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수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지나는 나그네 마냥 잠시 봄이 찾아 왔던 것을 잊은 채, 뜨거운 여름을 시원한 바다에서 보냈던 시간도 눈 깜짝 할 사이 지나, 어느 순간 붉게 물들인 나무들을 바라보며 시간의 무상함을 말하다 또 거센 추위에 맞서야만 하는 혹독한 시간을 지나고, 마침내 다시 따스한 기운이 스며드는 햇살에 몸을 담그고 볼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게 될 때, 하얀 목련 꽃을 바라보며 벌써 봄이 왔다고 탄성을 부른다.
그런데 지금 까지 밴쿠버에 살면서 매년 봄을 알리기 위해 제일 먼저 얼굴을 보여준 하얀 목련 꽃을 애타게 기다려 본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6장의 꽃잎을 피우기 위해 오랜 시간을 참고 견디어 온다는 목련의 강인함도 알았다.
매년 봄, 3월에서 4월 초에 벚꽃 보다는 빨리 피워서 입을 벌리고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팝콘 처럼 눈을 정화 시켜 주고, 아름다움의 고귀함을 일깨워준 목련이 여전히 뺨을 때리는 추위가 도사리고 있어 활짝, 방긋 웃지 못하고 있었다. 밝고 따뜻한 햇빛을 흠뻑 맞고 겨울 내내 움츠려서 기지개를 피우고 싶을 목련 꽃잎은 준비만 벌써 오래전 부터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백목련 꽃말이 이루지 못할 사랑인것인가…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에서 사는 사람들과 땅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었던 그런 시절, 하늘 나라 왕에게 예쁜 공주가 있었다. 하늘 나라 청년들은 누구나 그 예쁜 공주를 짝사랑했다. 하지만 공주는 오로지 땅의 나라 북쪽에 살고 있는 바다지기만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주는 아버지 몰래 궁전을 빠져나와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바다지기가 사는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주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다지기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
공주는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고 그만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말았다.
며칠 후, 바닷가로 쓸려 온 공주의 시신을 발견한 바다지기는 공주의 애달픈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공주의 시신을 자기 집 앞에 있는 앞 산에 고이 묻어 주었다.
한동안 자신과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죽은 하늘나라 공주를 생각하며 긴 슬픔에 잠겨 있던 바다지기는 자기의 아내에게 잠자는 약을 먹인 뒤 하늘 나라 공주 곁에 나란히 묻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하늘 나라 왕은 공주를 백목련으로, 바다 지기 아내를 자목련으로 피어나게 했다고 한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위해 또는 어떤 목표를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는 마음은 너무 익숙하지만 원하고자 하는 것이 이루어지 지기는 참으로 힘든 것 같다.
어렵고 아쉬운 건 사람 뿐 만 아니라 햇님도 마찬가지다. 지금 까지 단 한번도 약속을 거스르지 않고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봄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기후 이상으로 본인 임무를 다하지 못해 몹시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젠 예전처럼 모든 것이 똑같지 않다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살면서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이,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누구를 진심으로 좋아해서 마음을 다했던 것이…결과는 참으로 허탈하고 무색해질 만큼 형편없을지라도 마음을 다하면 언젠가 스스로 인생을 살면서 귀한 것이 뭔지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목련 나무도 올해 처럼 햇님을 바라보며 따뜻한 햇살을 활기차게 내려 달라고 기도 한 적이 없었을 거였다. 이젠 매년 봄이 오면 피는 목련꽃 하나라도 그 아름다움을 귀하게 바라보고, 햇살의 따뜻함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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