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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3-17 00:00

바람의 땅 그리고 9일간의 트레킹

▲ 파이네 산군의 주봉 쿰부레 프린시펄에서 빙하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트레킹 6일

밤새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날아가지 않은 텐트가 고맙기만 하다. 옆 자리 친구는 텐트 옆의 커다란 나무가 바람에 쓰러질까 밤새 불안했다면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오늘 목적지는 캠프 그레이까지 10km. 2000m를 솟아오른 산봉우리에서 가파른 산비탈이 그레이 호수로 급하게 경사져 있고, 그 중간에 벼랑길이 오르락 내리락 남쪽으로 뻗어나갔다. 빙하와 호수를 오른편에 두고 걷는 경치는 아름다웠지만, 이제 피로가 누적되어 다리가 천근 같다.
바람은 여기까지 따라와 우리를 괴롭혔다. 좁은 벼랑길을 걷다가 돌풍이 몰아치면 몸이 기우뚱- 바위를 붙들고 주저 앉아야 했다. 이렇게 산이 거친 호흡을 토해낼 때마다 우리는 긴장했지만, 산에 바람이 없다면 그것은 숨쉬지 않는 죽은 산일 것이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 칠레의 사진작가 어거스토가 벼랑 위에서 중형 카메라로 빙하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 산티아고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거스토는 42세. 주로 칠레의 풍경을 촬영해 사진책과 캘린더 등을 출판하는 잘나가는 현역 작가다. 그는 이 파이네 서킷을 무거운 카메라 장비까지 둘러메고 여러 차례 돌았다고 한다.
후에 우리는 산티아고의 한 해산물 식당에서 만나 그의 사인이 들어있는 사진 책과 캘린더를 선물받았고, 나는 집에 돌아와 캐나다와 록키의 자연을 담은 사진책 몇 권을 소포로 보내주었다.
오후 넉넉한 시간에 캠프 그레이에 도착했다. 빙하가 끝나는 호숫가의 아늑한 곳이다.
이곳은 트레킹 출발점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깔끔한 산장에 작은 식당까지 갖추고 있지만, 우리에겐 무엇보다도 뜨거운 물이 보장되는 샤워장이 반가웠다.
땀에 찌들은 트레커들은 두 대의 샤워기 앞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지금까지는 물티슈로 대충 땀을 닦아내다가 나흘 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밀렸던 빨래도 해치웠다. 볕이 좋아 바로 마르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식사는 산장에 있는 식당에서 호사를 부리기로 했다. 빵과 살사(토마토와 양파 등으로 만든 멕시코식 밑반찬), 돼지고기, 주스….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군대에서 휴가 나와 사제 밥을 먹을 때처럼 우리는 그야말로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리필해주는 살사는 웨이츄레스의 눈치를 보면서 다섯 종지나 시켜 먹었다.
이제 트레킹도 끝 무렵인데다가 오랜만에 샤워도 하고 캠프장 분위기도 좋으니 모두들 기분이 유쾌해졌다. 제각각 떠나온 젊은이들이지만 호숫가 공터에서 한데 어울려 평화스러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년 팀, 그러니까 우리 부부와 네덜란드에서 온 40대 커플, 벨지움에서 온 30대 부부는 와인을 마시면서 트레킹이 무사히 끝나가는 것을 자축했다. 만난 지가 1년 정도라는 네덜란드 커플은 여자가 잡지 기고가인데 자영업을 하는 남자와 코드가 안 맞는 것 같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이 트레킹이 끝나면 필시 이들 관계도 끝날 것만 같다.
고정 낙오병인 수의과 여학생 ‘스토브’양이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을 얹어 위스키 한 잔을 아내에게 가지고 왔다.
밤이 깊어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사진작가 어거스토의 조카 가족 대여섯 명이 작별 기념사진을 찍자며 텐트 안에 있는 우리를 불러냈다. 이들은 이 캠프장이 마음에 들어 하루를 더 묵고 간다고 했다.

트레킹 7일

콜린은 호주 청년이다. 1년여를 여행하다 산티아고에서 사귄 여친(젊은 독자들을 위한 용어선택)과 함께 트레킹 중이다. 사흘째 날 콜린의 발바닥에 잡힌 물집에 실을 꿰어 응급 처치해 주었더니 그 뒤로 우리를 잘 따랐다.  
그런데 이 콜린은 식사 때만 되면 우리 텐트 주변에서 얼쩡대다가 내 밥그릇을 축낸 녀석이다.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내 아내는 배고픈 사람을 식별해내는 신통력이 있는 여자다. 간혹 그 신통력의 오작동으로 배부른 사람까지 불러다 먹이는 바람에 ‘부른 배 또 불러지는’ 대략 난감한 사태도 발생하곤 하지만, 이 콜린에게는 한번도 예상이 빗나간 적이 없었다.
오늘도 우리는 남보다 이른 아침식사를 하려는데, 여친보다 먼저 기상한 콜린이 텐트 밖에서 추레한 꼴로 서성대기 시작했고, 보다 못한 아내는 이제 막 스푼을 대려는 내 밥그릇을 빼앗아 그에게 내밀었던 것이다. 그러자 녀석은 나의 안색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양, 후딱 먹어 치워 버렸다. 그래서 우리의 식사량은 반으로 줄어 들었다.
그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해서 어제 밤 진학상담에 인생상담까지 해주었다. 아마 지금쯤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학업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콜린이 희망하는 대로 사학과에 진학해 여행 중에 얻은 세계관이 그의 학업에 거름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길은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착해지기 시작했다. 골짜기를 지날 때 커다란 콘도르 두 마리가 바람을 타고 글라이더처럼 머리 위에서 선회했다.
점심을 먹고 따사한 햇살을 받으니 식곤증이 몰려 왔다. 걷다가 넙적한 바위를 만나 그 위에서 한바탕 씨에스타(낮잠)를 즐겼다.
오후 4시 40분, 캠프 그레이를 떠난 지 6시간 반 만에 에메랄드 빛 호숫가에 붙어있는 캠프 페호에에 도착했다.
이곳은 닷새짜리 W코스의 종착점인 동시에 시작점이기도 해서, 빙하나 설산을 보기 위해 당일치기 관광을 나선 노인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부속 시설도 편리하게 갖추고 있다. 번듯한 2층짜리 산장에 카페테리아 식당과 더운 물이 나오는 샤워장도 남녀 각각 3개씩이나 되었다. 
산정이 마주 보이는 곳에 텐트를 쳤다. 우리는 이곳에서 2박을 한 다음, 배를 타고 호수를 빠져나갈 예정이다.
저녁을 먹고 텐트 앞에 앉아 불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데, 산티아고 대학생 그룹 10여 명이 기타를 들고 우리를 찾아 왔다. 여러 날을 함께 걸은 낯익은 얼굴들이다. 그들은 “당신의 부인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싶다”며 정중하게 묻고는, 기타반주에 화음을 넣어가면서 유쾌하고 감미로운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그 청춘은 예의 발랐으며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젊은 꽃미남들의 아름다운 화음에 포박된 아내는 이 석양이 너무나 황홀하다.
장군이 오면 멍군이 가는 법. 우리는 매점에서 1리터들이 와인 세 통과 커다란 살라미 소시지를 사서 이들에게 즉석 와인파티를 열어 주었다. 뜻밖에 와인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 흥취는 한층 더 고조되었다.
흥이 무르익자 학생들은 칠레 민속춤도 보여주었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꼬레아를 환호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50대 꼬레아노와 20대 칠레노의 양국 친선 즉석 야외공연의 밤이 깊어갔다. 

트레킹 8일

오늘은 프란세스 계곡까지 왕복 20km를 걷는다. 살림살이는 텐트에 남겨놓고 간단한 배낭만 챙겨 캠프 페호에를 나섰다. 오전 내내 하늘이 꾸물대더니 결국은 비가 오락가락했다.
무료 캠프장 이딸리아노까지는 거의 평지 길이고 이곳에서 왼편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르막이다. 계곡에 들어서자 파이네 산군의 주봉 쿰부레 프린시펄(3050m)에서 빙하가 천둥소리를 내며 쉴새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계곡을 따라 두 시간쯤 올라 거대한 암벽으로 둘러싸인 분지에서 땀을 식히고 있을 때, 우리의 시야를 가로 막으며 한 무리의 단체 관광객들이 도착했다. 그러자 이들의 가이드가 배낭에서 일행들의 점심 도시락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산에 머물렀던 아내와 나의 시선은 어느새 산에서 그 도시락으로 옮겨갔다. 신선한 상추와 토마토가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가 나오고 잼과 피넛버터, 보온병에서 커피까지 등장했다. 눈앞에서 뜻밖의 성찬이 펼쳐지자, 그 동안 고작 토마토 소스에 비빈 마카로니 따위로 연명해 온 우리에게 이제 산은 더 이상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아~ ! 우리는 그들의 입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화려한 먹거리를 지켜보며 신음했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 남아있는 에너지 바를 만지작거렸다.
돌아오는 길에 W코스를 트레킹 중인 한국 여자를 만났다.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으로 몇 년 동안 해오던 학원강사직을 내던지고 그 동안 모아둔 돈으로 1년을 배낭여행 중에 있다. 우리는 산에서 돌아와 캠프장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고 산장 카페테리아로 저녁식사 초대를 했다.

트레킹 9일

이제 걷는 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일정에 하루 정도가 남아 다른 코스로 더 걸을까 계획했다가, 욕심을 버리고 이쯤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침 10시 30분 페호에 캠프 선착장에서 보트를 탔다. 우리처럼 파이네 서킷 트레킹을 끝냈거나, W코스를 마친 트레커, 또는 당일치기 관광으로 온 여행자들 30여명이 보트에 올랐다.
보트가 에메랄드 빛 호수를 가르며 뭍에서 멀어지자 또레스 델 파이네 산군의 전체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산세의 선명한 윤곽처럼 지난 8일간의 여정도 머릿속에 또렷이 기억되어 왔다. 그것은 육체의 고통이자 성취에 대한 정신적 포만감이었다.
남자에게는 체력이 있고 또 과거 군에서 훈련 경험도 있으니 이와 같은 트레킹이 큰 어려움은 아니겠지만, 여자에게는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나는 몸통만한 배낭을 지고 고행을 자청하고 완주한 아내가 대견했다.
아닌 게 아니라 겹치는 피로 때문에 아내의 아랫입술의 반이 물집으로 초토화되었다. 달리 위로해줄 말을 찾지 못한 나는 그것을 파이네 훈장이라고 불렀다.
산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 산에서 갑판 위로 순한 바람이 불어와 아내의 파이네 훈장을 흔들고 지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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