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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혜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2-22 00:00

캐나다 의료보험의 아버지, 토마스 클레멘트 더글라스

토마스 클레멘트 더글라스 주요 연보
1904년   10월 20일 스코틀랜드 출생
1919년   마니토바주 위니펙 이주
1930년   브랜든 칼리지 졸업. 침례교 목사
1935년   CCF(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대표 선출
1961년   사스캐처원주 수상 17년재임후 신민당 창당
1971년   신민당 대표 사임
1979년   정계은퇴
1980년   캐나다 명예훈장 수여
1986년   2월 24일 암으로 사망

2004년 11월 캐나다 방송 CBC는‘위대한 캐나다인 10인’가운데 최고의 인물로 토마스 클레멘트 더글라스(Thomas Clement Douglas, 1904~1986)를 선정했다. 캐나다 의료보험의 아버지(Father of Medicare)로 불리는 그는 사스캐처원주 수상을 7차례 역임했다. 스코틀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인 토마스 더글라스는 정계입문 이전에는 침례교 목사를 지내기도 했다. 토마스 C. 더글라스 사망 22주기를 맞아 그의 생애를 뒤돌아 봤다.

스코틀랜드 이민 2세
청년시절 권투선수 활약

토마스 더글라스는 1904년 10월 20일 스코틀랜드 폴커크(Falkirk)에서 태어났다. 1910년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했으며 유년시절을 마니토바주 위니펙에서 보냈다. 제철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토마스 더글라스는 가난과 싸워야 했다. 10살 때에는 골수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나 치료비가 없었다. 그에게 남은 방법은 다리를 잘라야 하는 것. 그러나 의과대학생의 실습대상이 되는 대가로 무료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토마스 더글라스는 의료혜택은 언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뿌리깊은 신념을 키웠다.
1914년 토마스 더글라스의 가족은 영국으로 돌아 갔다가 1919년 캐나다로 다시 이주했다. 토마스 더글라스는 ‘피의 토요일’로 알려진 1919년 위니펙 노동자 투쟁을 목격했다. 노동자 2명이 사망한 총파업을 겪으면서 토마스는 근로자의 삶에 눈 뜨게 된다. 청년시절 토마스 더글라스는 복싱 선수로도 활동했다. 1922년 라이트 헤비급 권투선수로 출전, 마니토나주 챔피언에 올랐다. 코가 깨지고 이빨 몇 개가 부러졌지만 이듬해에도 타이틀을 유지했다.
1924년 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브랜든 칼리지에 입학했다. 당시 유행하던 사회개혁과 사회복음운동에 큰 영향을 입었다. 1933년에는 맥마스터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스캐처원주 웨이번(Weyburn)에 있는 캘버리 침례교회의 목사가 된 토마스 더글라스는 대공황을 거치면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했다. 현재의 NDP(신민당)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동자동맹(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 CCF) 당원이 된 그는 1935년 연방 선거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1935년 정계입문
사스캐처원주 수상 7차례 연임

토마스 더글라스는 1942년 사스캐처원주 CCF의 대표로 선출됐다. 1944년 6월 15일 치러진 주선거에서 CCF는 전체의석 53석 가운데 47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당시 사회주의를 표방한 정당의 출현은 캐나다뿐만 아니라 북미주 최초였다.
토마스 더글라스가 이끄는 사스캐처원주 CCF는 1960년대까지 5번 연속 집권했다. 토마스 더글라스는 1944년부터 1961년까지 7차례연속 주수상을 연임했다. 그는 집권 1기 때부터 사스캐처원 전력공사 등 공기업을 출범시켰다. 캐나다 최초의 자동차보험공사를 비롯해 민간부문에 맡겼던 사업을 공기업형태로 정부가 떠맡았다.
사스캐처원주 권리헌장을 만들어 자유와 평등에 대한 권리확인에 나섰다. 성과 인종 차별 금지 법안은 18개월 뒤 UN에 의해 세계인권선언으로 채택된다. 토마스 더글라스의 헌법 제정안 주장은 1982년 4월 17일 캐나다 권리헌장 선언으로 실현된다. 토마스 더글라스 정부는 전후 복구사업과 재정흑자를 기반으로 1961년 일반의료보험법안을 제정했다.
CCF와 캐나다 노동자동맹은 1961년 신민당(NDP)을 출범시켰다. 토마스 더글라스는 하젠(Hazen) 후보와의 대표경선에서 승리, 신민당의 초대 대표가 됐다. 그러나 1962년 연방 총선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는 BC주 버나비-코퀴틀람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다시 정치무대에 섰다. 1978년 정계에서 은퇴한 토마스 더글라스는 1986년 2월 24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1988년 그는 캐나다 의료협회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캐나다 의료보험의 아버지

토마스 더글라스가 남긴 최고의 업적은 의료보험제도 도입이다. 1962년 여름 사스캐처원주는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려는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의료계의 치열한 공방이 진행됐다. 수입감소를 우려한 의사들은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토마스 더글라스는 끝내 이를 관철시켰고 주수상에서 물러난 이후 후임자 우드로 로이드(Woodrow Lloyd)에 의해 의료보험이 시작됐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의 사스캐처원주의 의료보험은 캐나다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962년 존 디펜베이커 총리는 국가의료개혁위원회장으로 사스캐처원주 출신 에멭 홀 판사를 임명했다. 마침내 1964년 홀 판사는 사스캐처원주 의료보험제도를 원형으로 전국적인 의료보험제도 시행을 권고하기에 이른다. 1966년 피어슨이 이끄는 자유당 정부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각각 50%씩 부담하는 캐나다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선언했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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