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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생리학과, 졸업을 4개월 앞두고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1-10 00:00

드디어 이번 주, 대학들이 2학기를 개강했다. 짧은 2주 겨울 방학을 뒤로 하고 돌아온 UBC 캠퍼스는 좀 더 어두워 보인다. 이제 반년 남았다는 생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에는 걸을 때마다 자꾸만 땅을 쳐다보게 된다. 어제의 친구는 어디 가고 없고, 모두 미래의 경쟁 대상이 되어 버렸다. 오늘 학교 첫날 학교 서점 앞에 늘어선 줄을 보면서 처음 UBC를 방문했을 때를 회상해 봤다.

캐나다로 이민 온지 몇 주 되지 않은 2000년 10월, 고등학교 입학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UBC를 찾았다.  부모님께서는 이 학교가 나의 미래 대학이라고 하셨다. 벽보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버스 정류장, 자유롭게 돌아 다니며 이야기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것이 자유구나 하며 캠퍼스의 낭만에 빠져 들었다. 그 이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나의 공부 목표는 UBC 합격이었다.

2004년 여름, 드디어 UBC 사이언스학과 합격 통보를 받고 정말 날아갈 듯 기뻤다. 드디어 개학 날, 1학년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나는 리더들을 따라 UBC를 투어하며 내가 앞으로 4년 동안 공부할 곳이라는 생각에 기쁨이 넘쳤고 1학년 첫 학기 동안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자유를 만끽했다.

1학년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나는 고등학교 때처럼 시험 며칠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시험을 치르고 난 후에야 나는 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시험지를 보면서 아무리 봐도 모르는 문제들을 접했고, 15분 남았다는 교수님의 말에 말도 안 되는 답을 마구 적어 내려갔다. 그래도 나는 그때까지 점수는 그런대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화학 수업 중에 시험지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이후 몇 분 동안, 200 명의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나의 첫 화학 점수는 50점.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듣던 나로서는 믿지 못할 점수였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고 대학교에 온 나는 첫 중간고사를 시작으로 마음가짐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첫째, 대학교에서 주는 자율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 둘째, 고등학교의 공부 방식과 성적은 대학에서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정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내가 대학에 들어오기 전, 누군가 대학 생활의 어려움을 자세히 설명해 줬더라면 그렇게까지 실망하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2학년을 마칠 쯤에는 선배들의 도움과 노력으로 듣고 싶은 전공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의 평균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나의 목표는 의과 대학교로 맞춰졌다. 나는 생물학에 관심이 많아 생리학과에 지원했다. 생리학 공부들이 의과 대학과 관련이 있고, 또한, ‘Honors’ 학위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3학년 시작, 의대를 목표로 생리학을 시작한 나는 또 다른 허탈감을 느꼈다. 첫째로 이 학과 많은 학생들의 평균은 보통 90점 이상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벌써 의대 준비를 많이 해놓은 단계였다. 1학년 중간고사 이후 많이 나아진 것 같았던 나의 정보력은 무색해졌고 다시 한번 쓴 맛을 봐야 했다. 생리학과 대부분의 학생들은 의학계에 계신 부모님이나 친지들을 통해 고등학교 때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 3학년이 될 때까지 실험실 경험이 없던 사람은 나 하나 뿐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의대는 점수 잘 받고, 봉사 활동 좀 하면 들어 갈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해온 봉사 활동은 의대 신청서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때부터 나는 늦었지만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자리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소극적이라는 말을 들었던 나에게는 누구를 찾아가 부탁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소극적인 성격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이메일 등으로 자리를 찾았다. 30통 정도의 이메일을 보낸 후에야 한 두 군데서 답장이 왔으나 나에게까지 자리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인지, 노력의 성과였는지 못 받아주겠다던 실험실 중 한 곳에 자리가 나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여름 동안 다른 학생들을 따라 잡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닌 결과, 실험실 외에도 캐나다 군대 의무병 등 6가지 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3학년에서 또 달라진 것은 배우는 것들이 더욱 어려워지고, 시험이 전부 논문식으로 바뀐 점,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실험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특히 논문식 시험은 이민자인 나에게 특히 어려웠다. 왜 1학년 필수과목으로 영어를 들어야 했는지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생리학과 4학년의 가장 큰 장애물은 공부보다는 실험이 아닌가 싶다. 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주말을 실험실에서 지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노력하는 시간에 비해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잠깐의 실수가 며칠의 실험을 망치는 경우에는 너무나도 허탈했다.

4학년을 반년 남긴 지금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크다. 아직 발표가 나지도 않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여러 생각을 한다. 나는 나 자신의 꿈으로 의대를 지망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아시아권 학생들은 부모들의 부추김에 의해 의대에 진학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의사가 되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아는 것일까? 내과 레지던트들은 한번 불려가면 수면 없이 36시간은 기본이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아픈 사람들을 보고 가끔은 죽음도 지켜 봐야 하는 직업이 의사이다.

의대에 지원하고 싶다면 빨리 준비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대학교 시작 때부터 의대 진학에 맞춰 계획을 짜나간다면 훗날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선배들이 이런 경험을 모두 겪었겠지만,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런 얘기를 접할 기회가 없다. 나 자신도 아직 의대 진학을 원하고 있는 학생 중 한 명일뿐이지만, 나의 경험담이 다른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동일 학생기자 (생리학과 4년) dongil4u@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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