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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열등감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12-03 00:00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언어 습득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는 모국어 말고도 몇 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 7세 이전의 아이들은 발음과 언어인식구조에서 모국어를 배우듯 자연스럽게 언어와 문법 구조를 습득하여 사고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언어습득 능력은 13세 정도, 즉 사춘기쯤부터 퇴화하기 때문에 이 때부터는 어린아이들과는 다른 경로의 두뇌활동 과정, 즉 학습과정을 통해 언어를 습득하게 됩니다.

더구나 사춘기쯤 되면 해부학적 특성, 즉 구강의 골격과 근육, 그리고 발음 습관이 이미 모국어에 맞게 형성됐기 때문에, 원어민과 같은 수준의 구사 능력을 갖기 어렵고, 어딘가에 모국어 발음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언어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론적으로는 사춘기 이후에 배운 영어로는 언어 구사력에서 원어민과 같기 어렵다는 뜻이 됩니다.

중·고등학교 다니는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나, 나이 들어서 영어배우는 입장에서야 청천벽력 같은 이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휘습득 능력은 나이가 들어도 쇠퇴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격려가 됩니다.

캐나다행 비행기 탈 때만 해도, 와서 6개월만 지나면 영어가 꽤 유창해지고, 한 일년 지나면 ‘말 걱정’ 없이 살 줄 알았습니다. 대학 때 미국에 몇 달 어학연수 갔다 온 친구들 보면 일단 영어가 유창해 보일 뿐만 아니라 무척 자신있어 보였었거든요. 두 세달 연수만 갔다 와도 그 정도일지니 와서 살면 일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이게 살아도 살아도 아니더라구요. 오히려 영어도 못하고 점점 한국말도 잊는 것 같아 조급해지기만 하고.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현지인들이 못 알아 듣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발음기호 보고 배운 대로 정확히 말했는데 말입니다. 한 번은 친구가 구입한 물건을 보고 똑같은 걸 사러 갔습니다. 가보니 같은 건 안보이고 비슷한데 조금 비싼 것만 남아 있길래 주변에 있던 점원에게 물었습니다. 한 번 말했는데 못 알아 들으니 즉시 ‘내가 단어를 잘못 썼나?’ 하고, 단어를 바꿔 다시 말했는데 또 못 알아 듣고는 되묻기에 “됐다”고 하며 그냥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참 이상합니다. 한 번 말해서 못 알아들으면 두 번 째는 더 크게 분명히 또박또박 말해 줘야 할 텐데 오히려 소리가 더 기어들어가며 흐릿해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십중팔구는 더 못 알아듣고, 세 번째 다시 말해 달라고 할 땐 “이젠 됐다”고 그냥 포기하고 마는 게 보통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건 언제나 ‘내가 문제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외국인이 현지어가 유창하지 않는 건 당연한 건데도 불구하고 영어를 잘 못한다는 데 수치심을 갖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입장을 바꿔 외국인이 한국말로 길을 물어본다고 가정하면, 정확히 가르쳐주려고 확인하는 차원에서 다시 한번 물어볼 수도 있고, 그들의 한국어 발음에 익숙하지 않아서 한번에 못 알아 듣고 다시 물어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같은 맥락에서 보면 캐내디언들도 한국인들의 영어 발음에 익숙하지 못해 못 알아들었을 법한데, 일단은 내 영어가 부족한 걸 수치스러워하고 한탄하기 쉽습니다.

중국인들은 영어를 금방 배우는 것 같습니다. 흔히 중국어는 높낮이가 있어서(사성이라고 함) 영어 배우기도 쉽고 현지인들이 잘 알아듣는 것 같다고들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오해입니다. 중국인들은 사성체계 때문에 엑센트가 엉뚱한 곳에 들어가 영어하기가 더 힘들다고들 하고, 현지인들은 같은 이유로 알아듣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식 영어가 잘 통하는 이유는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의 이민 역사가 길고 인구가 많아, 자연스럽게 사회 전반에서 중국인들과 만나며 중국식 영어 발음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홍콩계 이민자들이 분명 우리가 듣기엔 “당땅”이라고 해도 다 “다운타운”이라고 알아듣지 않습니까?

이민 온 지 육 개월 쯤 됐을 때 아들아이가 다쳐 버나비 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뼈 사진 찍고 진찰하고 한참 기다리니 중국계 당직의사가 와서 엑스레이 사진을 건네 주며 말하길, 여긴 “봉닥터”가 없으니 밴쿠버에 있는 어린이 종합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수술해야 한다고 합니다. 봉닥터가 누구냐 하면서도 어쨌든 일단 급히 아이를 옮겼습니다. 병원에 가서 닥터 봉을 찾았는데, 알고보니 Bone doctor(정형외과 의사를 칭함) 라는 걸 알고 실소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각계각층에서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데 대해 일종의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제가 UBC 대학원 들어갔을 때 한국학생이 처음이라는 교수나 대학원생들이 많았습니다. 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 한국학생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한국인 친구나 지인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한국식 액센트가 들어간 영어가 생소했고, 그래서 말하면 못 알아듣고는 되묻기가 일쑤였습니다.

그 때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큰소리로 다시 말해주되 되도록이면 단어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다시 말했습니다. 단어를 바꾸면 또 묻기 때문에. 학기가 지날수록 점점 대화와 토론에서 되묻는 일이 줄어들었던 건 영어가 늘기도 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교수나 학생들이 한국식 발음에 익숙해져 갔기 때문입니다. 

커서 온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해도 발음 때문에 열등감을 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발음이 완벽하지 않아서, 한국식 발음 때문에 상대가 잘 못 알아 들으면 ‘내 발음이 이상한가 보구나…’ 순간 확 드는 부끄러움,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어가 발음이 전부일까요? UBC에는 비영어권 출신 교수들이 많아, 첫 수업 시간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교수들도 참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두 세 시간 수업하면서 ‘저 교수님은 이런 식으로 발음하는구나’ 터득하며 적응이 됩니다.

스테판 디옹 이나 쟝 크레첸은 캐나다의 수상이었음에도 영어 발음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불어권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출신지를 대표하고 동시에 캐나다를 대표했습니다.

지난 10월 14일에 있었던 연방 선거 개표 직후 CTV기자들이 찾아간 연방의회 당선자들 중에는 비록 유창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모국어 발음을 감출 수 없는 수많은 이민자 출신의 의원들이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인터뷰에 임해 자신의 정견을 펼쳐나감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식 발음을 한다고 해서 부끄러울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발음이라기보다는 자신감입니다. 필요할 때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여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못 알아들어 다시 물을 때마다 주눅들지 말고, 더 크게, 분명하게, 당당하게 말하다 보면 한국식 영어에 익숙해져 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테고, 십 년 이십 년 후에는 대부분의 현지인들이 한국인들의 영어를 한번에 알아듣는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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