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밴쿠버한인문협 2014 신춘문예- 수필부문 가작] 조정, 자족(自足)

조정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3-24 15:13

  비 오는 겨울 아침, 밤새 내린 비는 풀밭 위에 크고 작은 연못들을 만들어 철새 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브리 치즈와 양송이버섯을 넣은 크레이프는 조슈아 벨의 바이올린곡과 잘 어울리는 아침 메뉴인듯하다. 음악과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크레이프 맛에 대한 남편의 호의적인 평가에 귀 기울이니, 그윽한 커피 향과 함께 내 안에 평화로움이 퍼진다. 친구가 보내온 이메일에 쉽게 답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아침이다.
 
  "나이 든다는 쓸쓸한 자각이 희망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하다. 나는 조건과 상황의 굴레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에 눈을 돌리며 자족하는 노년의 삶을 살고 싶다.” 언제나 그렇듯이 친구는 진지함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곳으로부터 구함이 없이 자기가 가진 것으로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나는 친구가 보내온 의미 있는 주제에 대해 답을 쓰기 시작한다.

 '자족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연과 모든 생명의 무상함을 보며 마음의 집착을 버리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며,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서 희망을 보려 하고, 현재에 집중하며, 내 마음속의 진실을 형상화하려 애쓰고, 삶의 서글픔도 영혼의 황홀한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알며,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폭넓은 사유를 위해 책과 음악 그리고 친구를 소중히 생각하고…….'
  내 '행복 사전' 안에 살아 숨 쉬던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이러한 선택된 삶의 방식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 모아온 귀한 처방전이다. 처방전의 약들을 한번에 먹는 일은 무리수가 될 것이며, 약 먹는 시간의 시차를 기억하고, 음식과 꼭 같이 먹어야 하는 약이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일이다. 만일 몸 안에 고질적인 질병이 재발할 때는, 또 다른 특별한 처방전이 기다리고 있어 걱정할 일이 없다. 그것은 흙냄새 나는 텃밭으로 나가보는 일이다. 맑은 공기 속에서 새 소리를 듣는 노동의 시간은, 어느새 나를 삶의 짐을 견디어 내는 낙관론자로 만들 것이다.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나, 진정으로 살아있는 나를.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이 한 말을 기억한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때를 되돌아 보면서 나는 갑자기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허름한 화덕, 바닷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작가는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따뜻한 눈길로 마음에 담을 때가 행복을 체험하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생 후반의 우리들은 힘든 고기잡이를 끝내고,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힘겹게 항구에 닻을 내린 어부들이다. 폭풍우 속의 파도를 헤치며 내 안의 절망과 싸워 이기고 돌아온 어부들은 육지의 안식처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 이제까지 잘 왔어!”
  우리가 일상의 사소함 들을 기적이라고 받아들이며 자신을 위로할 때 우리는 행복한 순간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자족 하는 마음가짐은 내가 행복 해지기 위한 선택된 삶의 방식이다.’
  나는 친구의 ‘자족하는 노년의 삶’에 대한 진솔한 글에 답을 보내며, 마늘 싹들이 파랗게 올라오는 눈 덮인 텃밭 사진을 첨부한다.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는 바이올린 곡과 함께.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