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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에 젖으면 2017.03.25 (토)
자박자박 봄비 내리는 길지난겨울 그림자 해맑게 지우는 빗방울 소리 흥겨워 발걸음도 춤을 추네 반 토막 난 지렁이 재생의 욕망이 몸부림치고 시냇가 버드나무 올올이 연둣빛 리본 달고 나 살아났노라 환호성 하네 늙수그레하던 세상 생명수에 젖어 젖어 기지개 쭈욱 쭉 젊어지는 중이네 나도 초록빛 새순이 될까살며시 우산을 접어보네.
임현숙
가을 나무 2016.11.25 (금)
머얼리 노을이 손짓하는 언덕에 빈손으로 선 나는가을 나무입니다 갈 볕이 붉은 물 들인 자리샘 많은 바람이 쓸어내면데구루루내 이름표 붙은 이파리들이저 시공으로 사라집니다 하나,둘이 세상 소유문서에서내 이름이 지워집니다 노을빛이 익어갈수록나는수수깡처럼 텅 빈 나무가 되어갑니다.
임현숙
침묵 - 임현숙 2016.07.29 (금)
너그러워 보이던 바다에 너울이 인다   다스리지 못한 감정이이성을 제치고창백한 입술 사이로 쏟아지며그름은 없고이유 있는 항변만 파고 드높다   차분히 쌓아가던 모래성 허물어지고으르렁거리다 까치놀로 잠잠해지면수화기에서메일에서 카톡방에서회색빛 거품이 인다   시비의 멀미나는 침묵을 배우기로 했다.
임현숙
사월 2016.04.16 (토)
/ 사월은거리마다 꽃들의 웃음소리오일장 봄나물처럼온통 파릇한 설렘늙은 나무도 푸른 귀 쫑긋거리네물빛 하늘엔하얀 구름 수련처럼 피고내 마음 황무지엔 꽃불 번지네아, 사월에는귀 닫고눈 감고마음의 고요를 빌고 싶네.
임현숙
12월을 달리며 2015.12.11 (금)
한 세월의 종착역입니다시간의 나래에서 베짱이처럼 지내던 날을 지우며 이마를 낮춰 손끝에 가시가 돋고발목이 가늘어지도록 달려왔습니다 대못이 박히고 무릎 꺾는 날도 있었지만발자국마다 반성문을 각인한 후  낡은 지갑은 늘 배가 고파도철든 눈동자엔 겁 없는 미소가 찰랑댑니다 겨울나무처럼 허울을 벗고 나니어느 별에 홀로 떨어져도 삽을 들겠노라고앙상한 발가락이 박차를 가합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새봄이 오지 않는다...
임현숙
산다는 건 2015.08.29 (토)
산다는 건주어진 멍에를 메고먼 길을 가는 것 어떤 이는 멋진 차를 타고 어떤 이는 편안한 신발 신고거침없는 여행길이지만 어떤 이는 맨발로부르트고 피 흘려도쩔뚝이며 가야 하는 것 걷다가 걷다가큰비를 만나면젖은 솜 지고 가는 당나귀가 되다가도해 뜨는 날엔이슬 앉은 잎사귀가 되는 것 산다는 건푸른 내일을 그리며 오늘 하룻길 가는 것.
임현숙
산이 푸른 옷 입으면마을엔 꽃바람 일렁이네 여우들 가슴팍 보일락 말락늑대들 이사이로 엉큼한 꽃바람 들락날락칭칭 동이고 장 보러 온 나는 몇 가지 사 들고 줄행랑이네 발코니에 나와 앉으면개구리 우는 수풀에 고라니 한 쌍 머물다 가고 물기 어린 꽃바람 내 가슴 흔들다 가네.
임현숙
새 달력에 바란다 2015.01.16 (금)
폭죽 소리 달려와 새날을 열며내게로 네게로복을 쏟아붓는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더 바라는 건 죄이지만새 달력에 간절한 바람을 담는다 이방인의 멍에 벗고가로등 소곤대는 서울 밤거리를거침없이 모국어로 떠들며 걷고 싶다고 느림보 밴쿠버 시계뺑뺑 도는 서울 시계로 바꿔 차고 봄이면 친구랑 냉이 캐고섬돌 밑 귀뚜리 우는 가을에 취하고 싶다고 그 하늘가 바라보려고향 하늘 가리고 선 키 큰 나무들 베어내며 오늘 한 발 내일 두 발...
임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