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욱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퇴근 해서 집으로 향해 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한국에서 전화가 왔었다는 여러 개의 카톡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왠지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바로 큰 형님께 전화를 했다.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고 격리 병원시설로 옮기신 후에 별 이상이 없으셔서 일반 병실로 이동하실 거라고 했었다. 이제까지 심장 수술과 혈전 제게 수술등 여러번 위험한 고비를 넘기신 터라 걱정도 많이 했고, 제발 이번 위기도 꼭 이겨냈으면 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내가 우려하는 일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전화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형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오전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눈에서는 눈물도 나지 않았고, 모든 시간이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어머니를 이 세상에서 만나 뵐 수 없다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고, 제발 사실이 아니고, 내가 잘못 들었기를 바랬다. 온라인 부고장을 카톡으로 받고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이름과 상주로 들어간 내 이름을 보고서 현실임을 깨달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아직 어머니께 해 드리지 못한 일들이 많은데, 함께 여행을 가고, 함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었는데, 올해는 꼭 살아 계실 때 찾아 뵙겠다고 매일 기도 했는데,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데로 한국에 갈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시간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았고, 정작 어머님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함께 하질 못했다. 나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 주의자였고, 불효자였고, 죄인이었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고, 참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 가신 다음 날, 눈이 내렸다. 창 밖으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모습을 보며, 이젠 저 먼 하늘나라에 계실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 곳에선 더 이상 아프시지 말고, 편안하게 계시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누나가 보낸 생전에 찍었던 어머니의 사진을 보니 어머니가 더 보고 싶어졌다. 3년 전 한국에서 보냈던 두 달 남짓한 시간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금 생각 해 보면 그나마 생전에 어머니와 함께 했던 유일한 시간이었고, 그런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영화의 파로나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침 운동을 나가는 내게 먹으라고 두유를 건네 주시던 모습, 점심 때 먹으라고 직접 도시락을 싸 주시던 모습, 팔공산으로 차로 드라이브를 하던 모습, 대구 수목원에서 국화꽃 전시회를 보며 웃으시던 모습, 단풍이 든 나무 아래에서 함께 사진을 찍던 모습, 내가 사 온 치킨 한 조각을 맛있게 드시던 모습, 저녁에 소주를 함께 마시며 옛날 이야기를 하던 모습등. 어머니와 함께 했던 아주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내 기억의 서랍에 채워졌다.
작년 연말에 나는 어머니를 떠나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을 했다.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겠지만, 아직 그 이별의 아픔과 슬픔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이제 어머니를 보내 드리려고 한다. 하늘 나라에서 어머니가 항상 지켜보고 계실꺼라 생각한다. 어머니를 이제 직접 만나 뵐 순 없지만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내 기억의 서랍에서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살아계시고 베풀어 주신 아낌없는 사랑과 함께 하신다는 걸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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