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현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벌써 14년 전이다. 한 방송사가 47주년 특별 기획이라며 보여주던 다큐멘터리는 참 충격적이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렸다가 보게 된 프로였는데 지금도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 지구 온난화로 사냥터를 잃어가는 북극곰의 눈물, 빨리 녹아 사라져버리는 작은 유빙流氷에 갇힌 바다 코끼리, 사라지는 툰드라에서 이동하는 순록 떼의 모습은 결코 아름다운 영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기후 현상에 그 프로의 내용을 연관시켜 보니 짐짓 가슴이 서늘해진다.
2018년 여름엔 서울의 기온이 40도까지 올랐었다. 2020년 여름에는 55일 간이나 중부 지방에 장마가 계속되었다. 지난해 3월엔 경북 울진에서 열흘 간이나 산불이 지속되었다. 8월에는 강남 지역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강남 역 일대가 다 침수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환경적 시설의 배수 설계 등 잘못도 있겠지만 이렇게 많은 비나 기온 상승은 사람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연현상이 아닌가. 국내 뿐 아니라 파키스탄에선 무려 3개월이란 긴 대 홍수로 영토의 1/3 이 잠겨 1,700명이 사망하고 3 천만 명이 수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상 기후는 물 부족을 낳아 흉작을 만들어 식량 위기로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다. 기후 위기가 사회 위기, 경제 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우리 문인들이 나무 심기에 나섰었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온실가스와 숲의 파괴에 있다는 인식에서 였다. 온실가스는 지구로 들어오고 나가는 복사 에너지의 균형을 깨뜨리는데 제조, 교통, 난방 등 인간 활동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들이다. 산업혁명 전 수천 년 동안은 자연적 순환과 균형이 이뤄지던 것이 인류의 생활 환경이 과학 문명 편의주의 화 하면서 산업화의 발달은 지구의 위기를 가져온 것이다.
캐나다 남부 리턴 지방의 50도라는 100년 만의 최고 기온이나 미국 서부 데스 밸리의 56도라는 140년 만의 폭염, 동토凍土인 러시아 모스크바가 35도를 기록하는 등 기후 이상은 2021년의 지표면 온도가 16.73도로 142년 관측 이래 최고가 되게 했다.
뿐인가. 호주에선 6개월 동안이나 산불이 나서 우리나라 면적의 83%에 달하는 산림 면적이 불타버렸고, 북극 온도는 최근 10년 새에 1도 나 상승하여 바다 수온 상승으로 플랑크톤이 다 죽는가 하면 천 년을 유지해 왔던 해수면이 최근에는 45분마다 축구장 면적만큼 침수되어 2050년이면 방글라데시 국토의 17%가 침수될 것이라 한다.
이제 전 세계는 이런 기후 현상으로 심각한 가뭄과 사막화에 영구 동토凍土의 해빙으로 고대 냉동 바이러스를 부활시켜 코로나19 이상의 팬데믹이 예상된다. 이러한 기후 및 기상 이변으로 동식물이 멸종될 수 있고 사람도 거기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도 나이 든 우리야 어찌 살다 죽는다 해도 우리 후손들은 어쩌란 말인가. 지구 상에서 없어져 버린 멸종 동물이나 식물처럼 우리 후손들이 그렇게 되도록 해선 아니 되지 않겠는가.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크게는 이런 재앙이 오지 않도록 세계가 함께 위기감을 갖고 대처하는 일이 급할 것 같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재생 에너지의 사용을 늘리는 국제적 협력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사계절이 아름답던 우리나라도 봄은 2주로 줄어들었고 가을은 채 사흘도 안 된다는 데 무어라도 해봐야지 않겠는가. 모든 것이 산업화의 결과라면 최소한의 불편은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버려지는 것을 줄이려면 새것을 줄이고 재 사용을 늘리며 친환경 기업, 친환경 정책에 힘을 보태주는 것도 솔선해야 할 것 같다. 잘 먹고 잘 쓰고 더 편하게 가 가져온 오늘의 이 현상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100년 후 우리 후손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얼어서 눈으로 내려야 할 수증기가 온난화로 비가 되어 내리면 빙하는 더 빨리 녹을 수밖에 없다. 난방·온실가스·탄소 배출 증가는 우리를 죽이는 마약 같은 것이다. 오늘 내가 한 행동들 하나하나를 돌이켜본다. 하지 않아야 할 것, 고칠 것을 먼저 생각하고 나무를 심던 마음으로 지구 환경을 푸르게 만들어 우리의 미래인 후손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내 눈물 어린 줄임과 고침과 막음이 필요할 것 같다.
자꾸만 오래전에 보았던 북금 곰의 눈물이, 바다 코끼리의 슬픔이, 툰드라에서 이동하는 순록들의 모습이 눈에 어려 나도 모르게 눈물을 머금게 한다. 지구의 위기는 곧 나의 소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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