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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적 종말론 (Real Eschatology)

문영석 전 서강대 대학원 환경신학 외래교수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03-17 16:04

실제적 종말론 (Real Eschatology)
문영석, 전 서강대 대학원 환경신학 외래교수/환경부 자문위원

지난 2월 25일 캘리포니아 LA 일대에 불어 닥친 눈 폭풍 뉴스를 보는 순간 나의 귀와 눈이 의심될 지경이었다. LA는 그곳 한인성당의 특강요청 때문에 거의 매년 방문했던 곳이라 매우 낯이 익은 거리들인데 눈 덮인 야자수들의 모습이 극도로 생경스럽게 보였다. 불과 한 달 전 극도의 가뭄에 시달리던 캘리포니아에 3주간이나 집중 폭우가 내려 홍수피해가 극심했는데 이번에는 눈 폭풍이 쏟아진 것이다. 반면 워싱턴 DC등 동부는 23일 27도까지 올라가 2월 중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사실 기상 이변은 이제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이번 겨울 북반구에 있는 미국은 1월 30일 미네소타 주의 최저 기온이 영하 48.3도로 남극 극지점보다 15도 이상 낮은 초유의 한파를 기록했으며, 남반구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작년 서부 온슬로 지역의 기온이 사상 최고 기온인 50.7도까지 치솟는 폭염을 기록했다.

극심한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지구 온난화는 그동안 자연발생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인류가 만들어낸 재앙인가라는 논란이 있어왔다.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이행될 때 기온이 상승하는데 이 이론대로라면 지금 우리가 더워지는 시기에 살고 있고 지구온난화는 자연현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만들어낸 재앙이라는 견해에 의하면 빙하기와 간빙기의 지구 평균온도 차이가 5도밖에 안 되고, 그것도 10만년이란 기한을 두고 천천히 왔다 갔다 해 생태계가 적응할 시간이 충분했다. 그러나 인간이 화석연료를 태워서 불과100년 만에 1도가 증가한 것은 자연의 속도보다 100배나 빠른 속도이다. 이 수준으로 간다면 2060년경 2도가 증가하는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즉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지나버린 것이라서 인류는 역사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회복 불가능한 기후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대기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인간은 유사 이래 이처럼 규모가 크고 복잡한 환경문제에 일찍이 직면해 본적이 없다. 오늘날 지구 환경의 오염과 생태계의 급속한 파괴는 인류로 하여금 “실제적 종말론” (Real Eschatology)을 체험하게 하고 있다. 뿌연 하늘, 탁한 공기, 썩어가는 강, 산성화되어 가는 토양은 서서히 “침묵의 봄”이 우리 주위에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하늘엔 새가 날지 않고, 땅엔 벌레나 짐승이 없으며, 강엔 고기가 없는 그러한 생태계, 그리하여 죽음의 그늘이 서서히 지구를 뒤엎는 그러한 종말의 날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로백 (T. Loback)의 말처럼 “인간은 다음 세기를 살아가면서 점점 더 식물과 동물들을 쓸어내어 버리고는 필경 자신이 황폐화시킨 지구 위에서 스스로 끝장나고 말 것이다.” 가루디(R. Garudy).의 말은 더욱 음산하다. 인간이 “앞으로 30년을 지난 30년처럼 살아간다면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집단묘지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사실 정황을 “실제적 종말론”으로 규정한 바이제커(Weizsäcker)의 예언적 통찰은 숙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생태계의 위기는 인류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추구해왔던 산업화의 결과라는 것이 자명해졌다. 근대 문명에서 과학과 기술은 인간에게 풍요와 복지를 약속하는 축복 받은 단어이며 풍요로운 미래를 보증해 주는 것처럼 보여졌으며 그러한 약속이 여러 면에서 성취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빈곤과 기아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되려고 하는 순간에 공해의 발생과 자원의 고갈로 인해 삶의 질을 저하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쪽에서는 산업공해를 유발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생산 활동을 급격하게 증가시켜가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막대한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여 그것을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가당착 적인 모순에 빠져있는 것이다.

환경과 경제에 관한 캐나다 전국 원탁회의(Canadian National Round Table on the Environment and the Economy)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그 동안 3번의 대규모 혁명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농업 혁명, 두 번째는 산업 혁명, 세 번째는 정보 혁명이고, 이제 인류는 네 번째 혁명인 생태 혁명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각각의 혁명기는 그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획기적인 생산을 이끌어 왔으나, 이러한 생산들이 모두 자연의 파괴와 고갈 위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제4 혁명기는 그 이전의 어떤 혁명과도 비교할 수 없는 파괴 없는 생산을 만들어 내기 위한 사회의 재구성으로 이끌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런 혁명적 변화는 이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캐나다는 작년 12월 20일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들을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젠 어느 식품점에 가도 플라스틱 봉투 대신 종이봉투만 있을 뿐이고, 일회용 식기도구들을 추방하고 2030년까지 “zero plastic waste”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소명에 응답하기 위해 한인들도 토론토와 밴쿠버에 “생태희망연대”를 결성하였으며, 밴쿠버에서는 작년 4월부터 매월 셋째 주 일요일 오후에 포트 코퀴틀람 게이츠 파크에서 만나 포코 트레일을 따라 쓰레기를 주워오고 있다. 공원 청소부들은 쓰레기통과 주변의 큰 쓰레기만을 처리할 뿐, 우리처럼 숲속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은 처리하지 않는다. 쓰레기를 줍는 동안 산책중인 수많은 시민들이 다가와 의외라는 듯 온갖 칭찬과 격려를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조그만 행동이 보는 이들에게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또 아시아인들에 대한 이상한 편견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지난 20년간 캐나다학을 강의해오면서 늘 캐나다는 인종차별이 거의 없는 나라라고 자부해왔는데 이런 자부심이 충격을 받는 일이 있었다. 작년 10월24일 주 밴쿠버 총영사관이 주최하는 브라운백 세미나에 초대 받아 “역사적 고찰을 통해 본 한. 카 관계의 성찰과 미래”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이 세미나는 주로 도심지에서 일하는 한인 2세들이 점심시간에 만나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점심을 함께하면서 2세들 간의 친목을 위해 총영사관이 기획. 주관하고 있다. 그래서 참석자 대부분이 젊은 2세들이었는데 그날은 중장년 2분이 참석하였다. 필자가 강의 말미에 인종차별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난 1981년 캐나다 온 이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는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술회하였는데 질의응답시간에 어떤 장년 한분이 자신은 최근 버나비 마운틴을 산책하면서 한번은 “차이니스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폭언을, 한번은 발길질까지 당했다고 날카로운 반론을 제기하여 충격을 받았다. COVID-19 유행 후 소위 “우한 바이러스”라는 오명으로 반 아시안 혐오 정서가 싹트면서 아시아인에 대한 폭언과 폭행 신고건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광역 밴쿠버 인구의 3분1을 넘는 아시아인들의 급격한 증가는 기존의 백인들에게 위화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밴쿠버 주택 투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악화되어왔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발생의 주범이라는 인상까지 겹치면서 악화되어 온 결과이다.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증오는 자신의 죄의식이나 결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표현이며 자기경멸이 타자에 대한 증오로 전이되고 이 증오의 대상에 대한 타도를 위해 보다 더 많은 타인을 끌어들이면서 증폭되어간다. 그러나 인종차별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이민자들이 이 사회에서 존경받고 싶으면 존경받을만한 행동을 먼저 해야 한다. 생태학에서 우리가 얻는 지혜는 지구가 생명체들의 공동거주 공간이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고유의 본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자기실현의 권리와 생존과 번성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주변 생태계를 정화하고 보존하려는 우리의 조그만 행동들이 이 땅에서 생태계의 회복뿐만 아니라 인종차별도 불식시키는 조그만 씨앗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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