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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나라로 간다 13

김해영 시인 haeyoung55@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11-13 11:20

빙하기로 시간 여행
-하딩 아이스필드 트레일

 익싯 빙하(Exit Glacier) 자락에서 캠핑하는 걸로 알라스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늘이 말린다. 창에 베일처럼 드리운 빗줄기를 보고 갈등을 한다. 하딩 아이스필드까지 포기해야 하나? 밴쿠버 산꾼에게 포기란 없다. 





 아침까지 하늘은 울음을 거두지 않는다. 그래도 비장비를 단단히 챙기고 주먹밥과 물병이 든 배낭을 메고 나선다. 익싯 글래셔 하이웨이 10km를 달려 익싯 글래셔 내추럴 센터에 도착. 건물 뒤편 트레일로 들어선다. 금방 익싯 글래셔와 하딩 아이스필드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긴 하딩 빙원 트레일(Harding Ice Fields Trail,왕복 13km) 먼저, 짧은 익싯 글래셔 트레일 나중. 순서를 정하고  하딩 쪽으로 길을 잡는다. 조금만 올라가면 익싯 글래셔가 왼편 어깨쪽에 얹히는 전망대에 선다. 빙하 흘러 내려간 평원이 탄광촌처럼 까맣다. 지구에서 뿜어내는 이산화탄소 때문이리라. 그 원흉이 나라는 사실에 전율한다. 편리와 이기심이 초래한 자연의 부식을 눈앞에 목도하고서야 비로소 깨닫는 이 어리석음!

 미루나무와 오리나무로 덮인 숲을 지날 땐 보이지 않던 빙하가 마못 메도우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열린다. 마치 하늘에서 명주비단이 뚝 떨어져 언덕을 타고 흐르는 듯. 빙하를 어깨에 얹고, 빗방울 송글송글 맺힌 루핀과 헤더 방긋 웃는 메도우를 걷는다. 제맘대로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는 비는 아랑곳 않고 새로 만난 동무들과 눈맞춤한다. 오른쪽 산굽이를 돌면서 잠시 빙하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즈음 눈패치가 드문드문 나타난다.





 난쟁이 꽃들도 사라지고 초록 풀섶더미도 없는 고원지대(3.5km 지점,아고산지대). 연기처럼 안개 피어오르고 채찍바람이 몸을 휘감는다. 볼이 따갑고 손끝이 시려온다. 정상에 가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그만 돌아서고 싶다. 그러나 팀원 중 한 명은 벌써 하늘에 얹힌 능선의 점이 되어있고, 둘은 언덕을 오르는지 모자만 동동 떠서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들이다. 하는 수 없이큰 바위 뒤에 숨어 잠시 바람을 피했다가 나서길 수십 번. 바람이 가슴팍을 두들기고 다리는 천 근 만 근. 정상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설까? 아니, 허술한 마음가짐 때문이다. 산길을 얕잡아 보고 배낭도 메지 않은 채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왔다. 추가 고도 1000m의 하늘 꼭대기에 걸린 빙원으로 드는 길인데 너무 얕잡아 보았다. 십 리 길을 나서면서도 백 리를 가듯 준비하고 마음을 여며야 옳았다.



 4km 남짓한 설원을 바람과 추위와 싸우며 간다. 큰 바위도 사라지고 검은 돌산이 돛단배처럼 떠있는 눈바다를 건너고 또 건너는데 작은 오두막 한 채가 아스라이 보인다. 쉘터다. 다리에 힘이 붙는다. 마지막 눈다리를 건너고 쉴터 문을 여는데, 바람을 먹은 나무문이 끄떡도 않는다. 벌써 정상을 밟고 돌아온 팀원의 도움으로 문 열고 들어가니 사방 다섯 걸음 세 걸음 크기다. 하이커들 이름이 빼곡이 적혀있다. 매직펜이 없어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 다행이다. 낙서일 뿐인 이름 새겨 무엇하나.



 뒤팀 오기를 기다려 정상에 가보기로 한다. 검은 돌더미를 서너 개 넘어 제일 높은 돌산에 올라도 딱히 전망이 열리지 않는다. 그냥 끝없는 안개바다다. 하딩 아이스필드가 만 년 전에 사라진 빙하기의 관문이라는데.. . 한데 끝없는 눈과 안개숲과 혹독한 추위뿐이다. 생명체 하나 없는 빈 터에 서서 호들호들 떤다. 만 년 전이 아닌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빙하기에 서있는지도…. 인류가 사라지고 모든 생명체가 멸종을 한 지구에 홀연히 찾아온 미래의 빙하기. 그 희고 단단한 빙원의 심장에 서서 수만 년 전을 굽어보고 수만 년 후를 내어다본다.



 몸이 괘종시계 추처럼 흔들린다. 안개 낀 눈밭으로 멧돼지처럼 돌진한다. 가슴팍을 후려치던 비바람이 등을 밀어준 덕에 두어 시간 걸린 빙원지대를 삼십여 분만에 뛰어 내려온다. 마못 메도우에 이르렀을 즈음 빗방울 덜금거리더니 이내 그치고 안개 또한 슬그머니 사라진다. 시야 문득 열리며 자태를 다 드러내는 빙하, 포르스름한 흰 빛 드레스를 늘어뜨린 글래셔에 눈이 휘둥그레진다.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사진을 한 방 찍고 돌아보니 산양 너댓 마리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러나 그 평화는 호들갑스럽게 사진기를 들이대는 바람에 깨어진다. 조금 더 아래턱에서 다시 만난 산양떼, 대장과 귀여운 새끼들 거느린 암산양들을 만났을 적엔 모처럼의 맛난 점심을 방해하지 않으려 슬그머니 자리를 비껴준다. 순식간에 다시 몰려드는 먹구름, 이어서 후두둑 떨어지는 소나기에 쫓기듯이 하산을 한다. 오늘 날씨 꼭 뺑덕어멈처럼 심술궂다.

 익싯 빙하 밟기도 생략하고 반도의 끝 호머(Homer)로 향했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 앵커리지로 직행. 스페나드 호스텔(Spenard Hostel,907- 248-5036)을 찾아 들어가 고단한 몸을 누인다. 이튿날, 공항에 어떤 난감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오전에 알라스카 명물 킹크랩을 사먹는다. 잘 먹고 공항 근처 공원에 가서KAL 비행기가 오가는 것도 잘 구경하였는데… . 티케팅을 하려고 보니 우리 이름이 탑승자 명단에 빠져 있단다. 유니아티드 항공사에서 에어 캐나다에 승객 정보를 주지 않아 생긴 일. 결국 하루를 더 머물렀다 이튿날, 샌프란치스코로 빙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귀환.

 12,000km의 먼 여정을 돌아 보름만에 돌아온 나, 거울 앞에 서니 마음 키가 훌쩍 커졌다. 마음결도 고와지고 마음 보자기도 넓어졌을까?


*’백야의 나라로 가다’를 마치며

이번 유콘 준 주와 알라스카 여행은 시간여행이었다. 1896년에 시작한 골드러시와  만 년 전의 빙하기부터 앞으로 다가올 빙하기까지 몸소 겪는 여행.

그뿐인가? 최첨단 문명이 꽃피는 도시, 그리고 사람과 야생동물이 사는 환경이 별로 다를 것 없는 북극권까지 두루 밟아본 공간여행.

유한한 시간을 무한으로, 무한한 공간을 유한한 시간 내에 섭렵한 무한여행이었다.

가보시라, 벌고 쓰고 다투고 화해하는 일상과는 다른 스페이스를 경험하시리니!

그리고 기꺼이 여러분의 길라잡이가 되어 드릴 터이니… . (haeyoung5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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