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맨몸으로 겨울을 이겨 낸 나무들이 자축의 시간을 갖는 계절이다.
가지마다 수액을 끌어올려 붉은 기운이 감도는 나무들은 깊은 밤 보는 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화사한 꽃을 피운다. 봄의 전령들이 대기 속에 가득한 오후 온 집안에 아마 씨 기름 향이 가득하다. 길고 긴 우기의 겨울을 보내며 남편이 깎고 다듬은 나뭇가지들은 그럴듯한 모양의 의자가 되었다. 세 번째 아마 씨 기름을 의자에 칠하는 남편의 표정은 사뭇 무아지경이다. 호숫가에서 주워온 자연스러운 곡선과 부드러운 재질의 나뭇가지들은 오랜 시간 동안의 정성이 더해져 훌륭한 의자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칠이 마르기를 기다리던 남편은 붓글씨 연습 후 파지로 나온 화선지로 새끼를 꼬기 시작한다. 의자 방석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 끝에 ‘이야기가 있는 의자’에 걸맞은 소재를 찾은 것이다. 틈틈이 새끼를 꼬는 일이 요즘 남편의 주된 일과인데 올여름 계획된 서예 그룹전에 의자도 같이 전시해 볼까 하는 야무진 계획을 내게 내비친다.
하루 중 해 질 무렵에 해당되는 노년의 시간은 몇 배의 속도가 더해져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하루를 잘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가 조금만 달랐더라면 하는 내 성찰의 시간을 갖는 나이이다. 젊은 시절 삶의 버팀목이 되었던 건강과 사회적인 성취감이 허물어지는 상실감 또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년에 이른 사람은 모두가 신비주의자 라고 한다. 눈길과 마음에 닿는 모든 것이 경이롭고 무심하게 지나치던 것에서 의미를 보며 삶의 지향점을 말할 수 있는 생각의 깊이를 갖게 된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인생 초반은 인생 후반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긍정하게도 한다.
인생 후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는 취미 활동이라고 우리는 이야기 한다. 여가를 즐긴다는 것은 일을 위한 재충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얻을 뿐 아니라 지적 호기심을 만족하게 하고 예술적 잠재력을 높이는 일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긴장을 완화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인생 후반의 과제 중 하나는 사고의 유연성을 갖고 감성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며 억압 되었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내 내면의 아이와 만나는 일은 호기심과 쾌활한 감정 그리고 상상력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며 감정적 교감과 감성의 인식 등 낭만적인 것들과 관계 맺는 일은 모두를 낙관론자로 만들 것이다.”라고 <제3의 연령기>에서 윌리엄 새들러는 말한다. 20여 명이 모인 우리 동네 시니어 센터 노래 교실의 분위기는 마치 초등학교의 음악 시간과도 같다. 서로 어울려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에서 개방적인 사고의 유연성을 볼 수 있다. “당신이 삶의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도 웃음 지을 수 있다면 아마도 내일은 당신을 위해 빛나는 해를 볼 수도 있고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그들의 합창 소리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는 노년의 미지의 시간들은 내 의지대로 살아내는 삶이기를 희망한다. 내가 조금만 달라지면 일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은 바로 나를 배려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변화되는 삶 속에는 자신의 잠재력이 확대되는 충만함이 있을 것이다. 인생 후반의 취미 생활로 건강한 자아상과 새로운 생활 양식을 만들어가는 남편은 분명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될 것이다.” 생각하며 오늘을 마무리 할 것이다.
한적한 시골 길의 가로등처럼 혼자서도 제자리에서 빛날 수 있는 그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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