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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오브 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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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5-25 08:46

조선일보 동화 박병호



그날은 상상했던 것보다는 차갑지 않았다. 남극의 얼음장 같은 찬물이 짙푸른 태즈먼해 수면 바로 아래까지 흘러온다. 원래는 그곳에 손을 담그려면 후다닥 넣고 빼야 한다. 까딱 늦게 빼면 동상이 들기 때문이다. 해안 육지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데도 그런다. 


잠시만이라도 선한 괴물로 변신할 수 있다는 크라켄을 찾으러 바다에 왔다. 그날은 바닷물 속에 오랫동안 손을 담글 수 있었다. 괴물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바닷물이 조금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다. 그를 만날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속 깊은 바다의 크라켄은 간혹 속이 깊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 유일한 기대감이었지만 그랬다.


그는 비늘구름이 수면에 비치는 바다에 잔잔한 파도를 타고 온다고 했다. 그가 바다에서 나오면서 만들어 낸다는 까만 밤 초록 눈빛을 어려서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기억창고에서 꺼내고 있었다. 그가 바다에서 나오는 순간은 태양이 자치를 감춰 그의 시력을 보호해 준다고 했다. 


하늘에는 아직 구름이 짙었다. 공기는 상쾌했으며 소금기를 머금은 습기는 느끼지 못했다. 바닷바람이 두 뺨을 휘감아 돌며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쉼 없는 바람의 손길이 나에게서 바다에서 떠오르는 크라켄으로 옮겨가기를 바랬다. 어젯밤 내린 빗물이 바닷속 화산암반층을 통과 후 다시 수면으로 용출하기를 바랐다.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진다. 미네랄 성분의 영양 수를 마시러 착한 크라켄이 당장 깊은 바다에서 나올 것 같았다. 내 마음도 점점 더 심연의 바다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깊은 바다 크라켄은 그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선한 괴물로 변신 할 수 있다는데..” 소용돌이치는 바다 안개가 물안경을 콧등으로 밀착시켜왔다. 체온을 지켜주는 소재로 만든 잠수복이 내 몸을 감쌌다. 그를 대할 내 몸이 바다 밑까지 순식간에 빠져들 수 있도록 납덩이가 달린 허리띠를 동여맸다. 5kg의 연철은 몸을 바다 깊이 내려가게 할 수 있지만,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면 다시 못 올라올 수 있다.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인간은 누구나 겁쟁이라는 할머니의 이야기 중 한 말씀이 떠올랐다.  


선한 크라켄을 만날 수 있다면 겁이라는 철갑옷을 벗어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만든 커다란 연못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물고기를 잡아먹더니 이젠 사람까지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사람 사는 집들을 노리고 있는 흉악한 괴물을 잡을 사람이 없기때문이다. 괴물을 잡을 자는 괴물 밖에없다. “이왕이면 괴물 중에서도 왕이 나오면 더 좋겠는데..” 왕의 명령이라고 물러날 괴물이 아닐지라도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덜 터지려면 강한 괴물이 나오기를 바랬다. 빨리 찾지 못하면 물 밖으로 나올 시간이 늦어질 수 있다는 조바심에 물에 뛰어들기 전에 물속을 드려다 보지 말라는 수칙을 어겼다. 허리를 구부려 다이빙 자세를 취하려는 순간 다리에 쥐가 났다. 뒤로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발을 쭉 펴서 발바닥 끝부분을 하늘로 치켜세웠다. 점차 구름은 고등어 비늘을 닮은 얕은 구름으로 바뀌고 있었다. 바닷가는 안전을 염려한 엄마 때문에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가까이에 갈 수 없는 금지구역이었다. 바다생물 학습을 핑계로 접근하기 시작한 지 아직 채 3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연안 대륙붕도 아닌 심해저에 관심을 보이다니, 나 자신이 신통했다. 그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젯밤 꿈에서 보았던 괴물이 투영된 비늘구름을 보았기 때문이다.그를 본 순간 비명을 지르면 심연의 크라켄은 나쁜 괴물이 되고, 웃으며 맞이하면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는 꿈의 가르침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비늘구름과 잔잔한 바다, 따뜻해진 바닷물, 크라켄이 등장하기 좋은 때였다. 괴물이 분명해. 그를 친구로 맞이하기 위해 일어섰다. 잠수복 매무새가 흐트러지진 않았는지 바닷물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그러나 다가오는 것은 노랑 대형 가오리였다. 오다 돌아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서 툭 튀어 올라와 독을 품은 꼬리 가시로 내 팔을 치고 사라졌다. 날카로웠다. 혹시 심연의 크라켄이 가오리의 모습으로 왔나 싶어서 비명은 겨우 참았다. 질긴 소재의 잠수복 탓으로 피를 보지는 않았다. 


바다에 뛰어들 힘을 충전하기 위해 백사장으로 갔다. 그리 멀지 않은 바다에서 검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올라왔다 쑥 내려가는 동작을 반복하다 한 번씩 물보라를 일으켰다. 고래가 분명했다. 이번에는 크라켄이 고래의 모습으로 온 지 몰라. “괴물이 아니고선 축구장만 한 컨테이너선 높이까지 물을 쏘아 올릴 고래는 없어.” 지느러미가 없는 긴수염고래와 같은 모습의 괴물이 온화한 비처럼 다가왔다. 아흔아홉 칸 대궐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미소로 눈을 바라보았다. 크라켄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 초록 눈을 깜빡거렸다. 


연신 초록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괴물들은 심해에서 벗어나면 대부분 죽지만 공기와 물속에서 모두 숨을 쉴 수 있는 크라켄 가족을 알고 있다고 했다. 초록 눈이 이끄는 대로 해안을 걸어 수백 마리 고래들이 쉬고 있는 오션비치로 갔다. 초록 눈이 할아버지 왕고래에게 안내했다. 고래들은 힘이 빠져 보였으나 왕 고래의 두 눈빛은 연두색으로 빛났다. 백사장에 배를 깔고 수시로 밀려오는 파도에 새끼고래들이 뒤집어지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중심을 잃은 새끼고래들 일부는 이미 뒤집어져 혼자서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어른 고래의 도움을 받은 새끼 고래는 살아나고 도움도 못 받고 혼자서 뒤집을지도 모르는 새끼들은 숨이 막혀 죽어 나갔다. 나도 나서 새끼 고래들이 안전한 곳에 배를 깔도록 백사장 쪽으로 밀어주었다. 그들의 분기공에는 하얀 점액질이 묻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숨을 못 쉬는 고래들을 찾아 점액질을 닦고 막힌 콧구멍을 뚫어 주었다. 


초록 눈이 사납게 생긴 녀석들에게는 가까이 가지 말라며 눈을 깜빡거렸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으며 고래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왕 고래가 자기 콧구멍도 뚫어 달라며 큰 눈을 깜빡거렸다. 왕고래 얼굴에 물을 끼얹어주면서 나의 손과 고래의 몸이 자연스럽게 닿게 했다. “피부가 매우 부드럽구나.”라고 칭찬하며, 살살 콧구멍을 뚫어줄 거라고 안심시켰다. 부드러운 면천으로 반주먹만큼의 면봉을 싸서 조심조심 쑤셨다. 예민한 숨구멍이라 긴장되었다. 처음에는 약간 움찔하다가 어느새 얌전히 콧구멍들을 내게 맡기는 순한 양이 되었다. 왕고래가 후유우~ 드디어 긴 숨을 쉬기 시작했고 면봉 뭉치에는 하얀 물질이 묻어 나왔다.


왕고래 등을 쓰다듬으며 콧구멍 주위를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었다. 고래 머리 쪽으로 다가가 눈을 마주쳤다. 그도 눈을 깜빡 거리며 내 눈을 바라 보았다. 아무리 사나운 동물이라도 위독한 상황에서 아픈 부분을 만져주면 순해지고 만다. 왕고래가 시원하게 숨을 쉴 수 있게 되어 고맙다는 듯 연신 연둣빛 눈을 깜빡거렸다. 


왕고래가 물었다. 크라켄은 왜 찾느냐고. 아버지가 모국에서 어렵게 가져온 씨앗을 발아시켜 이백 가구가 그 주위에 모여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연꽃 호수를 만들었는데, 거대한 괴물이 들어와 헤집고 다니는 통에 연뿌리가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물고기들이 죽어가고, 맑은 물이 흙탕물이 되면서 썩어가는 생명의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연 못에 들어가 괴물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일렀다. 


그 괴물과 싸워 이길 착한 크라켄을 찾고 있구나. 깊은 바다에서도, 땅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두 숨 크라켄이 있긴 한데 그가 싸워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며 한동안 두 눈을 깜박거리더니, 두 숨 크라켄이 싸워 이길 경우 어떻게 보답을 할 거냐고 물었다. 존경심 외에 달리 보답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매년 초봄에 오션 비치에서 숨이 막혀가는 모든 고래의 콧구멍을 뚫어주고 두숨 크라켄에게는 콧구멍을 뚫어주는 것은 물론 따개비들이 몸에 달라붙지 않도록 온몸에 아로마오일을 발라 전신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했다. 왕고래가 반색하며 말했다. “그거 좋겠다! 창조주께서 자기에게만 은혜의 두숨을 주었다면서 그 선물은 자기만의것이 아니라고 해왔거든.” 


왕고래가 자신은 심연의 바다에서 두숨을 데리고 이곳으로 올라올 테니 나는 여기서부터 괴물이 있는 연못까지 안내하라고 했다. 그런데 두숨은 땅에서는 자기 몸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를 싫어하니까, 깜깜한 밤에 반딧불로 안내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밤이 되자 왕 고래가 콧구멍이 시원해진 고래들을 데리고 깊은 물로 사라졌고 나는 나머지 고래들의 콧구멍을 뜷어 주었다. 고래들이 다 돌아가고 나니 칠흑같은 밤이 되었고 반딧불이를 잡으러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하는 순간 어디서 날라왔는지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내 머리에 앉았다. 


암흑 바다에서는 새카맣고 커다란 물체가 커다랗게 반짝거리는 반딧불 모양의 두 눈을 밝히고 다가왔다. 마법처럼 중력 같은 큰 힘에 이끌려 짧지 않은 거리를 이끌었다. 연못에 다다르자 순식간에 폭풍이 일었다. 반딧불에 희미하게 비친 악마의 모습은 요한묵시록의 붉은 용 이미지에, 염소처럼 생긴 그리스 신화의 사티로스 등이 섞여 만들어진 악마의 모습이었다. 그에 맞서 싸우는 심연 크라켄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생김새는 볼 수 없어도 대궐 같은 몸들이 빠르게 부딪치며, 불꽃놀이 폭죽 같은 불가루 들이 하늘로 튀어 올랐다. 남극 쪽 먼 하늘에서는 초록, 파랑, 노란빛의 오로라들이 춤을 추었다. 두어 시간의 긴 싸움이 끝이 났다. 어느 쪽이 이겼는지 당장은 알 수 없었지만, 또 반 시간이 지난 후, 반딧불이 불꽃 3개가 바다 반대쪽 산을 향해 나가는 것을 보니 분명 두 숨을 쉬는 심연 크라켄이 이긴 것이 분명했다. 


왜 바다 반대 방향으로 갔을까를 궁금해하며 다음 날 새벽 연 호수로 달려갔다. 하루아침에 천지가 변해있었다. 물은 맑아져 있고, 악마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연뿌리는 다시 똑바로 박혀 있고, 연잎은 생기가 돌았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연꽃의 꽃대가 솟아올랐다. 축구장 두 개 만한 연 호수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붕들이 광채를 발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호숫가에 모여서 다시는 악마의 속삭임에 속지 말자고 다짐했다. 할아버지의 연밭에 버리는 쓰레기가 자양분이 되어 연들이 더 큰 꽃을 피운다는 거짓에 속아 넘어간 것을 후회했다. 상식적으로 아니다 싶으면 일 백 번을 들어도 절대로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호수에 비늘구름이 내려앉았다. 바다에서 호수로 내려온 구름은 처음이었다. 


“나는 이제 바다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크레이들 마운틴에 오르니 내 고향 남극 바다가 다 내려다보입니다. 호숫가 지붕들과 연 호수도 보입니다. 여기가 이제 내 제2의 고향입니다. 연 호수 사람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쓰레기는 괴물들이 물고기와 연뿌리만큼이나 좋아하는 주요 간식입니다. 쓰레기를 버리면 연꽃이 크게 핀다는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연꽃 할아버지가 야심한 밤에 커다란 연잎에 숨어 할머니 외에 다른 할머니를 만나 밀회를 즐긴다는 헛소문에 속지 마십시오. 할아버지의 연 호수를 망가뜨리게 만들기 위해 쓰레기로 채우려고 하는 괴물의 선동입니다. 쓰레기가 늘어나면 그 괴물이 다시 옵니다. 크라켄은 죽지 않습니다. 나도 죽지 않지만 나도 나 자신을 모릅니다. 혀를 쏘는 스티로폼 쓰레기를 먹게 되면 선한 심성은 사라지고 악성이 솟아오르니까요. 선한 행동에 맛을 들인 크라켄이 다시 악한 크라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속독기술 없으면 미처 따라 읽을 속도로 길고 구름 편지가 비늘 구름 속에서 연신 흘러나왔다. 마치 바다에서 산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높은 굴뚝 위에서 길게 나부끼며 춤추는 부채형 연기 같았다. (joeulho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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