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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폭설 속으로

이순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2-27 11:02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먼 산으로부터 싸늘한 바람이 달려오나 싶더니 새벽부터 내린 눈이 자동차 지붕마다 고봉 밥 처럼 소복소복 쌓였다. 출근길에 바쁜 마음 총총걸음인데 가지각색의 우산들은 새하얀 눈을 살포시 이고 간다. 보슬보슬 눈이 오다말다 하지만 오늘은 진종일 눈이 올 것이라 예보했다. 등산 가기로 약속한 오명숙은 눈이 와서 더욱 좋다고 친구와 같이 온다고 했다. 우리는 불광동 전철역에서 만나 북한산 비봉으로 갈 약속을 했다.

  1983년 도봉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은 서울 근교의 산 가운데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鎭山)으로 불렸다. 백운대 836m, 인수봉 810m 만경대 800m로 최고봉 백운대(白雲臺)와 동쪽에 있는 인수봉(仁壽峰), 남쪽의 만경대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더 잘 알려진 산이다.

  중생대(中生代) 말기에 지층에 파고 든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표면에 드러났다가 다시 풍화작용을 받아 험준한 바위산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 외곽에 위치해 연중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이다.

  우리는 약속장소에서 만나, 장미약수터에서 계단을 따라 헬기장을 향해 올라갔다. 펑-펑 쏟아지는 눈은 인정사정없이 내려 붓는데 친구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눈은 계속 날리는데 오명숙은 양산을 쓰고 나는 비옷을 입었다. 같이 온 친구는, 내리는 눈을 온 몸으로 다 받으면서도 아이처럼 좋아하였다. 나는 눈과 비속 산행은 물론이고 눈밭 야간 산행도 많이 하였지만 폭설 속에 산행은 처음이라 환상적이었다. 가파른 산길에 양산까지 들고 휘날리는 눈 속을 걷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즐거웠다.  

  갓 내린 눈이 바닥의 모래와 섞이니 그냥 흙만 있을 때보다 폭신하여 걷기가 훨씬 수월하였다. 첫 계단 위에서 사각정자 우측으로 올라가는데 돌길에 급경사라 좀 어려웠다. 더욱이 눈이 내리는 길이라 조심스럽기도 하였다. 한참을 올라가서 작은 정자를 만나 잠깐 쉬며 따끈한 찻잔에 정담을 섞어 마시고 또 걸었다. 이제는 부슬부슬 내리는 눈송이를 헤치고 뽀드득 뽀드득 눈발을 밟아갔다. 너무 힘이 들어 등골에 땀이 난다는 친구도 눈사람 노래까지 불러가며 신나게 올라갔다.

  높지 않은 정상, 헬기장에 올라서서 가쁜 숨을 내려놓고 저 아래 그림 같은 설경을 감상하였다. 아직도 허공에 반짝이는 눈은 오가는 산객의 머리 위에, 작은 양산에도 담뿍 내려앉는데 소나무와 잡목에도 새하얀 눈꽃송이가 무어라 표현 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저 멀리 족두리 봉, 향로봉, 비봉, 승가 봉, 문수봉도 새하얀 눈을 듬뿍 덮어쓰고 장엄하게 버티고 앉았으며 그 주위를 둘러선 기암괴석도 절경이었다.

  더없이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하며 오르는데 드디어 사모바위도 나타났다. 흰 눈에 묻힌 우람한 명산은 양팔을 크게 벌려 우리를 안을 듯이 반겨주는데 눈발이 굵어져 큰 눈송이가 마구 쏟아졌다. 

  돌아설까말까 망설이면서 오르막 내리막 가다보니 조상들의 자취인 옛 성터를 만났다. 돌담을 넘어 목적지를 바라보며 갔다. 산길은 점점 더 가파르고 돌길이 험하여 친구는 그만 돌아가자 한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눈은 멈출 기세 없이 함박꽃이 쏟아지니 좀 아쉽기는 해도 편안한 마음으로 뒤돌아서 내려왔다. 사실은 계속 내리는 눈이 쌓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는데 하산을 작정하니 걸음이 가벼워졌다. 조심스럽게 성터를 다시 지나오는 길. 우측 위 아담한 솔밭으로 올라갔다. 지고 온 등짐은 해결하고 가기로 했다.

  아늑한 작은 소나무들 아래 자리를 깔고 양산으로 지붕을 만들어 그래도 보이는 하늘을 막느라 신문도 몇 장 올려놨더니 괜찮은 방이 하나 만들어졌다. 비닐방석을 깔고 앉아 배낭을 풀고 갖가지 음식을 꺼내 놓으니 솔 지붕 눈 방에 잔치 상이 벌어졌다. 서늘한 산방에서 날아드는 눈을 맞으며 먹는 점심 맛도 별식이었다. 한참 먹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선물 한 보따리가 뚝 떨어졌다. 진수성찬은 간 데 없고 밥상 가득 하얀 눈판이었다. 소나무 사이 작은 공간에 얹어놓은 신문지가 눈을 잔뜩 이고 밥상으로 떨어진 것이다. 갑자기 눈 벼락을 맞은 우리는 너무도 재미있어 깔깔대며 폭소가 터졌다.

  천장에 구멍이 났으니 당연히 눈송이가 심술을 부렸다. 그 빈자리로 내리는 눈이 만만치 않아 음식에 쌓인다. 그렇게 눈 밥을 먹는 동안 날리는 눈발이 점점 줄어들더니 해맑은 얼굴을 내민 해님이 방끗 웃어준다. 언제 눈이 왔더냐 싶게 너무도 쾌적한 날씨였다. 후식까지 끝내고 따끈한 차도 마시며 상큼한 솔 향을 몸 하나 가득 담아 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일어섰다. 한참을 가노라니 해님은 숨어버리고 또 제법 큰 눈송이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탐스러운 함박 눈 속을 거침없이 헤치며 불광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즐거운 하루를 꿈같이 보내고 서로 반대방향 전철을 타면서 아쉽게 헤어졌다. 전차 안 옆자리에 노신사가 “날씨도 차지만 이 눈 속에 등산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였다. 어쨌든 눈 오는 날 북한산 산행으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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