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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 이웃으로부터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와 같은 해 이민 와 한동네에 살던 프레드락은,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휴가 이야기를 소상히 전해 주었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30년 전 헤어진 친구를 어렵게 찾은 일화였다.  “내가 프라하에 머물 때, 나는 기억을 더듬어 1980년대 헤어진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친구는 오래전 이사를 해, 나는 그 건물 벽에 메모 한 장을 남기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다행히 우리의 극적인...
조정
황 서방, 빗소리를 배경음으로 한 Stjepan Hauser의 첼로 연주와 뜨거운 커피 한잔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고 있는 아침이네. 어느새 잎새를 다 떨군 나무들이 빈 몸으로 묵언 수행을 시작하는 계절, 어제는 볕이 좋아 동네 호숫가를 한 바퀴 걸어 보았네. 건강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음을 감사하며, 벤치마다 새겨진 죽은 이들을 기리는 문장을 곰곰이 음미해 보았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이곳 사람들이...
조정
어릴 적 엄마는 흔들리는 젖니를 실로 묶은 후 갑자기 잡아당기셨다.“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엄마가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지며 주문을 외우실 때, 나는 폴짝폴짝 마당을 뛰어다닌 기억이 있다.오늘 치과에서 작은 어금니를 뽑았다. 그동안 잇몸 통증으로 음식을 씹을 수 없어 결국 임플란트 시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음악이 흐르는 치료실 분위기와 의사 선생님이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마취 주삿바늘의 날카로움은 참기 힘든...
조정
열대어 가게 안은 어둡고 촉촉한 습기가 가득했어요. 바닷속 같은 수족관에는 예쁜 열대어들이 수초 사이로 몰려다녔어요. 구석진 수족관에서 거북이들이 가게 안을 살필 때, 주인아저씨는 무언가를 망설였어요. “어쩔 수 없지, 작은 유리병을 사 올 때까지---.”열대어 가게에 팔려온 우리 베타 피시들은 한 수족관에 넣어졌어요. 그 전에 우리들은 작은 유리병에 혼자 살고 있었어요. 우리는 곧 서로 아름다운 꼬리를 뽐내며 자랑했어요. “잘...
조정
일상의 블랙홀을 벗어나 길을 나서는 일은 나를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일이다. 긴 시간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눈길을 줄 때면, 번잡한 일상의 산란했던 마음이 어느새 고요해진다. 때론 길동무와 정서적 교감을 갖기도 하고 낯선 여행지에서의 자유로움에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어느새 여행은 건조하게 되풀이되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투란도트에게 보이던 칼라프 왕자의 열정이 사라져버린 칠순의 여행객도 그윽한 눈빛으로 은발의 아내를...
조정
어둠이 내린 바다는 아늑하고 고요하다. 밀물에 출렁이던 통나무들의 부딪힘도 사라지고 사방은 번잡과 소요에서 벗어나 있다. 바쁘게 주변을 살피던 불루제이들은 벌써 자취를 감추었고 바람에 너울대는 노란 플라타너스 잎새들만 적막을 깨우고 있다. 오늘 밤, 은하수 길이 남서쪽으로 빗겨 흐르는 밤하늘은 별들의 들판이다. 외로움을 견디는 달님이 살포시 웃고 구름속에 박힌 별들은 보석처럼 빛난다. 하늘을 향한 나무들과 바닷속 고래들 모두...
조정
해마다 이맘때면 아득한 고향의 여름 밥상이 그리워진다. 제철 채소와 집에서 담근 장으로 정갈하게 만든, 몸과 마음을 다스리던 밥상이었다. 보리밥에 아욱국, 노각 무침, 호박 나물, 간 고등어 찜, 통밀 칼국수---, 텃밭이 둥근 소반 위로 옮겨 앉은 소박한 차림새였다. 무더운 여름, 혀의 미각 돌기가 살아나는 강된장과 노각 무침으로 밥상을 차려본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며, 기억의 맛을 찾아서. 지난해보다 한 달여 늦은...
조정
봄날 지리산을 향해 달리는 산과 들의 대기 속에는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했다. 수목들의 푸르름 사이로 산벚꽃이 뭉게 구름 처럼 피어있고, 산비탈 바위틈에선 연분홍 진달래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친구와 차창 밖 풍경에 고향의 봄을 묵묵히 오버랩할 때,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마치 꽃송이처럼 우리 가슴에 새롭게 피어났다.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구례 화엄사(신라 진흥왕 5년 창건)에는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과 석등, 사 사자삼층석탑...
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