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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름, 어머니

장성순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12-19 15:45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어머니란 단어는 어학적으로 고유명사(固有名詞)다. 그러나 어머니를 고유명사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 까닭은 사람들 마음속 깊이 훈훈한 정으로 가득 차 있는 낱말이기 때문이다.

인간존재의 근원이 바로 어머니로부터가 아닌가!

어머니란 용어는 사람뿐만이 아니고 모든 생명체 세계에서 영구불변의 용어이다. 어머니는 나(自身)라는 실체를 상징하고 있다. 생존하고 있든지 타계하였든지 간에 자기를 세상으로 온 힘을 다해 만들어 내주신 어머니란 겉껍질(外皮)이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항상 어머니에 대한 은혜와 감사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은혜를 보답할 기회가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마음속에 실천하려는 의지가 어버이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어버이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겠지만, 내게는 많은 한(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까지 기다리시던 큰아들은 먼 타국에서 제 자식들 먹여 살기에 바빠 임종을 못 지켰다. 열두 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데도 가지 못하고 며칠을 멍청히 창가에 서서 태평양 넘어 고국의 하늘을 내다보며 귀국 비행기 푯값에 매달려 영원히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뵙지 못한 불효자식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그때 일들이 밀물처럼 가슴에 밀려오면 가랑비 같은 눈물방울이 눈가에 맺힌다.

영영 떠나가신 어머님께 변명 같은 한마디도 못하고 삼켜야만 했던 그 수 많은 날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후회(後悔)와 아쉬움을 흐르는 세월 속에 다 버렸는데도 늘 제자리로 돌아와 가슴에 한(恨)으로 맴돌고 있다.

어머니는 태어난 지 3개월 된 나를 업고 아버지 직장(당시 목포부청 말단직)이 있는 목포로 나와 나를 기르셨다. 아버지의 박봉으로 셋방살이하며 힘겹게 오직 두 아들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도록 젊은 날을 보내셨다. 그러나 그렇게 피나는 공으로 성장한 아들은 어머니를 편히 모시지 못했다. 잘 살지도 못하는 섬마을을 떠날 수 없다는 고집스러우신 할머님, 종갓집을 비울 수가 없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결국, 어머님은 아들들을 다 키워놓고 40년을 도시에서 사시다가 늙은 말년에 홀로 사시는 시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종갓집인 섬으로 내려가시고 만 것이다. 그렇게 공들여 키웠던 큰아들은 현실에 밀려 어머니를 홀로 두고 캐나다란 나라로 이민을 가버렸다. 어머니는 외국으로 이민 간 아들 소식만을 기다리는 것을 낙으로 삼고 지내셨다고 했다. 고달픈 이민 생활로 여의치 못한 아들은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는 편지만을 보내고 어머니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던 어려운 형편에 고민만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흔한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하시고 종갓집 맏며느리로 90이 넘으신 시어머니를 모시며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한국에 뿌리 깊은 유교 사상에 희생된 여인들의 상(像)이 아니었나 싶다. 어머님이 떠나신 후 15년 동안 어머님을 생각하며 쓴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들어 어머니 영전에 바치려 오랜 인고(忍苦)를 끝내고 생전에 헤어진 후 22년 만에 고국을 찾아갔다. 비행기의 조그마한 원형 창문 밖으로 보이는 22년이 지난 조국의 모습은 엄청나게 변해 버렸다. 목포로 가는 남행열차를 타 본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봄기운에 푸른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있는 자연의 신비, 나의 고향임을 실감했다. 숙부댁에 여장을 풀고 다음 날 아침 여객선으로 섬에 계신 어머님과 아버님을 뵈러 갈 요량으로 시내에 있는 친척 집을 방문했다.

해가 저무니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섬으로 가는 연락선 운항이 정지되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바람은 더 심하게 불었다. 아침이 되어도 바람은 자지 않고 더 세차게 불었다. 걱정되어 선착장으로 나가기 전에 전화로 확인해보라고 숙모님이 말씀하셨다. 이런 바람이면 배가 뜰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든다시며 전화로 확인하란다. 사촌이 배 회사로 확인했다. 태풍 주의보가 통보되어 배가 출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머님께서 아들에게 얼마나 서운하셨으면 이렇게 노하실까! …

22년 만에 찾아온 큰아들을 만나지 않으시겠다는 노여움을 표현하시는 것 같기만 했다. 가슴에 뜨거운 불덩이가 타는 것 같은 아픔에 미칠 것 같았다. 이틀 만에야 어머님 노여움이 풀리셨다. 폭풍 주의보는 해제되었으나 바다 물결은 가라앉지 않고 성이 나 있었다. 그래도 배가 출항한다 해서 선착장으로 나갔다.

그 옛날 통통…기계 소리를 내던 나무로 건조된 연락선은 자취를 감추고 자동차를 싣고 다니는, 통통선 두 배가 넘는 고속 철선으로 바뀌어 있다. 성이 나 있는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를 가르며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꿈에도 그리던 고향 섬 선착장에 도착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선착장과 넓은 주차장에 배 도착 시각에 맞춰 미니 버스와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은 분명 문명의 혜택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어린 시절 종선(전마선)을 타고 나가 바다 가운데에서 기다리는 연락선에 오르내리던 긴장했던 기억들만이 떠올랐다.

기계가 섬에 들어오지 않았던  순수한 자연의 들녘은 산업화 태풍에 휩쓸려 사라져버렸고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림처럼 아름답고 낭만이 흐르던 아늑한 섬마을 산야의 모습은 그렇게 못잊어 하던 어머님의 그리움과 함께 내 마음을 저리게 했다. 세월이 무정하게 쓸고 지나간 흔적이 너무도 확연했다. 병풍처럼 둘러 서있는 안산과 시목산은 옛모습 그대로 연 붉은 진달래 꽃이 만발하였다. 산자락 밑 밭 가운데 아버님 옆에 누워계신 어머님을 찾았다.

 잡초와 싸리나무들이 엉켜있는 어머님의 묘(墓).

 “어머니 이제야 내가 왔습니다. 그렇게 잊지 못하시며 기다리시다가 마지막 떠나시던 날도 찾았던 큰아들이 왔습니다. 만나면 하시겠다던 말들을 둘째 아들에게도 내놓지 못하시고 가슴에 묻고 기다리기만 하시던 그 아들이 어머니 앞에 지금 왔습니다. 말씀해보세요! 잘 살았느냐. 서운해했었다고요! 어머니 불효한 이 아들 용서하시고, 당신을 꼭 모시겠다고 하며 떠나던 날처럼 내 손 꼭 잡아주세요.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있는 어머니의 그 온기(溫氣)를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어머니가 찾던 못난 큰아들 이제야 왔습니다. 내 어머니!”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내가 어머니 영전에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속죄였고 그리움이었다. 따스한 봄 석양을 뒤로하며 어머님과 작별을 하고 돌아왔다.  

요즈음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어머니를 관광시켜 드린다며 비행기에 태워 제주도나 강원도의 관광 지역에 버려두고 돌아가는 천벌 받을 자식들이 있다고 한다. 하늘이 화(禍)를 낼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버림받은 부모들은 절대로 사실을 말하지 않고 다 잊어버린 치매 병자 행세를 한다고 한다. 비록 자신을 버린 자식일 망정 자식의 명예와 체면, 사회적 지위를 생명처럼 여기는 그 어버이들에 짙은 모정은 불사조와 같은 사랑임을 어찌 잊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고위직이나 지식인들이 더 많다고 하니 어떻게 변해가는 인간 사회란 말인가.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자식들이 부모의 애정을 백 분의 일 만큼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천륜을 외면하려면 돌아올 값도 알아야 할 것이다. 어버이 살아 계실 때 단 한 가지라도 보살펴 드려야 한다. 떠난 후 열 번 백 번의 엄청난 기일 제사상은 떠나버린 분에게는 소용없는 겉치레다.

고국을 떠나오던 날 전송 나온 사촌들에게 어머님 살아생전에 미련없이, 아낌없이, 후회 없이, 잘 공양해드려야 한다고 나의 후회를 남기며 비행기에 올랐었다.

어버이는 올바른 자식의 거울이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리 삶에 샘물이다. 또한, 어버이는 모든 사람의 실생활 속에 살아있는 원천이며 모든 생명체의 원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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