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가는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 지천으로 피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민들레들이 모두 져 버리고 없다. 그들의 텅 빈 자리가 못내 헛헛하다. 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흐르는 시간은 누구한테나 공평하게 열려 있다. 내 시간의 그림자는 어떠한 무게를 지니고 있을까. 지나는 시간에 소리가 있고 보이는 존재였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춤추던 연분홍 꽃잎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는 그저 초록의 무성한 잎들만이 한 움큼씩 자라 태양을 향해 반짝거리며 웃고 있다. 뒤꼍에서 모아둔 빈 병 정리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동요 메들리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동요를 부르면 마음이 편하다. 학교 숙제를 모두 마친 아이로 돌아간다. 골목 어귀에서 친구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열 살로 되돌아간다. 놀다가 배가 고프면 새까매진 손으로 주머니에서 십 원짜리를 꺼내 동네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 먹었다. 앞니 빠진 친구는 먹으면서도 계속 떠들었다. 한 개에 오 원 하는 새끼손가락만 한 떡볶이 두 개를 빨간 고추장 국물을 듬뿍 묻혀 떡은 먹지 않고 국물만 쪽쪽 빨아먹었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국물만 핥아 먹자 아줌마는 눈에 쌍심지가 돋고 급기야는 소리를 빽 질렀다. “야!! 국물만 계속해서 빨아먹으면 어떡하니. 그만 먹고 가!” 밀가루 떡보다도 공짜인 고추장 국물의 달큰함이 주린 배를 채워주던 때였다. 동요를 부르면 어릴 적 추억이 차례로 떠오르고 왠지 모르게 포근해진다. 그때는 형제들과 적은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추운 겨울 아랫목에서 이불 하나를 가지고도 마냥 화목했었다. 초등학교 시절 열심히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배웠던 노래들은 언제 불러도 정겹고 좋았다. 동요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어 삶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준다. 세상사에 찌든 마음이 말갛게 씻기고 잠시나마 순수해지는 것 같아 좋다. 조금 있으면 아버지의 날이다. 대전 현충원에 고이 잠들어 계신 아버지가 무한정 보고 싶다. 아버지는 소일삼아 뒷마당에 밭을 일구어 깻잎과 무, 배추, 열무, 상추와 호박 등을 심으셨다.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청춘을 만끽하던 나는 한 번도 그런 아버지를 도와드린 적이 없었다. 끼니도 밖에서 해결하느라 아버지의 농작물을 맛볼 기회도 적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끼니마다 풍성한 푸성귀들을 앞에 놓고 오롯이 두 분이 식사하셨다. 어쩌다 약속이 취소되어 집에 있는 날이었는데 아버지에게 깻잎 튀김을 만들어 드린 적이 있었다. 넓적한 깻잎을 반죽에 넣어 그 모양 그대로 튀겨 드렸는데 아버지는 내가 만든 튀김을 아주 맛나게 잡수시며 좋아하셨다. 그 아버지의 웃으시던 모습이 가슴에 남아있다. 아버지의 십일 월 생신날에 깻잎을 구할 수가 없어서 고수를 튀김으로 만들어 상에 올렸다. 깻잎 튀김을 해드리고 싶었던 딸의 마음을 아실 것 같았다. 수북하게 접시에 놓인 그것들을 바라보니 잔잔한 슬픔이 몰려왔다. 외국에 살면 불효자라는 말이 맞는다. 십 년 전, 아버지는 내게 등단을 축하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아버지도 젊었을 적에는 수필을 쓰고 시를 쓰셨다고 했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캐나다에 오지 않았더라면 아버지와 나는 좀 더 서로를 알았을지도 몰랐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놀다가 아빠 생각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같이 살라 그랬죠’ 빠르게 흘러버린 시간의 뒤안길에 여름 해 질 무렵 나는 벌건 얼굴로 튀김을 계속 만들어내고 그 옆에서 아버지는 목에 수건을 두른 채 쟁반만 한 커다란 깻잎 튀김을 잡수시며 행복하게 웃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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