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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10-12 00:00

체 게바라 사망 40주년.. “당신의 본보기, 신 새벽의 빛”

“게바라는 살아있다” 멕시코시티 NGO센터 벽에 걸린 아르헨티나 태생의 쿠바 혁명 영웅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오른쪽), 마하트마 간디(왼쪽)와 멕시코 혁명의 지도자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대형 걸개그림 앞으로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AFP

쿠바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Che Guevara)는 저항운동의 대명사다. 10월 9일 게바라 사망 40돌을 맞아 볼리비아의 라 이게라(La Higuera) 기념물 앞에는 “당신의 본보기, 신 새벽의 빛”이라는 글귀가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한때 게바라의 사진은 대형 걸개그림으로 티셔츠나 컵, 심지어 재떨이에까지 쓰였다. 검은 베레 모자에 덥수룩한 턱수염을 기른 열정적인 눈빛은 우상처럼 번뜩였다.

쿠바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매일 아침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를 할 정도다. 전세계의 관광객들은 볼리비아 남동부 정글을 따라 게바라가 걸었던 혁명의 길을 순례하기도 한다.

그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이름에 덧붙인 ‘체(Che)’는 스페인어로 ‘동지’ 혹은 ‘동무’라는 뜻이다. ‘체’는 1953년 과테말라의 진보정권이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지원한 쿠데타로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의사의 길을 걷던 그는 세계의 모순을 치료하겠다며 해방전사로 거듭났다. 1956년 7월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 ‘체’는 쿠바혁명을 꿈꾸게 된다.

‘체’는 마에스트라 산맥에 숨어들어 게릴라활동을 벌이면서 혁명군을 모았다. 1958년 ‘산타 클라라’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마침내 1959년 1월 수도 아바나에 입성함으로써 쿠바 공산당 정부를 세웠다.

‘체’는 쿠바 중앙은행총재와 산업부장관을 지내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도 벌였다. 1965년 당시 내전 중이던 아프리카 콩고(옛이름 자이르) 혁명을 위해 노력했다. ‘체’와 혁명에 나섰던 반군지도자 로랑 카빌라는 32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1997년 수도 칸샤사를 점령했다.

‘체’는 볼리비아가 5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의 불씨가 남미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1965년부터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던 게바라는 1967년 10월8일 '라 이게라' 라는 정글 마을에서 볼리비아 정부군에 체포됐다.

처형될 당시 ‘체’의 나이 39세였다. 1997년 발굴된 ‘체 게바라’의 유해는 현재 쿠바 산타 클라라 전승기념관에 안치 되어 있다. 지난달 미국 달라스의 헤리티지 경매장에는 체 게바라의 머리카락과 지문 사진, 작전 지도 등이 경매로 나오기도 했다.

칼로스 페브라(Carlos Puebla)가 체 게바라에게 헌정한 시(詩)에 곡을 붙인 노래는 남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영원한 우리의 지도자 체 게바라”(Hasta siempre; Comandante Che Guevara)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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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체 게바라 이젠 ‘이미지 상품’

처형된지 40년 맞아 곳곳서 이미지 활용
남미 좌파 정권은 국민 통합 도구로

 “모터사이클을 탄 스타 혁명가, 이상주의의 순교자, 투쟁에 지친 제임스 딘”.

영국 시사주간지 뉴스테이츠먼은 9일로 사망 40주기를 맞은 남미의 좌파 게릴라 지도자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Che Guevara)를 이렇게 표현했다. 체는 1967년 10월 8일 볼리비아 정글에서 붙잡혀 이튿날 인근 학교에서 처형됐다. 40년 세월을 넘어, 체는 슬픔과 분노에 찬 혁명 전사에서 문화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났다. 영국에서 체의 초상화 전시를 하고 있는 트리샤 지프(Ziff)는 BBC방송에 “젊고 잘 생긴 혁명가가 이상(理想)을 좇다 죽었다. 죽는 순간, 그는 저항과 변화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베레모 아래로 긴 머리가 휘날리는 체의 유명한 사진에 대해 “아마도 20세기에 가장 많이 재생산되고, 재활용되고, 착취당한 이미지일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서도 체의 사진은 티셔츠나 머그컵, 재떨이에까지 쓰인다. 런던에서 지난해 열린 체 게바라 전시회에는 팝 스타 마돈나가 체의 이미지를 흉내낸 앨범 표지, 장 폴 고티에의 선글라스, 베들레헴 분리장벽의 낙서, 와인, 모형 자동차, 스와치 시계 등 다양한 체 이미지의 변용 상품들이 등장했다.

체가 붙잡혔던 볼리비아 정글의 바예그란데 마을엔 체를 주제로 한 호텔, 식당과 기념품 상점이 성업 중이다. ‘루타 델 체(‘체의 길’이라는 뜻)’로 불리는 체험 관광 코스도 인기다.

하지만 정작 체가 공산혁명을 꿈꿨던 남미에서 그는 좌파 정권에 이용당하는 정치적 상징이 됐다. 선거로 당선된 좌파 대통령들은 국민 통합이나 반미의식 고취를 위해 그의 이미지를 이용할 뿐이다. 대통령궁에 코카잎으로 만든 체의 대형 초상화를 걸어 둔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Morales) 대통령은 로이터통신에 “1960년대 사람들은 사회 변혁을 위해 총을 들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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