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속의 자유
정숙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아침에 일어나니 창문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고양이 네로는 이슬때문에 밖이 잘 보이지 않자 솜방망이 발로 열심히 창문을 문질렀다. 평소에 새와 다람쥐들을 즐겨보던 것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나서일게다. 비와 함께 굵은 눈발이 드문드문 날렸다. 스산한 날이었다. 절기는 속이지 못하는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다가오고 있었다. 돌연 삭풍이 휘몰아쳐 둘러선 소나무들에서 엄청난 양의 솔잎들이 마구 떨어졌다. 찬바람이 부는 이맘때가 되면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라 마음 붙일 곳 없는 부초처럼 휑한 심경이 된다. 그 때가 언제라고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강산이 세 번 하고도 반절이나 바뀐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열 여덟 청춘의 시간은 상흔의 덫에 걸려 있다.
그 당시 나는 매일 똑같이 되풀이되는 학교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무엇을 하든 자유롭고 싶었지만 감히 꿈꿀 수 없었다. 한밤중에 끝나는 야간 자율 학습에 억지로 등 떠밀려진 수험생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인으로 호흡하고 싶었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눈부신 햇살을 쬐며 나뭇잎에 반짝이는 이슬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었고 아침에 눈을 떠 청량한 새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고 싶어했다. 친구에게 찾아온 첫사랑을 축하하며 들꽃이 만발한 언덕에서 함께 연애편지를 읽고 구김살 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언제든 나를 받아주는 포근한 바다를 찾아 백사장 모래밭에 앉아 목이 쉬도록 쌓인 울분을 짐승처럼 포효하고도 싶었다. 흔하디 흔한 일상의 자유가 얼마나 귀하고 그리웠는지 자고 일어나면 어른인 대학생이 되어 있었으면 하는 소원을 빌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 년 내내 불안으로 짓눌러 살아야 했던 아이들은 뭐든 기회가 된다면 그 끝을 붙들고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쳤다. 다섯 시에 정규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후다닥 저녁 도시락을 까먹고 책상에 고개를 박고 공부를 했지만 참을 수 없던 무리들은 저마다 원하는 자유를 찾아 기꺼이 탈출했다. 누군가는 과감히 담장을 넘어 영화를 보러 가고 누군가는 학교 옆 시장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그 길로 오락실에 죽치고 앉아 갤러그나 1942 같은 게임에 몰두하는 일탈을 벌였다. 물론 그 대가는 엄청났지만 그들은 아랑곳 않고 또 다른 내일의 완벽한 일탈을 도모하였다. 소극적이었던 나는 그저 연습장에 소설이나 싯구절을 끄적거리는 것으로 영혼을 달래며 침묵으로 버티었다. 찬바람이 불고 칠판에 디데이의 숫자가 한 자릿수로 바뀌었어도 안쓰러운 청춘들은 뒤돌아 앉아 수다를 떨기에 여념이 없었고 여전히 이어폰을 귀에 꽂고 FM라디오를 챙겨 들으며 몰래 자유를 만끽했다. 마지막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던 날에 나는 지금의 롯데월드 잠실점이 들어선 곳에서 깊게 파인 공사현장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었다. 검붉은 태양은 원하는 자유를 갖지 못해 불만인 열 여덟 가슴을 토닥이며 저물고 있었다.반에서 꼴찌를 한 짝꿍의 탄식을 들으며 나는 지평선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는 태양을 바라보며 정녕 대학을 가야 하는지 절로 들어가 계속 글을 써야 하는지 묻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때가 너무나 그리웁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과연 열 여덟에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창문의 물기를 손바닥으로 닦는데 문득 한 노래가 떠올랐다. ‘해지는 저녁 창에 기대어 먼 하늘 바라보니 나 어릴 적에 꿈을 꾸었던 내 모습은 어디에 가슴 가득 아쉬움으로 세월속에 묻어두면 그만인 것을 얼마나 더 눈물 흘려야 그 많은 날들을 잊을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내가 선 이 곳을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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