는 아들을 보낼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려 차마 아들뿐 아니라 당신의 며느리, 손자를 바로 보지도 못했다.

살아계실 때는 우리가 이역에서 고생한다고 통화할 때 마다 걱정이시더니 돌아가시고 한참 동안 꿈에 오셔서도 걱정을 하셨다. 이제는 내가 어머니 나이가 되고 며느리를 맞고 손자까지 보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성 싶으신지 꿈길 찾지 않으신다.   

밴쿠버에서 다국적 문인들과 교류하다 보니 그들의 사정이 한국 문인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우선 돈 많은 문인들이 별로 없다. 작품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타인의 작품에 대해 존중하고 문학행사가 있을 때는 열심히 참석하고 서로 협조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기가 발간한 책자를 절대로 공짜로 나눠주지 않는다는 것. 처음 현지 문인의 출판기념회에 초대받아 갔을 때, 책값을 일일이 다 받는 것에 좀 당황했다. , 한국 같으면 출판작품집은 물론 무료로 나눠 주고, 그럴듯한 식사대접이라도 받는 데, 달랑 스낵과 콜라 몇 병 두고는, 참석한 사람들이 작가의 작품을 낭독하면서 마냥 칭찬만 하는 것에 그만 질려버렸다. 혹 괜찮은 레스트랑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참석자는 자기 돈으로 식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 책자 판매 수익금으로 불우이웃돕기를 하기 위해 포트무디 문인회가 가진 시 낭독 콘서트에 사정이 있어 내가 나가지 못하자 한국인 회원 중 한 사람은 내 시의 한국어 낭독을 흔쾌히 대독해 주었다. 영어낭독은 내가 활동하고 있는 버나비 작가협회 문인의 도움을 얻었다. 

피부색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관습도 다르지만 문학이라는 예술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들어도, 돈이나 명예 얻기 요원해도 예술가는 꾸준히 자기의 길을 걸어 간다. 포트무디. 그 예향에서 나는 낯선 이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나의 길을 꾸준히 걸어 갈 것이다. 인근 버라드 해협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나의 결기를 응원한다.


이 원 배 
캐나다 한국문협 이사장·늘푸른 장년회 회장 / ‘수필 시대’  역사문화 기행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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