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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떼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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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6-20 10:26

김춘희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유네스코가 지정한 관광지 가스페 반도(Gaspé)는 우리가 1980-90년 사이에 여름마다 찾아갔던 여름 휴가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St-Laurent) 강을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한나절 드라이브 길에 벌써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대서양 어귀에 리무스키(Rimouski)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여태껏 보아 왔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새우나 조개 같은 어패류의 롤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판매소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계속해서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가노라면 오른쪽으로 절벽에서 춤추듯 떠 날아내려 오는 색색 행글라이더(Hang Glider)의 모습이 푸른 바다와 어울려 진풍경을 선사해 준다. 띄엄띄엄 어촌이 나오고 수산 가공업 공장들도 보인다. 오른쪽 낮은 언덕 위에 집 뜰에 생대구를 말리는 천연 건조대가 보인다. 차갑게 불어오는 대서양의 바람과 따가운 태양을 받으며 대구는 노랗게 말려진다. 이런 풍경은 1980-1990년 사이 8, 9월 가스페의 모습이었다. 반세기도 안 되는 우리 가족 추억의 한 조각이다.
 그때는 아직도 대구잡이로 재미를 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점점 어획의 수가 떨어지다가 1990년 이후로는 가스페 대구잡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에는 물개 탓을 했다. 물개 사냥을 금지한 후로 급격한 번식이 급증하면서 녀석들이 대구를 다 먹어 치웠다는 설이 있었지만, 요즘은 지구 온난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해수의 온도 상승 때문에 대구 떼는 그들의 서식지를 버리고 더 찬 물이 있는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떠나야만 했다. 지구 온난화는 인간뿐 아니라 물고기도 피해 갈 수 없는 재앙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던 1986년이나 1987년 여름방학,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 강을 끼고 한나절 북쪽으로 가면 리무스키가 나온다. 거기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계속 북쪽으로 올라간다. 쌩 삐에르(성 베드로 마을) 혹은 쌩뜨 안 데몽(산위의성녀 안나 마을) 근처에 깨긋한 모텔에 여장을 푼다. 가스페 반도를 다 돌자면 적어도 4-5일 이상 걸린다. 우리는 반도는 돌지 않고 다만 대구 잡이가 가능한 어촌 마을에 머문다.
 고기 잡이 쪽배를 전세 내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 한 가운데로 대구잡이를 나간다. 아니, 고기를 잡는다기보다는 고기를 끌어 올린다고나 해야 할 정도로 많이 잡혔다. 약 30미터나 되는 줄 끝에 갈퀴를 달아 물속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열심히 줄을 잡아 올렸다 놓았다 하노라면 이따금 손에 묵직한 것을 느낀다. 그러면 줄을 팍팍 걷어 올린다. 자그마치 어른 팔뚝만큼이나 큰 대구가 갈퀴에 걸려 올라온다. 아이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재미있어하고 배꾼은 생선 배를 갈라 정리해 준다. 나는 커다란 비닐봉지에 손질된 대구에 소금을 뿌려 가며 차곡차곡 집어넣는다. 이렇게 자루 가득 잡은 생선을 집에 갖고 와서 냉동 칸에 넣어 보관하면 1년 이상 푸짐히 생대구를 먹을 수 있다. 아이들도 가스페에서 갖고 온 대구는 무엇을 해 주어도 잘들 먹었다.
 술을 좋아하던 남편은 생대구보다는 건대구를 선호했다. 찬물에 짠 기를 우려낸 후 올리브기름을 바르고 불에 살짝 구운 마른 대구는 맥주 안주로 제격이었다. 태양에 말린 대구는 기계로 건조한 것에 비교도 안 될 만큼 쫄깃하고 맛이 좋았다.

 지난가을 몬트리올 캐나다 국군 묘지에 잠들어 있는 남편을 찾아 다녀왔다. 그리고 가스페를 함께 놀러 다녔던 친구를 찾았다. 푸짐한 점심 대접을 받았다. 친구는 가스페 대구 거래소에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만에 가스페 어물점 아저씨와 통화를 했고 친구는 엄청난 양의 건대구 구입에 성공했다. 나는 친구 덕분에 예상치 못했던 건대구를 쇼핑해 왔다. 대구 업자의 말에 의하면 가스페의 대구는 사라진 지 오래 되었으나 바닷바람과 햇빛이 좋아서 북쪽에서 잡은 대구를 구입하여 자연 건조하는 사업은 계속한다고 했다. 말린 대구 값이 비싼 이유다.
 반세기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내에 생태계는 온통 수난을 겪고 있다. 한국 동해의 명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해양계의 끊임없는 연구 덕분에 명태알을 인공 부화하여 치어를 방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명태의 어획은 거의 미미하다고 한다. 명태나 대구는 태생이 냉수 어종이 아닌가! 녀석들은 한사코 차가운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대구떼의 수난은 우리들의 어머니(Mother Earth) 지구가 아프기 때문이다. 지구의 열을 식혀야만 인간도 생태계도 모두 살아날 것이다. 물고기들이 원래의 서식지로 돌아오기 위해서라도 어머니 지구의 몸을 식혀드려야만 한다. 그것이 지구 살리기 운동이다. 가스페 대구떼의 수난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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