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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김치는 사랑이었다

김난호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06-03 16:55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배추를 절여 씻은 후 줄기는 기둥을 세워 놓는다. 마른 북어를 잘게 썰고 밤, 대추, 배채, 고춧가루, 마늘, 생강 새우젓으로 버무린 김칫소를 배추 줄기 기둥 사이로 잘 양념한다. 조그만 대접에 배추 잎으로 보자기를 만들어 준비해둔 김치를 넣고 보자기 싸듯 이쁘게 접는다. 그 보자기 김치들을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고 맑은 젓국을 심심하게 끓여 부으면 보쌈김치가 된다.

 김장하고 난 뒤 배추 우거지와 무 남은 것, 늙은 호박을 모두 섞어 호박 섞박지를 담가 놓는다. 겨울 깊은 어느 날, 멸치 몇 마리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지루한 겨울 저녁 환상의 밥상이 된다. 달큰하고 물컹한 호박이 딱 씹힐 때 어느 밥상이 부러우랴 !

 배추김치를 하는 날 한 항아리는 어머니만의 김치가 된다. 향이 진하여 우리는 진저리를 쳤지만, 어머니는 고수로 양념한 김치를 좋아하셨다. 고수는 미나리처럼 맛을 도와주는 구실을 한다. 고수 양념 김치가 푹 곰 삭으면 독특한 김치맛이 난다. 이제는 그 맛을 안다. 시원하면서 진하지 않은, 미나리 향과는 또 다른 고수김치가 된다. 이북사람인 어머니는 양념을 많이 바르지 않으신다. 잎만 절여지면 싱싱한 배추 줄기 상태로 씻어 건져 줄기에만 양념을 바르시고 잎은 거의 그대로 말아 꼭꼭 눌러 담는다.

 김장하는 며칠 전부터 저녁 밥상을 물리면 어머니는 딸들을 불러 모아 한 가지씩 의무를 지어 주신다. 첫째는 잣을 다듬어라. 둘째는 마른 북어를 잘게 썰어라. 셋째는 밤을 쳐라.   김장 날이 되면 동네 분들과 함께 오늘은 우리 집, 내일은 뒷집으로 옮겨 다니며 품앗이를 했다.

 개성보쌈김치는 어머니의 피난과 함께 충청도까지 내려왔다. 어머니 친구댁에도 자주 초대되어 특이한 보쌈김치를 전수해 주셨다. 특히 동네 결혼식이나 회갑연이 있으면 어머니의 김치는 잔칫상의 화제였었다.  딸을 출가시키며 이바지 음식에 넣어주시면 늘 사돈댁의 감사를 받는 음식이었다.

 이민 이후에도 가장 사랑받는 반찬이 되어 늘 입맛을 살려주는 김치는 어머니 덕분이 분명하다. 지금도 늘 어머니의 숨결과 함께 김치를 담근다. 먹을 줄 알면 담글 줄도 알아야 한다며 우리를 곁에 두셨던 어머니.   딸이 캐나다에서 온다고 어머니는 나박김치, 파김치, 오이소박이를 해 놓으셨다. 이 많은 김치를 몸 가누기도 어려우신 분이 왜 이리도 많이 해 놓으셨나? 애처로움에 눈물과 김치가 같이 넘어간다.

 뽀얗게 단물이 우러난 동치미 국물에 청, 홍고추로 고명을 얹어 투박한 사발에 담아본다. 탄산수보다 싸한 시원함이 목구멍을 적셔줄 때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랬다.   일곱아이가 밥상 물리고 두어 시간 후면 배가 고프다고 할 때 물렁물렁하고 다디단 고구마를 내미셨다. 깊은 겨울밤, 우리 형제는 출출한 배를 채우고서야 잠이 들었다.

 캐나다 땅에서 인사를 나눌 때  "나 김치 좋아해요."라며 첫인사를 건네는 국적 다른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님께서 전해 주신 김치 사랑은 우리 집 울타리를 넘어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우리 집만의 내리사랑이 아니었다. 모든 어머니가 내려 주신 사랑의 한 방법이었으리라.   딸이 없는 내게 아들이 김치를 배워 달라고 하니 김치를 통한 부모사랑은 대가 끊기질 않을 모양이다.

 입맛 없는 봄날, 묵은 김치를 꺼내어 흰 쌀밥에 먹어보아야겠다. 참기름 한 방울 톡 떨구어 고소한 냄새와 함께 칼칼하게 곰삭은 김치를 준비한다. 붉은 물고추와 달큼한 양파를 듬뿍 갈아 넣고 열무김치를 담글 여름날을 상상하며 어머니의 사계절 사랑을 되새김한다.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이 글을 어머니께 읽어 드려야겠다. 어머니의 사랑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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