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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만 했어요”… 경찰 덮친 다음날에도 수원 홍등가 불은 켜졌다

밴조선에디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5-08 13:45

[우리동네 24시]눈앞에 펼쳐진 성매매 불법 현장, 왜 강제폐쇄 못할까

지난 1일 오후 11시쯤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길 건너의 한 골목길은 대낮처럼 환했다. 약 150m 정도의 1차로 도로 양쪽으로 온통 유리로 된 가게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붉은 불빛이 거리를 물들였다. 유리방 안에는 화장을 짙게 한 여성들이 거리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남성들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기도 했다.

일부 여성들은 유리방문을 살짝 열고 남성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얼마냐” “20분에 10만원” 등 남녀의 대화는 대개 가격 흥정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는 여성과 몇 마디 나눈 후 잰걸음으로 유리방 안쪽으로 함께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1일 오후 11시쯤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길 건너의 집창촌 거리 일대의 모습. 골목길 사이로 남성 여러명이 서성거리고 있다. /조철오기자
지난 1일 오후 11시쯤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길 건너의 집창촌 거리 일대의 모습. 골목길 사이로 남성 여러명이 서성거리고 있다. /조철오기자

이곳은 성(性)을 사고파는 수원역 집창촌 거리다. 최근 경기남부경찰청이 한 업소를 단속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업주 A씨는 1998년부터 최근까지 대(代)를 이어 이곳에서 업소 5곳을 운영하며 128억원의 막대한 불법 수익을 거뒀다. 경찰이 업소 문을 부수는 등 강력한 단속에 나섰지만 그 다음 날도, 그리고 이날 밤도 일대 업소들은 버젓이 영업을 벌이고 있었다.

현행법상 성매매는 남녀 당사자와 업주 등이 처벌 대상이다. 그럼에도 경찰과 수원시 등은 60년 넘도록 공개된 성매매 영업장을 당장 폐쇄하지 않고 있다. 실제 기자가 현장을 취재한 당일에도 경찰 순찰차는 경광등을 번쩍이며 일대를 순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관 2명은 눈앞에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단속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방 안의 남녀 “그냥 대화만 나눴는데요?”

경찰이 현장 단속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는 성매매 사실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의 성매매는 많은 경우 성을 사고파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업주가 만들어 놓은 영업장 안에 남녀가 문을 잠그고 짧은 시간 동안 성행위를 벌인다. 남자 손님과 여성 업주 등 셋이 암묵적으로 이를 합의한 셈이다.

보통 서로 합의한 당사자들은 경찰 단속에 적발되면 “그냥 대화만 나눴다” “성행위는 절대 없었다”는 식으로 성행위 사실을 부인한다. 게다가 이런 경우 경찰은 “공권력을 앞세워 사유 재산을 강제로 부쉈다”는 업주 측 공격을 받게 된다. 업주들이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묻기도 한다. 성행위 영상 등 물증을 확실히 확보해야 혐의를 부인하는 업주 측 주장을 뒤엎을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성행위 영상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성매매에 대한 정의가 불명확한 것도 현장 단속을 어렵게 한다. ‘성을 사고판다’는 정의 중 성에 대한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녀가 성행위를 한창 벌이는 시점에 경찰이 현장에 진입할 경우 입증이 쉽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은 경찰이 문을 부수는 등 밖에서 시끄러운 상황이 발생하면 남녀가 성관계를 그만둔다. 몇 분 뒤 방 안에 들어간 경찰은 옷을 입고 가만히 앉아 있는 두 남녀를 발견할 뿐이다.

현장에서 적발된 남녀는 “우리는 애인 사이다”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나눈 것이다”라고 발뺌한다. 경찰이 콘돔 등을 발견해도 성매매의 직접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경찰 관계자는 “성매매 사실이 입증되려면 당사자 중 한 명이 이를 인정해야 한다”며 “지난 집창촌 단속도 업주에게 성 착취를 당한 피해 여성과 그의 고발장을 확보할 수 있어 수사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수원시 “강제 폐쇄? 풍선효과 가져온다”

수원시도 경찰만큼 사정이 복잡하다. 집창촌 일대를 강제로 철거시킬 경우 여성 종사자들이 곧바로 주변의 다른 곳으로 떠나는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 산업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키려면 여성 종사자들의 자활을 돕는 것이 최선이라는 논리다. 은밀하게 숨는 것보다 공개된 장소의 여성을 설득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수원시는 여성 성매매 종사자 한 사람당 최대 2360만원의 직업 훈련비와 생계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발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여성에게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수원시는 땜질식 처방보다 근원적 해결책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지난 3월 경찰 압수수색 결과, 수원역 부근 집창촌에서 업소 5곳을 운영하던 가족이 128억원의 불법 수익을 챙긴 것이 확인됐다./경기남부경찰청

수원시가 그동안 집창촌 정비 사업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 2014년 이 일대를 민간 개발 사업으로 묶어 집창촌 전체를 소멸시키려 했다. 하지만 주변 비행장 때문에 고도제한(최대 45m) 규제에 걸려 고층 건물을 짓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쳤다. “사업성이 없다”는 민간 사업자들의 판단이 나오자 정비 사업은 흐지부지됐다. 지난 2018년에는 환경 정비 사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화재가 발생하면 위험하니 소방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도로를 넓히며 업소 일부를 없애기도 했다.

◇주변 도시 개발로 자연스럽게 소멸하길 기대

집창촌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공창제가 제도화됐고, 사람들이 모이는 역 인근에 집창촌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수원역 집창촌은 과거 시외버스터미널과 수원역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한때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했지만, 2001년 버스터미널 이전과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 시행 등으로 규모가 축소됐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업소 110 여 곳이 영업에 나서고 있다.

집창촌 길 건너에선 현재 4000여 세대 대단위 재개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인근에는 수원 롯데몰과 애경백화점, 노보텔 호텔 등이 있고 그 뒤로 유통 복합몰이 공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이곳은 고속철도(KTX)와 일반철도, 수도권 지하철 1호선과 분당선, 수인선이 오가는 역세권이다. 2026년에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 노선까지 들어온다.

수원시는 이곳 집창촌도 조만간 자연스럽게 개발의 물결을 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원시와 경기남부경찰청 등은 올해 초부터 업주들을 설득해 자진 폐쇄를 유도하고 있다. ‘은하수 마을’이란 단체를 만든 종사자들은 “정리할 기한을 주면 자진해서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경찰과 약속한 자진 폐쇄 기한은 이달 말까지다.

지난 1일 오후 11시쯤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길 건너의 집창촌 거리 일대의 모습. 골목길 사이로 남성 여러명이 서성거리고 있다. 해당 거리는 이달말 폐쇄를 앞두고 있다. 수원시는 이 골목길을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성매매 업장 대신 식당, 커피숍 등의 문화거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조철오기자
지난 1일 오후 11시쯤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길 건너의 집창촌 거리 일대의 모습. 골목길 사이로 남성 여러명이 서성거리고 있다. 해당 거리는 이달말 폐쇄를 앞두고 있다. 수원시는 이 골목길을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성매매 업장 대신 식당, 커피숍 등의 문화거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조철오기자


대신 수원시는 업주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리모델링화 계획을 세웠다. 집창촌 거리에 길게 늘어선 유리방을 식당이나 커피숍 등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유동 인구가 늘어나게 돼 암묵적으로 벌어졌던 성매매 문화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수원시는 디자인, 건축재생, 여성 인권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효율적인 활용 방안 마련에 나섰다. 수원시 관계자는 “집창촌이란 구시대 유물이 곧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시민 안전을 위한 통행길을 확보하고 문화거리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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