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주위가 왁자지껄하고 어수선하다. 보고 싶었던 5일 장에서는 상자 안에 담겨 옹기종기 삐악거리는 샛노란 병아리들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엄마 곁을 떠나온 털북숭이 귀여운 강아지들도 순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굴리며 서로 바짝 붙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나는 시골 오일장을 좋아하여 장날이되면 꼭 장터에 나와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그곳에서는 삶의 엄숙함과 질서가 확연히 느껴졌다. 얽히고설킨 인생의 제각기 모습들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펑퍼짐한 거래 속에서 무르익었다. 한 줌 더 집어주는 후덕함과 소리를 내어 외치는 호객조차도 낯설지 않았다.
겨울에는 추운 바람이 쌩하고 부는 난전에서 바람막이 하나 없이 볼이 빨갛게 추위에 얼어,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할머니들에게서 물건을 사곤 했다. "아이구 이 추운 날씨에 고생 많으시네요." 하며 물건을 사면"옛날에 대면 이까짓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여. 시방은 옷들이 모다 좋으니께." 라고 대꾸 했다. 찬찬히 보니 두꺼운 외투를 두어 겹 껴입고 볼륨이 커다란 바지도 두 서너 개 입은 듯했다.
머리와 옆 볼을 따스한 목도리로 가려 추위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털목도리 사이로 몇 올 삐져나온 흰 머리카락이 차디찬 바람에 떨고 있는 듯 보였다. 그들은 이 장 저 장을 돌아다니며 근 사십여 년을 이렇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 집에 마냥 앉아 있으면 뭘 혀, 원 좀이 쑤셔서." 하고 부연 설명까지 곁들였다. 젊어서부터 아이 낳아 업고 다니며 학교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느라 쉴 새 없이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는 내 마음이 어설프고 누추하게 생각될 때도 있었다.
어느 날에는 놋으로 만든 식기, 대야, 화로 등을 파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너무 오래되어 빛이 바랜 골동품들이 요지 가지로 옛날을 뽐내고 자랑하며 정렬되어 있었다. 작고 앙증맞은 놋 밥그릇이 뚜껑이 덮인 채 두 서너 벌의 수저 젓가락과 같이 밥상 위에 놓인 것처럼 질서 있게 놓여 어렸을 적 명절 때면 번쩍번쩍 윤나게 닦은 놋그릇에 담긴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과 정갈스럽게 기름 발라 구워져 반듯이 잘린 김 무더기와 함께 멋스럽게 차려진 겨울의 밥상은 보료 깔린 따뜻한 아랫목까지 떠올려 주기에 충분하였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자 장터는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찼다. 제각기 다른 크기의 플라스틱 보자기를 펴 놓은 좌판 위에 보들 거리는 조그만 쑥, 탱탱이 다리 뻗은 냉이, 아기 손바닥만 한 이파리들을 좍 펴고 있는 머위, 울퉁불퉁한 더덕과 도라지 등 셀 수 없이 많은 나물이 즐비하게 봄 내음을 풍기며 봄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작고 다른 것은 큰 덩어리를 이루어 나름대로 모양새를 뽐내고 있는 모습이 볼품 있어 보였다. 옅은 갈색 마분지 위에"국내산" "중국산"이라 물품의 생산국을 표현한 한글은 외국에 사는 나에게 불현듯 신토불이를 상기시켜 주었다. 바다에서 금방 건져 올린듯한 생미역 가닥, 톳, 그리고 맹이 등도 함지박 속에 들어있어 비릿한 갯내음을 풍기기도했다.
더덕이 눈에 꽂힌 화창한 어느 봄날 나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더덕을 좋은 가격으로 많이 샀다. 너무 자디잘아서 껍질을 까는데 다섯시간이 걸렸다. 방안에는 더덕 향이 짙게 퍼지고 그 향기에 취하여 나는 허리와 팔이 아픈지도 모르고 하얀 속살이 보이도록 잘 다듬어서 고추장 양념에 꿀을 넣어 버무려 꼭꼭 누른 다음 이틀을 숙성시켜 약한 불에 구웠다. 연하고 상큼한 더덕 맛이 독특한 맛을 내뿜어 미각과 후각을 즐겁게 만들었다. 제맛 나는 이 더덕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이에 달라붙지 않는 호박 엿, 마른멸치, 구운 김 조각, 곶감, 족발 부스러기, 그리고. 토막 낸 참외와 같은 여러 종류의 맛보기를 시식하는 것도 느긋한 시골의 인심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게 하는 장날만의 묘미가 아니던가.
나는 시골 오일장을 좋아하여 장날이되면 꼭 장터에 나와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그곳에서는 삶의 엄숙함과 질서가 확연히 느껴졌다. 얽히고설킨 인생의 제각기 모습들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펑퍼짐한 거래 속에서 무르익었다. 한 줌 더 집어주는 후덕함과 소리를 내어 외치는 호객조차도 낯설지 않았다.
겨울에는 추운 바람이 쌩하고 부는 난전에서 바람막이 하나 없이 볼이 빨갛게 추위에 얼어,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할머니들에게서 물건을 사곤 했다. "아이구 이 추운 날씨에 고생 많으시네요." 하며 물건을 사면"옛날에 대면 이까짓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여. 시방은 옷들이 모다 좋으니께." 라고 대꾸 했다. 찬찬히 보니 두꺼운 외투를 두어 겹 껴입고 볼륨이 커다란 바지도 두 서너 개 입은 듯했다.
머리와 옆 볼을 따스한 목도리로 가려 추위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털목도리 사이로 몇 올 삐져나온 흰 머리카락이 차디찬 바람에 떨고 있는 듯 보였다. 그들은 이 장 저 장을 돌아다니며 근 사십여 년을 이렇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 집에 마냥 앉아 있으면 뭘 혀, 원 좀이 쑤셔서." 하고 부연 설명까지 곁들였다. 젊어서부터 아이 낳아 업고 다니며 학교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느라 쉴 새 없이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는 내 마음이 어설프고 누추하게 생각될 때도 있었다.
어느 날에는 놋으로 만든 식기, 대야, 화로 등을 파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너무 오래되어 빛이 바랜 골동품들이 요지 가지로 옛날을 뽐내고 자랑하며 정렬되어 있었다. 작고 앙증맞은 놋 밥그릇이 뚜껑이 덮인 채 두 서너 벌의 수저 젓가락과 같이 밥상 위에 놓인 것처럼 질서 있게 놓여 어렸을 적 명절 때면 번쩍번쩍 윤나게 닦은 놋그릇에 담긴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과 정갈스럽게 기름 발라 구워져 반듯이 잘린 김 무더기와 함께 멋스럽게 차려진 겨울의 밥상은 보료 깔린 따뜻한 아랫목까지 떠올려 주기에 충분하였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자 장터는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찼다. 제각기 다른 크기의 플라스틱 보자기를 펴 놓은 좌판 위에 보들 거리는 조그만 쑥, 탱탱이 다리 뻗은 냉이, 아기 손바닥만 한 이파리들을 좍 펴고 있는 머위, 울퉁불퉁한 더덕과 도라지 등 셀 수 없이 많은 나물이 즐비하게 봄 내음을 풍기며 봄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작고 다른 것은 큰 덩어리를 이루어 나름대로 모양새를 뽐내고 있는 모습이 볼품 있어 보였다. 옅은 갈색 마분지 위에"국내산" "중국산"이라 물품의 생산국을 표현한 한글은 외국에 사는 나에게 불현듯 신토불이를 상기시켜 주었다. 바다에서 금방 건져 올린듯한 생미역 가닥, 톳, 그리고 맹이 등도 함지박 속에 들어있어 비릿한 갯내음을 풍기기도했다.
더덕이 눈에 꽂힌 화창한 어느 봄날 나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더덕을 좋은 가격으로 많이 샀다. 너무 자디잘아서 껍질을 까는데 다섯시간이 걸렸다. 방안에는 더덕 향이 짙게 퍼지고 그 향기에 취하여 나는 허리와 팔이 아픈지도 모르고 하얀 속살이 보이도록 잘 다듬어서 고추장 양념에 꿀을 넣어 버무려 꼭꼭 누른 다음 이틀을 숙성시켜 약한 불에 구웠다. 연하고 상큼한 더덕 맛이 독특한 맛을 내뿜어 미각과 후각을 즐겁게 만들었다. 제맛 나는 이 더덕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이에 달라붙지 않는 호박 엿, 마른멸치, 구운 김 조각, 곶감, 족발 부스러기, 그리고. 토막 낸 참외와 같은 여러 종류의 맛보기를 시식하는 것도 느긋한 시골의 인심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게 하는 장날만의 묘미가 아니던가.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박인애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