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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복사꽃 핀 과수원길

김대식, 토론토 거주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7-01 14:19

맞선을 보았다. 여자는 다소곳하니 참했다. 날씬하고 차분한 형이었다. 미인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눈길을 끄는 외모였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자기 관리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먹는 것을 절제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외모에서 표가 난다. 대개 살이 쪄있고, 음식 앞에서 식탐을 드러낸다. 그리고 술이나 담배 등을 많이 하는 여자들은, 남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어딘지 모르게 냄새가, 조금은, 풍기는 법이다.
 
​나는 가끔씩 수영을 하고 담배는 피우지 않으며 술은 맥주만 조금 마시는 편이다. 맥주는 도수도 낮은데다 음식과 같이 마시면 배가 불러와 많이 마실 수 없는 장점을 가졌다. 그녀는 담배는 물론이고 술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웃을 때의 그녀의 치아는 가지런하고 하얬다. 나도 여러 번 웃었다.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웠다. 그녀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의 직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다음 달 과장으로 진급하게 되어있는, 우성 전자의 대리급 직원이고 그녀는 중학교 영어 선생이었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두 남녀가 결혼해서 한동안 맞벌이하면 경제적으로 금방 일어서는 것은 뻔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취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는 수영, 배드민턴 같은 운동을 좋아하는데 비해 그녀는 독서나 영화 감상 같은 것을 좋아했다. 그래도 등산 같은 것은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서무주임으로 아직 현역에 있다고 했다. 나의 아버지는 육군 준위로 예편해서 연금으로 생활하고 계신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첫 만남이라 너무 무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서로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시키고 우리는 커피숍을 나왔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거기서 K시로 가는 시외 버스를 탄다고 했다. 내가 차로 그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약간 교외에 있는 그 버스 정류장까지 그녀와 드라이브를 즐긴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내가 주차장에서 나의 하얀 새 차를 몰고 나와 보니 그녀가 길가에 서있었다. 그녀는 몸매도 좋았다. 그녀가 뒷좌석 오른쪽에 앉고 탁! 차 문을 닫자 나는 출발했다. “아직 새 차 냄새가 나네요. 제 차는 낡았는데..”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차는 고장이 나서 정비소에 있다고 했다.
 
잠시후 차는 도시를 벗어났다. 야트막한 구릉이 연이어 겹쳐서 나타나고 주위가 조용해지고 맑은 공기가 상쾌해졌다. 이제 조금만 가면 그녀가 내릴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헤어지기가 아쉬운 나는 차를 천천히 몰았다. 길 오른쪽 편에 복사꽃과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과수원이 눈에 들어왔다가 뒤로 사라지며 또 다른 과수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일대는 과수원 지대인 것 같았다. 풍경을 보고 있는 여자의 마스카라한 눈에 아쉬움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여자는 풍경을 보고 있는 게 아닌 듯했다. 나의 눈길도 그랬을 것이다.
 
​다음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지금 해버릴까? 그녀도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게 아닐까? 아니다. 너무 서두르는 것은 좋지 않다.
 
​그 전에 한번 서두르다 일을 그르친 적이 있었다. 맞선을 보고 나서 어떤 여자를 차로 집에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나는 “이번 주말에 시간 있으세요?”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선약이 있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금방 울적해 져 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전만 했다. 결국 그런 분위기로 조금 더 가다가 그녀가 원하는 곳에 내려주고 그걸로 끝을 낸적이 있다. 사실 그녀로서는 정말 선약이 있었을 지도 모르고 아니면, 내가 생각했듯이, 내가 마음에 안듬을 그렇게 표시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간에 나는 그것을 나쁜쪽으로 해석하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내쪽에서 끝을 내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여자의 마음을 잘 읽거나 여자를 잘 다루는 축은 못되었다.
 
​그래서 이날도 그런 불상사가 생길까봐 나는 그녀에게 다음의 약속에 대해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전화번호를 교환하자고 이쪽에서 제안 한 것이 다음에 서로 연락하자는 뜻인줄을 그녀가 알아주기를 바랬다. 나는 그녀를 데려다 주는 나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었다.
 
​맞선이라는 게 연애와 달라 서로 첫눈에 반해 불꽃튀는 연애로 치닫는 일은 드물다. 설사 그런 상황이 생긴다해도, ‘이거 너무 빠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무래도 조금씩 멈칫거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자제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다. 상대와의 만남에서 받은 인상과 정보를 곰곰이 되새겨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다시 만나면, 이젠 구면이 되었기에 훨씬 편안하면서도 새로운 기분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녀도 그런 생각이기를 바랬다.
 
이때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밀폐된 차안에서 무슨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처음엔 자동차의 에어컨에서 새어나오는 냉매가 아닌가하고 에어컨 놉을 만져보고 통풍구에 얼굴을 조금 가까이하고 냄새도 맡아보았다. 하지만 에어콘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의 느낌에 그것은... 사람의 방귀냄새 같았다.
 
​나는 그녀를 아주 잠깐 룸미러로 보았다. 그녀는 마스카라한 눈으로 여전히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수원 지대를 벗어나자 키 큰 포플라 나무들이 길가에 이열종대로 늘어서 있었고 포플라의 잎사귀가 그녀의 얼굴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그러다 그녀가 룸미러속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나의 눈길을 보았다. 그녀는 약간 안절부절하는 듯했다.
 
냄새는 짙었다. ‘속이 많이 안 좋으신가 봐.’ 그러나 나는 창문을 열수 없었다. 내가 창문을 열면, 그 행동은 너무 노골적인 책망의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것은, ‘당신의 냄새를 내보내기 위해 창문을 좀 열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상대를 무안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 짓은 맞선이라는 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인간관계에서 치명적일 수 있었다.
 
냄새가 약간 가시는 듯해서 나는 문을 열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며 말없이 운전만 했다.
 
이때, ‘쒸~’ 하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자기 쪽 창문을 내리는 소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먼 산의 구릉 여기저기에 희끗희끗 핀 연분홍빛 봄꽃을 보는 듯했다. 창문 올리는 소리가 조심스러이 들려왔다.
 
​‘​속으로는 매우 창피한 생각이 들었으리라’. 나는 한동안 앞 만 바라보고 차를 몰았다.
 
“저기 버스 정류장에 세워 주시면 돼요.”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버스 정류장 간판에 37이라는 숫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K 시로 가는 시외버스 노선 번호였다. 나는 차의 속도를 줄였다.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룸 미러를 통해 그녀를 쳐다보며 나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녀도, “저도 즐거웠습니다”하고 말하고 머리를 조금 까딱였다. 얼굴엔 미소가 떠 있었다. 차를 멈추었다. 그녀는 거울 속의 내 눈을 잠시 나를 바라본 다음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는, 해석하기가 복잡한 여러 가지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정류장에 서서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태세를 취하자 나는 출발하기 전에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버스가 오는 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었다.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사람이 이런저런 냄새를 풍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그 냄새를 씻고, 무언가를 바르고, 뿌려서, 없애거나 중화시키거나 한다. 그리고 대개는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어 냄새가 닿지 않게 한다. 이런 것을 우리는 예절이라고 한다. 간혹 냄새에 관한 이러한 예절을 지키는데 의도치 않은 실수가 생겨, 상대에게 냄새를 풍기는 경우가 있다. 이날의 사건처럼...
 
한데 그런 실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사람 나름이다. ‘실수할 수도 있지 뭐.’ 이렇게 받아들여주는 사람도 있고 ‘칠칠맞게 냄새를 풍기다니..’ 이렇게 실망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조금 더 복잡하게, ‘실수할 수도 있겠지만 환상이 깨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마지막의 경우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첫 번째처럼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길가에 잠시 차를 멈추었다. 뒤 따라 오는 버스를 지나가게 한 다음 차를 유턴 시켜 오던 길로 달렸다. 내가 그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면서 보니 그녀는 이미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지나간 그 버스가 K 시 행 시외버스였던 것을 기억해 내었다.
 
​날씬하고 깨끗한 천상의 이미지의 그녀에게, 그 냄새가 주는 동물적인 이미지가 오버랩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두 이미지가 자꾸 함께 떠올랐다. 나는 괴로웠다. 포기해야 하나?
 
​차는 복사꽃과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 구릉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길 왼편에 개나리꽃이 노랗게 피어있는 생울타리를 친 과수원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까 보던 풍경이었다. 나는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역한 냄새가 풍겼다. 아까 그 냄새였다.
 
​나는 의아했다.
 
​룸미러로 그녀가 앉았던 자리를 보았다. 다시 밖을 보았다. 한 과수원의 나무들 사이사이에 거무스름한 물질이 덮여 있는 게 보였다. 거름인 듯했다. 난 깨달았다! 그것이... 똥거름 냄새라는 것을! 아까도 사람 냄새 치고는 너무 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네 개의 창을 모두 활짝 내렸다. 그 거름 냄새는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과수원 지대를 벗어나자 공기가 상쾌해졌다. 나는 에어컨의 ‘외부공기유입’을 차단하고 창문을 닫았다. 냄새는 잠시 후 완전히 가셨다.
 
​그러나 나의 부끄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면 그녀도 그 냄새를 맡고 내가 방귀 뀐 걸로 생각했을 것 같았다. 내가 단번에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했듯이.
 
내가, 방귀를 뀌어 놓고도 끝내 창문을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그녀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냄새를 풍겨놓고 상대가 그 냄새를 못 맡을 거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인간이든지, 상대가 그 냄새에 불쾌해하고 있는데도 애써 무시하는 철면피든지, 아니면 후각에 무슨 문제가 있는 장애인일 거라고 생각했을 거 같았다. 나에 대해 가졌던, 그런대로 괜찮았을 이미지가 깨어진 것은 물론일 것이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난 그녀에게 다시 만나자고 연락할 용기가 없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하고 민망했다. 이 일로 우리의 신선하고 희망찬 관계가 활기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나에게 연락을 안 할 것이고 나는 용기가 없고...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난 바쁘게 지내며 일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회사에서였다. 내 휴대폰이 밝아지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잘 지내세요?’
 
그녀였다!
 
​나는 당황하고 여전히 민망해서, ‘네 잘 지냅니다.’라는 수동적인 메시지로 답을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큰 기쁨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날 차 태워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또 한번 그녀의 문자가 들어왔다.
 
‘원 별말씀을..’ 이 문자를 보내고 나서 나는 긴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의 메시지가 서둘러 다시 들어왔다.
 
‘그 동네 과수원은 봄마다 거름을 쳐요. 모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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