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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어려울 수 있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8-16 00:00

12학년 ESL 정시 졸업률 47%… 기다려주는 부모의 이해 필요

◇ 코퀴틀람 센테니얼 세컨더리의 2006-2007학년도 졸업식 광경.

지금 12학년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크게 3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세컨더리 학교를 졸업하고 9월 대학 입학을 기다리는 학생, 졸업 요건 충족을 위해 여름 내내 공부하는 학생, 졸업을 못한 채 방황하는 학생이 바로 이들이다. 사회의 시선은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이들에게 쏠려 있지만, 고등학교를 제때 졸업 못해 힘들어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도 매우 필요한 시기이다.

세컨더리 졸업, 쉽지만은 않다

캐나다의 고등학교 시스템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공부를 소홀히 했으면 고등학교 졸업도 못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캐나다에서는 한국과 달리, 모든 12학년 학생들이 점수와 상관없이 일정 기간 동안 학교만 다니면 졸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출석만 하면 성적이 나쁘더라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모두 받게 된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세컨더리 졸업 요건을 충족시켜야만 대학에 지원할 자격이 주어지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각 과목의 점수와 학점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BC주에서는 최소 80학점을 따야만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그 중 필수과목은 48학점, 선택과목은 28학점이며 4학점은 포트폴리오로 구성된다. 필수과목들은 언어 10, 11, 12(각 4학점) 수학 10, 11, 12(각 4학점), 과학 10, 11, 12(각 4학점), 사회 11(4학점), 기술 또는 미술 11(각 2학점)과 체육 11(2학점), 플래닝 10(4학점)이다.
이 학점들을 다 이수하기 위해서는 9, 10학년 때 8과목, 11, 12학년 때는 7과목씩 수강해야만 하며, 대학에 진학하려면 프로빈셜 시험도 봐야 한다. 특히 세컨더리 재학 시절에 이민 또는 유학을 온 학생들은 영어가 서툴러 ESL 프로그램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중에는 정해진 시간에 학점을 다 채우지 못해 졸업을 못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ESL 정시 졸업률 47%에 불과

사실 캐나다 고등학교 졸업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 아니다. BC교육부가 발표한 BC주 12학년 졸업률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9월 12학년이 된 학생이 다음해 정시 졸업을 한 비율은 공립학교가 평균 76%, 사립이 89%를 기록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공부해 온 공립학교 12학년 학생 100명 중 24명은 그 다음해 6월 졸업장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속해있는 세컨더리 ESL 프로그램의 경우 학생들의 정시 졸업비율이 47%에 불과해 원주민 학생들의 52%보다 더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ESL 과정에 속한 12학년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은 그 다음해 졸업장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ESL 학생들의 정시 졸업률은 54%를 기록했던 2002-2003학년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으며, 졸업을 못한 이들은 대부분 저녁반이나 커뮤니티 칼리지 등에서 추가로 학점을 취득해 1~2년 후 졸업하고 있다.

제대로 졸업하는 것이 중요

코퀴틀람의 한 세컨더리 학교에 재학중인 이모 학생의 경우, 5년 전 이민을 와서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버니비와 코퀴틀람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10학년 때 ESL을 마쳤지만, 12학년이 끝날 때까지 ‘영어 12’를 끝내지 못했으며, 앞으로 6개월 동안 저녁반(Night school)을 통해 ‘영어 12’의 학점을 취득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내년 봄 학기의 대학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 이군은 “부모님이 졸업에 대한 스트레스나 압박감을 주지 않아 감사하다”며 대충 졸업하기보다는 학점을 잘 받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써리의 한 세컨더리 학교에 다니는 한모 학생은 초등학교 2학년에 이민 온 한인 1.5세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그는 10학년 때까지 평균 A의 좋은 성적을 유지했지만, 10학년 때 부모가 한국에 6개월간 방문한 이후로 성적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때 소위 노는 친구들과 어울려 수업도 빼먹고, 자꾸 낙제를 해 결국엔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했다. 한군은 부모님께 무척 죄송해 내년에는 꼭 대학을 들어가 공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벅찬 스케줄, 기다려 줍시다

10학년 때 코퀴틀람의 한 세컨더리 학교로 전학 온 정모양은 이번 9월부터 다시 세컨더리 과정을 1년 더 다닌 후 졸업할 예정이다. 필수 과목과 선택 과목들을 스케줄에 넣을 수는 있었지만, 다른 이들이 4년 안에 이수하는 학점들을 3년에 한다는 것은 너무나 벅찬 목표였다. 한 학기당 4개의 과목 중 2개는 공부분량이 많은 필수 과목이고 2개는 조금 수월한 선택 과목으로 스케줄을 짰지만, 그녀의 시간표에는 한 학기당 필수과목이 3과목이나 들어가야 했다.
정양은 “시험과 숙제도 많았지만, 우선 영어가 힘들어서 공부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과외와 학원의 도움을 받았지만 성적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고, 뒤늦게 유학 온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순조롭게 공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변 학생들을 부러워하던 정양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우울증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 정양은 결국 4과목 중 2과목을 시간표에서 빼고, 6개월을 쉬다가 다른 사립학교에서 1년을 더 다니게 됐다.

가짜 대학생 종종 있어

세컨더리 졸업이 어려워지면서 고교졸업을 제때 하지 못한 것을 부모에게 차마 말하지 못해 가짜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가끔 있다.
버나비에 거주하는 한인 유학생 박모군은 고등학교 졸업 학점을 제때 이수하지 못해 대학이나 칼리지에 지원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부모에게는 이 사실을 숨겼고, 결국 9월에 대학에 들어간다고 거짓말까지 했다고 한다. 대학에 합격했다고 차까지 사준 부모는 아들의 졸업사진을 보며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진학을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박군은 한국에 가면 군대 문제로 출국하지 못할까 봐 고국 방문도 못하고 있다.
박군은 앞으로 고교학점 이수 프로그램을 빨리 마친 후 칼리지에 진학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현재 비슷한 또래와 어울리며 방탕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군과 같이 고등학교 졸업을 제때 못하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어도 거짓말을 하며 캐나다 학제에 어두운 부모를 속이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한다. 이들 중 남학생들은 대부분 군대 문제로 발목이 잡히고, 여학생의 경우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야 거짓말이 들통나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자녀를 남과 비교하지 말자

한국 부모들은 전적으로 생각이 바뀌기 힘들겠지만, 졸업장을 못 받는 학생은 사회의 낙오자라는 편견은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늦은 졸업은 어떤 학생들에겐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이다. 개인마다 상황이 다른 것인데, 대학에 진학한 다른 집의 학생들과 자신의 자녀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이들에게 좌절감만 안겨 줄 수 있다.
졸업을 제때 못한 학생들은 이미 충분히 속상해 했거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처받은 영혼이다. 사실 캐나다의 세컨더리 학교는 제때 졸업이 힘들어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최종 졸업장을 받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자녀의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1보 후퇴는 2보 전진을 위한 사전준비라고 생각해주는 이해심도 필요할 것이다.

김정기 기자 eddie@vanchosun.com
장수현 인턴기자(UBC 1년) hyun_e3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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