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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 입니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10-25 00:00

‘특별한 과거, 이 분야 전문가’ 왕년에... 클래식 기타리스트 & 줄리아니 기타 음악학원장 진경보씨

클래식 기타리스트 진경보씨. 말주변이 별로 없어 보이는 그는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 인터뷰에 대한 부담감이 꽤 큰 듯, 기자와 마주 앉아 한참을 찻잔을 만지작거리기만 하더니 기타 연주부터 들려주겠노라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클래식 기타에 별반 조예가 없던 터라 어색하게 앉아 있던 기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얕은 지식으로 질문하기 앞서 그의 기타 연주부터 들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던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못생긴 발가락 사진처럼, 열 손가락 끝에 훈장처럼 누렇게 박혀있는 굳은살은 진경보(사진 맨 왼쪽)씨의 30년 클래식 기타리스트로서의 과거를 말해준다. 

■ 비 오는 가을에 듣는 ‘로망스’

“클래식 기타는 이래 좋심더. 함 들어보실래요?”
연습실 사방에 놓여 있는 기타 가운데 하나를 들고 온 그가 자세를 잡고 앉았다. 마침 어제 탁구를 치다가 손가락을 다쳐 ‘뻑뻑해졌다’던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섬세한 손끝에서 명주실처럼 곱고 청명한 기타 음이 가을에 더 없이 어울리는 ‘로망스’멜로디로 흘러나왔다.
이어 ‘플라멩고’의 격정적인 리듬으로 바뀐 연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치마 폭을 들썩이며 한바탕 춤이라도 추어야 할 것 같더니, 다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넘어가며 연이어 다섯 곡을 연주한 후 멈췄다.
잠시 손끝을 털어 피로감을 풀어준 다음 자세를 고쳐 앉은 그가 ‘다시 들어보라’는 눈짓을 했다. 첫 곡으로 들려 준 ‘로망스’다. 조금 전 맑고 경쾌한 연주와는 전혀 다른 음색이다. 마치 늦가을 뜬금없이 쏟아진 눈발 앞에 대책 없이 눈을 뒤집어 쓴 나뭇잎이, 바람에 가늘게 흔들리며 나무 아래로 조금씩 차가움을 털어내는 것처럼 우울함마저 느껴지는 장중함이 깔려 있다. 

■ 기타와 지낸 30년

61년생으로 경북대학교 83학번인 그가 기타를 만난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인 77년경. 한창 클래식 기타에 빠져 연주에 물이 오르던 대학시절 연주활동을 했던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감상실 대구 ‘녹향’ 감상실과 ‘대구 클래식 기타 4중주단’ 등의 이름이 그의 과거 속에서 흘러나왔다.
듣기만 해도 ‘고전’의 향기가 묻어 나오는 그 시절부터 클래식 기타를 ‘끼고’ 살았다니, 얼추 계산해도 30년이 족히 넘었을 긴 시간이다. 
“피아노를 전공하던 누님이 제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 ‘고전기타 합주단’ 단원으로 클래식기타 연주를 하고 계셨어요. 어릴 때부터 들어서인지 익숙했죠. 고등학교 입학 후 우연히 어떤 곡을 들었는데 멜로디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때 대구에서는 포크기타 학원은 있어도 클래식기타를 가르치는 학원이 없었어요.”
클래식 기타를 배울 음악학원을 찾다가 만난 사람이 한국에서 손꼽히는 클래식 기타리스트 제정민씨. 어쩌면 오늘 그의 기타실력은 손가락이 마비될 만큼 부단한 노력과 타고난 음악적인 감각, 그리고 처음부터 좋은 스승을 만난 덕분인지도 모른다.
“지금 쉰이 넘었을 텐데 아직까지 연주활동과 제자들 지도를 하고 계시죠. 당시에도 그분의 연주는 명 연주로 손꼽히고 있었고, 클래식 기타를 향한 열정 또한 대단하셨습니다. 그분을 보면서 내 안에 있는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기타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어 기타리스트가 됐을 겁니다.” 
기타를 떼어놓고 단 한 순간도 지낼 수 없었던 당시 그의 희망은 음악대학으로 진학하는 것. 그러나 경상도의 종갓집 장손이었던 그의 꿈은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잠시 접어야 했다.
“영문학과로 진학했지만 간판은 영문학, 실제는 기타연습과 연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으며 살았었죠. 시험 때 되면 후배들과 친구들의 도움 받아가며 그래도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죠. 하하하……”
몇 년의 직장생활과 결혼을 한 이후까지 기타를 향한 그의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 기미가 없었고, 29세에 기어코 유학 길에 올랐다.
 
■ 토론토 RCM으로 유학

토론토로 유학을 온 그는 북미지역의 대표적인 음악학교인 RCM(Royal Conservatory of Music)에 등록했다. 우수한 교수진들 아래서 비로소 체계적인 연주와 이론 공부에 매달려 내재하던 음악적인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다.
그를 진정한 연주가로 거듭나게 했던 RCM은 1886년 토론토에 설립된 캐나다 최대의 음악 교육 전문기관. 독창적이고 뛰어난 음악 교육 시스템으로 캐나다뿐 아니라 북미 음악 교육의 모델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특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와 오페라 가수 테레시 스트래타스(Teresea Stratas)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가 다닐 때만해도 전문 클래식 기타를 배우는 한국인은 없었어요. 이미 저도 클래식 기타 연주경력이 10년을 훨씬 넘었을 때였지만, 정말 과정을 따라가기도 벅찰 만큼 엄청난 연습과 공부를 시켰었죠.”
RCM에서 음악공부를 끝으로 배움은 끝이 날 줄 알았던 그의 생각은 엉뚱하게 미국으로까지 유학을 가야 할 형편에 놓이게 된다. 10여 년 이상 억눌려 있던 그의 음악적인 욕구가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습으로 표출되면서 무리를 가져왔고, 기타리스트에게 생명 같은 오른손의 신경이 마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에는 이렇게 기타와 악기를 연주하다가 손과 팔에 생기는 신경과 근육을 치료하는 전문병원이 있죠. 치료 차 미국을 가게 되어 본의 아니게 다시 기타 공부를 할 기회가 또 있었죠. 다행히 치료가 잘 되어서 덕분에 공부도 마치고 다시 밴쿠버로 돌아왔습니다.”

■ 작은 오케스트라에 비유한 기타 

음악의 천재 루드비히 반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은 기타를 ‘작은 오케스트라’에 비유했다. 그만큼 폭넓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실제 기타리스트 장대건의 2003년 국내 연주는 히나스테라(Alberto Ginastera) 소나타에서 격렬함과 파워, 페르나도 소르(Fernando Sor)의 장송 행진곡에서 처절한 아름다움, 소프라노 누리아 리알(Nuria Rial)과의 협연에서는 세련된 반주와 호흡으로 그 말을 증명해 내기도 했다. 특히 클래식 기타는 음이 맑고 투명해 그 매력이 통기타(Acoustic Steel Guitar)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전율이 느껴진다.
“아쉽게도 공부 끝나고 캐나다와 미국에서 살면서 2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독주회를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내년 봄쯤 제자들과 함께 밴쿠버에서 우리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클래식 기타 연주회를 할 계획입니다.”
그는 클래식 기타에 문외한인 기자를 위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한 손으로 연주하는 것과 두 손으로 연주를 하는 차이’라는 표현으로 클래식과 통기타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의 말은 어떤 장르가 ‘좋다, 나쁘다’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솔로 연주에서는 코드로 연주하는 통기타보다 음표를 하나하나 짚어 연주하는 클래식 기타가 음악적 표현에 있어서 그 폭이 더 ‘넓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클래식 기타 연주에 골몰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고요함에 묻히게 된다는 그는, 요즘 코퀴틀람센터에 ‘줄리아니 기타학원’을 열어 전공을 위한 학생들 지도와 후진양성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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