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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미는 손

줄리아 헤븐 김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9-10 14:39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어둠이 내려 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내가 밖으로 나왔을 땐 비가 내리기 시작한 탓인지 물기에 젖어 들어가는 어둠은 이미 밤 공기를 뱉고 있었다.
 '어?' '어디지?'

둘러 보았던 곳을 두어 번 재차 가보고서야, 불독의 표정이 연상되어 헌터라고 이름까지 지어 부르던 내 하얀 차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도난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상의 불안한 설정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의 전율은 괴기영화를 관람 할 때의 억지 공포와는 전혀 달랐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어떠한 자극적인 요소도 없는데 내 심장의 당황한 움직임은 내가 정말 난감하고, 난처한 곤경에 빠졌다는 것을 알 게 해 준다. 차 안에 넣어 둔 자동차 보험증으로 인해 내 신상정보가 노출되면 제 2, 제 3의 또 다른 피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또한 커져만 갔다. 당장 내 차가 없어서 오는 불편함 역시, 여러 가지 온갖 좋지 않은 불길한 생각과 함께 순식 간에 두려움과 공포 속으로 나를 몰아 넣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사이에 가늘던 빗줄기가 점 점 굵어지고 거세어졌다.

그제야 양손에 들려 있는 장 바구니의 무게가 엄습하는 불안감에 버겁게 느껴졌다. 이상한 것은 내리는 비는 어제도 지난 주에도 오던 비와 다를 바 없는데, 내 뺨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빗방울 하나하나가 얼마나 아프게 느껴지던 지.

난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쏟아지는 비를 피하지 않고 맞고 서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어찌 받아 들여야 하는 지 아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망부석이 되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빗물에 섞어 내 보내고만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기이 했는지 지나가던 건장한 청년이 발길을 돌려 내게로 다가 왔다.
한 밤중이라고 느껴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

잔뜩 겁을 집어 먹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청년은 차가 견인되어 간 것 같다며 허공을 가로 저어 견인장소를 설명 해 준다. 자기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며. 청년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부싯돌로 붙인 작은 불씨처럼 소멸 되었던 희망이 간절한 열망에 의해 소생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밴쿠버로 이사 온 지 일년도 채 안되어 지리도 낯선데다, 손 짓으로 가르쳐 주는 장소는 비록, 영어를 알아 들었다 하더라도 이름 모를 구석을 찾아 나서기엔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내 손에 들린 비닐봉투에 시선을 보내던 청년은 나의 딱한 처지를 감지 한 듯, 봉투를 가리키며 마트에 들어가서 물어 보라고 권한다.

자초지종 나의 설명을 들은 마트의 남자 매니저는 자세하게 종이에 약도를 그려 주며, 방금 전의 청년과 똑같이 걱정 말라고 위로를 해 주었다. 자동차가 그 곳에 분명 있을 거라면서.

반신반의 속에 택시를 타고 찾아 간 그 곳엔 세차게 내리는 어둠 속의 빗줄기 사이로 멀리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나의 헌터를 단박에 알아 볼 수가 있었다. '아, 고맙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견인료를 지불하고, 내어 준 벌금용지를 받아 들고서야, 난 차 안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뭐라 표현하지 못 할 묘한 기분이 나를 휘감더니 내 스스로 통제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버렸다. 그 순간, 차창에 부딪혀 퍼져가는 빗물과 눈물이 갑자기 섞이기 시작했다. 도난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쏟아지는 나의 오열이 조금은 낯설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멈춰지진 않았다.

운전대를 잡은 지 삼십오 년 동안, 단 한번도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기에...... 특히나, 낯선 이국 땅에서 언어의 불편함까지 겪으며 혼자 이런 일을 감당 하기엔 내 스스로가 참 나약 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치며, 운전대를 부여 잡은 두 손에 쥐어 진 힘이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유리창을 뚫을 기세로 쏟아지는 빗발이 오늘따라 한국의 여름장마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인지.

눈이 부시도록 환한 햇살이 이른 아침부터 창문에 걸 터 앉아 나를 깨운다.
악몽 같던 어제의 불안이 희망에 찬 새 날에 쫓겨 가고 마치 모진 풍파를 이겨 낸 바다 위의 하얀 돛단배처럼 잠잠한 파도와 같은 감동으로 어제 일이 떠 올랐다.
내가 만일, 마트 근처가 아닌 인적 조차 뜸한 외진 곳에서, 어제 보다 더 늦은 밤 시각에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얼마나 난감 했을까?
오고 가는 차량도 없고, 길 가의 가로등 불빛 마저 흐릿한 낯선 곳이었다면...... ?

어제의 일을 떠 올리며 이런저런 가설을 잡아 생각하다 보니, 발을 동동거리며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을 때, 말을 걸어 준 낯선 외국인 청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사실, 평소 같았다면 빗줄기를 묻히고 어둠 속에서 내게 다가오는 청년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 듯 싶다. 되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경계를 하지 않았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선입견이라는 것이 내 몸 안에 본능적으로 잠재되어 그 것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견줘가며, 본의 아니게 상처까지 입혀가며 살고 있는 건 아닌 지, 어둠 속에서 내게 손을 내 밀어 주던 고마운 청년을 통해 새삼 나를 돌아보는 계기 하나가 또 생겼다.

악연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귀한 인연이 되고 좋은 만남으로 이어 간다는 것을 난 안다. 내 곁을 스쳐가는 미세한 바람 조차 귀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 또한 누군 가를 향해 내미는 손을 주저하지 말아야겠다. 비록, 이 글을 읽지는 못할 테지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 주었던 그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이 땅엔 좋은 손을 가진 분들이 참 많다는 생각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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