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세계에서, 특히 발달적 어려움이 있는 아동을 돌보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 소통은 단순히 말을 하는 것 그 이상입니다. 소통은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이해의 다리를 놓는 과정입니다. 말만 들어도 엄청난 긍정의 힘과 인내가 필요함이 느껴지는 만큼, 우리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무심코 지시하는 소통 방식을 쓰는 경우가 잦습니다.
명령으로 가득 찬 하루를 상상해 보세요. "이거 해," “저거 하지 마”와 같은 지시들은 자율성이나 자기표현에 대한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선택권을 갈망합니다. 발달적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은 어떨까요? 미국의 조사 기관에 따르면 발달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은 적게는 수천 번에서 많게는 수만 번의 직접적인 지시, 즉 명령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한 번에 지시를 따르지 못했을 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른들의 지시가 반복되는 경우, 문제 행동에 대한 제지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경우 등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전통적인 ABA 방식으로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세션을 하는 경우는 그 숫자가 더 높아진다고 하니…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드시나요? 내 삶에 대한 통제력/선택권이 전혀 없던 압도적인 세상에서, 주변 사람들이 간접적인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의사 결정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미 명령조에 익숙해진 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 시작은 “제안하기”부터 입니다. 임상에서 저는 이 방법을 ‘아이들이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되, 사실은 우리가 하게끔 하고 싶은 걸 스스로 하게 만드는 속임수’라고 가르칩니다. "빨리 와서 신발 신어!”와 "공원에 가려고 하는데 운동화 신을래, 부츠 신을래?”라고 말할 때, 우리는 단어와 어조를 조금 바꿨을 뿐이지만 아이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차이를 느낄 것입니다. 아이가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상황이 아닌, 자신의 선택권을 존중받는 상황에서 어른의 명령 없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지시하는 대신 제안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발달적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구조화된 환경을 제안하는 동시에 독립성/선택권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합니다. 실제로 발달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은 직접 말해주는 것보다 자신이 생각해서 떠올려야 하는 간접적인 질문이나 이야기에 더 잘 반응하곤 합니다. 이러한 소통 방식은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긍정적인 행동을 습득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간접적인 언어는 존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아이의 장애 정도에 상관없이 간접적인 언어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아이 스스로를 선호, 감정,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개인으로 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이러한 존중은 돌보는 사람과 아이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이는 더 의미 있는 상호작용과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어조와 몸짓 또한 소통의 중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이는 간접적인 소통 방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감정을 못 느끼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조나 몸짓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정도의 차이가 조금씩 다를 뿐 아이들도 느끼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저 지시만 내리는 사람이 아닌, 아이와의 교류에 마음이 열린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 주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직접적인 언어 구사에서 갑자기 간접적인 언어 구사방식으로 전환하는 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직접적인 소통 방식은 보통 편하면서도 즉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손쉬운’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 방식의 전환은 많은 연습뿐만 아니라 마음가짐의 전환도 필요합니다. 오랜 습관을 깨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받아들이는 게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은 무엇보다 값질 것입니다. 이해받고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는 성장할 가능성이 훨씬 열린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간접적인 소통 방식을 일상 속에서 활용함으로써 우리는 돌보는 자로서의 능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돌보는 아이 개개인 자체를 존중(honor)해줄 수 있습니다. 위에서 짓누르는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시간과 인내가 조금 더 필요하더라도 아이들이 보다 밝고 자율적인 미래를 실현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홍유화(Roslie Hong) 행동 컨설턴트 roslie@withyouab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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