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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타난 달걀귀신

이종학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09-14 17:36

이종학/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어렸을 때는 달걀귀신의 공포를 느끼며 자랐다. 시골 태생 어린이들은 특히 그랬다. 달걀귀신은 여러 형태가 있는데 위키백과에 나타나는 달걀귀신은 대한민국에서 소문으로 퍼진 요괴의 일종이다. 계란에 가느다란 팔다리가 붙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걷는다. 걸을 때 머리를 바닥에 대고 걷기 때문에 "통, 통, 통" 소리가 난다. 거꾸로 걷다 보니 화장실 아래 틈새로 음흉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또 이런 달걀귀신도 있다. 대부분 흰 베옷을 입었고 눈, 코, 입이 없는 달걀 모양으로 생긴 얼굴을 하고 있다. 가끔 삐악, 삐악 병아리 우는소리를 하고 어떤 놈은 우람한 수탉 우는소리를 내며 뒤뚱, 뒤뚱 쫓아오기도 한다. 그 밖에도 여러 종류의 달걀귀신이 있다. 어차피 귀신은 사람이 입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 괴물이거늘 개수를 따질 일이 아니다.

화성에 가서 사느냐 마느냐 하는 세상인데 청승맞게 동화 같은 달걀귀신 따위를 들먹이냐고 야단을 치겠지만, 요즘 한국에서 계유 계란(癸酉鷄卵)이란 말이 회자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새삼스럽게 달걀이 생각나서 나도 한번 객기를 부려 봤다. 올해가 계유년이고 유해성 달걀로 난리가 났기에 지어낸 말인 듯하다. 조선조 세종실록에 보면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에 일으킨 난이 바로 계유 정란(癸酉靖亂)이다. 이름도 생소한 살충제로 닭띠 해인 올해 달걀이 어려움을 겪는다. 조류인플루엔자로 닭들이 살 처분되는 참화를 입더니 이젠 달걀까지 수난에 시달리는 현실이 참담하다. 하긴 닭들이나 달걀들로서는 적반하장이라며 억울해 할만도 하다. 인류와 동물의 생태계 건강은 하나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마당에 말썽의 근원은 바로 인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 때문이다.

인류와 가금류인 닭·달걀의 관계는 헤아리기 어려운 오랜 역사를 가진다. 그래서 달걀이 국민식료품의 하나로 자리를 차지한 지도 까마득하다. 한때 토박이 말이라는 이유로 표준어에서 계란(鷄卵)에 밀렸다가 제자리를 찾은 바 있는 달걀은 영양소이며 소득원이다. 어려웠던 시절 농촌에서 당장 손쉽게 영양을 보충하고 현금화할 수 있는 소산은 오직 달걀뿐이었다. 양육비가 되었고 학자금의 효자이기도 했다. 제사상과 손님상에 자주 올랐고 노약자의 몸보신에 요긴한 보양식으로 꼽혔다. 지금도 여전히 비타민 밥상의 핵으로 주목을 받는다. 앞에서 말한 달걀귀신은 귀중한 달걀을 보호하려는 애교 넘치는 비책으로 등장했는지도 모른다. 달걀을 몰래 꺼내다가 주전부리를 사 먹거나 써 거즈 입장료로 써먹는 자녀들을 경계하는 방법의 하나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해 본다. 달걀을 날로 함부로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거나 흰 머리가 생긴다고 겁을 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불량 계란이 나오는 이유는 양계장이 너무 좁아 닭들이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양계장에서 닭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타자 용지 한 장 정도에 불과하단다. 닭들을 알 낳는 기계로 취급하니 동물 학대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양계장이 더러 있기에 달걀을 넣은 케이스에 Free Range Eggs 또는 Cage-Free Eggs라 적어서 판다. 닭장 밖에서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얻은 달걀이라 절대 무해하다는 표시이다. 달걀을 넣어 만드는 음식이 수도 없이 많다. 달걀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판에 달걀이 인체에 해롭다니 어이가 없다. 달걀이 변한 것인지 사람이 변했는지 따져볼 일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달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날달걀은 비릿해서 질색이었고 삶은 달걀은 퍽퍽해서 먹으면 꼭 체했다. 오로지 새우젓 넣고 만든 달걀 찜만 먹었다. 그래서 반찬으로 달걀 후라이를 밥 위에 얹은 도시락을 먹은 기억이 없다. 내가 아주 어려서 땅에 떨어져 박살 난 부화 직전의 달걀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놀란 이후부터 생긴 거부감이 아닌가 싶다. 어찌 된 영문인지 병아리 형체가 거의 생긴 달걀 두 개가 둥지에서 떨어져 일어난 참상이었다. 어린 마음에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싸서 방 아랫목에 갖다 놓았지만 허사였다. 처음에는 주둥이와 다리를 움직여서 살아나는가 싶었으나 한나절을 넘기지 못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냇둑을 파고 묻어 주었는데 짠한 마음이 꽤 오래 갔다.

수세 대에 걸쳐 논쟁이 되어온,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달걀은 생명체임이 입증되었다. 달걀 껍데기는 계속 숨을 쉬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닭이 스스로 독성을 지닌 알을 낳겠다고 공장 식 산란 계 농장에 들어가겠는가? 어느 소설의 한 구절을 빌려 보자. “인류에게 가장 효율적인 생명체는 결국 가축이다. 기르고, 지배하고, 약탈할 가축이다.” 이런 가축의 지배자인 인간이 달걀인들 마음대로 못하겠는가. 살충제 달걀 파동을 외면하고 닭의 사육 시스템의 악조건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달걀귀신이라도 다시 등정시켜야 할 것 같다. 아주 기절초풍할 괴담 수준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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