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자연과 인간의 본성

민완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10-01 15:14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인간은 누구나 자연의 상태를 동경한다. ‘자연스럽다’라는 표현은 어느 한 분야의 가장 정점(頂點)에 있는 ‘기’(技)와 ‘예’(藝)에 주어지는 최상의 찬사라고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을 듯싶다. 그만큼 우리는 인위적이고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어색함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물 흐르는 듯한 편안함을 더 선호하는 성향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실제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많은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은 법(法)이라는 개념이 그러하다. 원래 法이라는 글자는 물 수에 갈 거자가 합쳐진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즉 물이 흐르는 것처럼 우리들을 가장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원래 법의 근본 취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고유의 취지가 무색하게도 오늘날 법은 우리를 부자연스럽고 자유함에서 구속하는 불편한 사회적 장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법’이라는 글자를 물 수에 그칠 지 자를 합하여 ‘沚’로 바꾸어 써야 하지는 않을까?
 
  한여름 텃밭에 나가 채소를 돌보느라면, 며칠만 마음을 놓고 있어도 어느 틈인가 잡초들이 무성하게 번져나가고 만다. 쪼그리고 앉아 땅바닥을 오리걸음으로 기어다니면서 잡초들을 뽑고 있노라면 나중에는 다리도 뻣뻣해지고 무엇보다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중간에 잠시 일어나면 똑바로 허리를 곧추 세우고 직립하기조차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또한 흙 장갑을 끼고도 손톱 밑을 파고드는 흙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기고, 뜯고, 뽑으면서 도달한 결론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자신이 받아들인 모든 생명의 씨앗을 다 살려내려는 대지(大地)의 본성과 자신이 뿌리고 가꾼 생명만을 보존해내려는 인간의 본성 사이의 대결’로 귀결된다.
 
  ‘시간’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더욱 더 그러하다. 태초 이래로 단 1초도 멈춘 적이 없이 시간은 우리 곁을 냉정하게 흘러가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매일 86,400원이 입금되는 저금통장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가 그 돈을 아껴두고 잔액을 남겨두어도 자정 마감 시간이 되면 몽땅 인출되어 사라지고 마는 허무한 통장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기 위해 有史이래 우리 인류는 얼마나 애를 써 왔던가?  불로초를 구하고, 땅 밑에다 지상과 똑같은 궁전을 건설하고, 애꿎은 사슴과 물개를 죽이고, 보톡스 주사로 주름을 펴고 마침내는 신비의 파란색 명약을 통해 가히 入神의 경지(?)에까지 이르고 만 셈이 아닌가...
 
  어떤 항아리든지 물이 가득 차면 반드시 흘러넘치게 되어있다. 모든 그릇은 꼭 필요한 만큼의 분량을 담아 남김도 모자람도 없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라는 그릇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채워도 채워도 흘러넘치는 법이 없다. 수위(水位)를 넘기면 범람하여 주위를 옥토로 만드는 것이 강둑의 본성이라면, 온갖 냄새로 가득 찬 쓰레기가 꽉 들어차도 트림 한 번 안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결국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이 자연의 본성을 함축한다면, 낮은 곳에서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머리 두려는 욕망이 인간의 본성을 대변한다 할 것이다. 있는 자리에서 바벨탑을 쌓아가는 인간의 '치기(稚氣)‘는 어쩌면 영원히 우리가 안고 가야할 짐인지도 모른다.
 
  자연의 일부이면서, 자연의 상태를 간절히 동경하면서도 끝끝내 자연의 본성과는 역행하려는 이 인간 존재의 웃지 못 할 본성은 영원한 숙명일까...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빨리빨리, 천천히 2023.11.27 (월)
   자동판매기 버튼을 눌렀다. 캔 음료가 나오기 전 습관적으로 머리를 숙여 음료수가 나오는 통로로 손을 내밀었다. 조금 기다리니 덜컹하며 내 손에 잡힌 음료가 갈증을 풀어주었다. 자동판매기 앞에서 난 매번 필요 없는 동작을 한다. 커피 자동판매기에서도 버튼을 누른 후 커피가 다 채워지기 전에 손을 먼저 넣어 뜨거운 커피가 손 등에 흘러 데인 적도 있었다. 또 다른 습관은 공공기관 서비스 안내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안내 내용을...
정효봉
엄마의 힘 2023.11.27 (월)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가는 거리가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의 모습 속에서, 외국어로 채워진 상가 외벽의 간판을 보며 나는 누구이고, 내가 있는 곳은 어디 인지를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자메뷰(Jamais Vu), 즉 미시감(未視感) 현상을 말하는 걸까? 익숙한 장소가 낯설게 느껴지면 재빨리 눈을 감거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이국의 정취에 스며들지 못하는 나는 공기 중에...
권은경
오로라 마주하기 2023.11.27 (월)
서막이 열리기 전 객석은 이미 만석반전 매력이 없는 공연은 싫다면서무대의 천정 끝에서 *스윙이 나타났다*오프닝 코러스로 별 똥이 지나간 뒤객석은 발아 되어 변주로 출렁이며수많은 빗살 무늬로 줄을 타는 아리아극한의 무대 위에 광량은 클라이 막스2막 3장 푸른 빛을 되감는 필름처럼오, 그대 다시 보고파 불러본다 *커튼 콜*스윙(Swing)-모든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역으로 주 배우의 이동 시 역할을 맡는 배우*오프닝 코러스(Opening Chorus)-서곡이...
이상목
가을날 2023.11.20 (월)
하늘빛 깊어져가로수 이파리 물들어가면심연에 묻힌 것들이명치끝에서 치오른다단풍빛 눈빛이며뒤돌아 선 가랑잎 사람말씨 곱던 그녀랑두레박으로 퍼올리고 싶다다시 만난다면봄날처럼 웃을 수 있을까가을은 촉수를 흔들며 사냥감을 찾고나무 빛깔에 스며들며덜컥 가을의 포로가 되고 만다냄비에선 김치찌개가 보글거리고달님도 창문 안을 기웃거리는데.
임현숙
    케이팝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한 유명인이 성경 강의를 한다고 해서, 유튜브를 통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강의 시작에 앞서 그 유명인은 자기의 사적인 이야기부터 꺼냈다. 얼마 전 생일날 친구로부터,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너에게.”로 시작되는 생일 카드를 받았다고 했다. 그 카드를 준 친구와는 무명 시절을 같이 보냈었는데, 현재 자기는 크게 성공했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무명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 친구 눈에는 그가 얼마나...
박정은
어떤 눈물 2023.11.20 (월)
   벌써 14년 전이다. 한 방송사가 47주년 특별 기획이라며 보여주던 다큐멘터리는 참 충격적이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렸다가 보게 된 프로였는데 지금도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 지구 온난화로 사냥터를 잃어가는 북극곰의 눈물, 빨리 녹아 사라져버리는 작은 유빙流氷에 갇힌 바다 코끼리, 사라지는 툰드라에서 이동하는 순록 떼의 모습은 결코 아름다운 영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는...
최원현
추수감사절 2023.11.20 (월)
바람에 출렁이는 이삭이하늘 문에 닿아 노크를 하네이제는 두 손 모아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시간공중에 나는 새도 가만히 내려와바닥에 떨어진 이삭을 쪼네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재단에잔치를 베푸시는 농부의 손은거룩하기만 하고허수아비도 참새도 즐겁게 춤을 추면서풍년을 노래하는 추수감사절부귀영화도 한낱 바람과 같다고 하나오늘 만은 들꽃처럼 환하게 노래 하려네
유우영
금은달 금은별 2023.11.15 (수)
하아. 은별이는 침대에 털썩 드러누우면서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사 온 집은 말이 좋아서 현대식 한옥이지, 낡은 한옥에 부엌과 화장실만 신식으로 덧지은, 그냥 시골집이었다. 이사를 가지 않으면 밥도 안 먹고 학교도 다니지 않겠다고 강짜를 부리긴 했지만, 이런 깡촌으로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방문 너머로 아빠와 통화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럼, 잘 도착했지. 이삿짐 아저씨들이 다 제자리에 들여놔줘서 정리만...
곽선영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