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무언으로 승화된 선율

자명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04-17 09:22

자명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예술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음악의 주된 이야기는 사랑으로 이어진 슬픔과 환희의 표현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 론에서 가장 완벽한 문학 장르는 비극이라고 단언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연민과 회한을 통해 격정을 덜어내는 진솔한 스토리야 말로 예술의 절정을 말해 준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비극은 슬픔 그 자체로 각인되어 남지만 예술이 보여주는 슬픈 장르는 가슴을 적셔주는 아픔과 눈물로 이어지다 결국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감정의 분출을 통해 슬픔보다 오히려 후련함과 비움으로 상쾌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외로움을 맑은 고독으로 승화해본 경험자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흔히 우울하거나 외로울 때 경쾌한 음악을 듣고 한바탕 춤사위를 돌고나면 기분전환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순간의 기분전환일 수 있으나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스스로 다독이며 얻는 그 안식의 휴식은 오히려 슬픔이 묻어나는 음악이 최고의 명약일 수 있다. 세상에서 쓸쓸한 음률로 정평이 나 있는 피아졸라의 망각(Oblivion)이나 비탈리의 사콘느(Chaconne)를 듣다보면 금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점점 그 심연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을 많은 이들은 느꼈을 것이다.

가난이 자연스럽고 숙명처럼 버티어 내던 내 소년기는 책과 음악이 전부였고 그 예술을 창조한 그들의 영혼은 흠모와 영원한 존경의 대상이었다. 황혼이 짙어가는 늦은 하오면 전파상에서 흘러나온 선율에 발길을 멈추던 시간들이 잦았다. 서양음악을 맨 처음 들었던 폴모리아의 이사도라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면 멘델스존의 무언가는 또 다른 감성의 파릇함 이었다. 온 세상이 막 싹을 틔우던 3월 초순의 저녁에 들었던 그 곡을 몰라 전파상으로 들어가  곡명을 알았던 것은 멘델스존의 “베네치아의 뱃노래”였다. 나는 그렇게 서양음악의 이름들은 전파상을 통해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철학가인 토마스 모어는 “가장 깊은 감정은 언제나 침묵 속에 있다”라고 말했다. 예술은 표현이 그 모태이긴 하지만 음악 속에서도 침묵으로 대변되는 “무언가” 즉, 가사가 없는 곡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멘델스존을 금방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쓴 곡에는 가사가 없기에 이 곡을 듣는 동안 자신만의 이야기로 가사를 쓸 수 있고 그 감정에 몰입해 질 수 있다. 옛 여인을 그리는 언어일 수 있고, 차마 할 수 없었던 가슴에 이야기를 이 선율에 얹어 자기의 음악으로 승화할 수 있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단악장을 대표하는 야상곡 즉흥곡들이 널리 알려져 인기를 얻었다. 그 중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멘델스존의 무언가 작품들이 서정적 낭만의 끝자락을 장식했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터. 가사 없는 곡이기에 이 음악의 뚜렷함은 멜로디라 할 수 있고 그 선율을 따라 듣는 이가 곧 주인공이 된다는 점이다. 간결하게 흐르는 연주 속에 느끼는 이에 따라 오만 감정이 이입되고 그 은율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무언가의 선율로 고백하는 카타르시스가 되고 만다.

멘델스존은 약관의 21살에 첫 ‘무언가’를 쓰기 시작해 15년 간 총 49곡을 썼다. 한 곡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곡을 제외한 모든 곡들은 피아노곡으로 쓰여 졌다는 점도 남다르다, 그는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색채감과 간결함속에 숨겨진 깊은 심연을 우아한 낭만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브람스의 곡과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손꼽힌다. 그의 유명한 작품은 바흐의 고전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바흐를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계기도 멘델스존이 적극적으로 바흐를 소개하고 넉넉한 재정을 바탕으로 바흐를 지원하고 홍보하므로 더 유명해진 것이다.

가장 슬픔음악을 얘기할 때 샤콘느(Chaconne)를 먼저 떠 올리게 되는데, 이 곡은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서 유행한 춤곡에서 유래하여 이태리와 독일에서 기악 형식으로 발전한 바로크 시대의 3박자 계열 음악 양식이다. 비탈리의 샤콘느 8단조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과 함께 이 음악 양식을 대표하는 곡으로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 바흐의 샤콘느는 슬픔을 절제된 표현으로 승화하여 “영원으로의 끝없는 비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비탈리의 샤콘느는 슬픔의 감정을 극적이고 애절하게 표현하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불린 것으로 알려진 계가가 슬픔을 대변하는 곡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그러함에도 알 수 없는 고독과 슬픔이 내제된 감정으로 인입된 처음 곡에 익숙해진 탓일지 모르지만 멘델스존의 무언가를 들을 때면 격정에 스며드는 무언가의 선율에 늘 몽환적 가슴앓이를 하고 만다. 예술은 표현이자 언어로 귀결되는 행위이다. 하지만 침묵을 통한 감정의 전달은 영혼의 교감이 있었을 때만 가능하다. 참신한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승화한 멘델스존의 “무언가”의 곡들은 음악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시적 사상의 주관을 통해 스스로 서정적 감성의 해답을 찾게 해주는 예술의 경지라 할 수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나이 80 깔딱고개 2023.05.24 (수)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파 바로 서서 걷기조차 힘들고 차도 겨우 올라 타고 내리고 하니 그 아프고, 불편함이 충치 앓는 것 보다 더 심한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동네 카이로프랙터에 가서 치료를 받기로 하고 벌써 2차례나 카이로프랙터의 손 아래에서 뼈 마디가 부서지는 듯한 우드득 우드득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앞으로도 몇 차례나 더 가야 할지를 모르겠다. 일이라곤 집사람 장 보러 가면 그 때 산 물건이나 들고 왔지 뭐 특별히 중 노동을 했다는...
정관일
너는 늘 그 자리에 우뚝 솟아색색 꽃으로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사라졌다 일어나는 꽃봉오리가아득한 옛 시악시로 오만하기까지 하다.거기 그대로 뿌리 박고누구보다도 앞서 일어날 채비로숨 가쁜 너의 요염함에오슬 오슬 가슴이 떨린다바람이 후루루루하얀 꽃 눈으로 오솔길 발자국 덮어두고지나던 연인의 두 눈동자 뜨겁고 애처롭다4월은 서서히 지나가는데저 산봉우리에 걸린 노을 홍조를 띠고시간이 아쉬운 연인들안타까운 젊음을...
강애나
꽃바람 깃들어 2023.05.15 (월)
오월은그 무엇이라도벚꽃 같은 바람 깃드는 시절 날 찾아온 꽃바람부끄러이 꿀꺽 삼키면민들레처럼 번져오는 다정한 얼굴들 꽃이 핀다사람이 핀다내 그리운 어머니목단꽃으로 살아나고기억의 꽃송이 물오르고다섯 살 손녀는 즐거운 참새아련히 밀려오는 푸른 꽃향기에할미꽃도 살짝궁 고개를 든다 애잔하구나안아볼 수 없는 것들이여사랑스러워라오월의 사람이여 꽃바람 깃들면 하늘 저편도하늘 이편도모두가푸른 꽃송이다.
임현숙
갑자기 떠난 여행 2023.05.15 (월)
  “엄마 우리 떠나요.” 저녁 늦게 퇴근한 딸아이가 현관문을 들어서며 외친다. 오늘 회사를 퇴직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어디로, 예약해야지?” 두서없는 물음표가 튀어나오며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 떠나자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출렁거린다. 아직 방학을 안 했고 평일이니 캠프장에는 자리가 있다고 한다. 남편과 아들은 서로 눈을 맞추더니 지하실로 내려간다. 한 번도 쓰임을 받지 못하고 고스란히 먼지를 쓴 채 박혀 있던 텐트를 찾기...
민정희
5월이 오면 2023.05.15 (월)
  해마다 봄이 오면 친정 집 뒤뜰에 붓 끝 모양의 푸른 잎이 무더기 무더기 돋는다. 아버지는 생전에 이 꽃을 유난히 사랑하고 상사화(想思花)란 세칭을 피하여 당신만은 모사화(母思花)라 이르셨다.  해토(解土)가 되기 무섭게 지표를 뚫고 용감한 기세로 돋아나는 모사화 잎은 오직 잎만 피우기 위한 듯 무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어느 날 무더위가 시작 될 즈음 초록빛 융성한 잎은 모두 죽어 거름이 되고 거기 죽음 같은 꽃 잎을 물고 연보라 빛이...
반숙자
오월 2023.05.15 (월)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뒤를 돌아보니 아카시아 꽃잎이하얀 이빨을 내 보이며 히히 웃고 있다아카시아 나무가 줄지어 선과수원 길 샛길에서우리들의 개 똥 철학은꽃잎이 질 때까지 끝나지 않았지소식 몰랐을 땐막연한 그리움이 마음 한 켠에차지하고 있었는데이제 그 자리마저 내놓아야 하다니훅 밀고 들어오는 옛 생각에다시 과수원 길을 뒤돌아보지만너는 여전히 따라오지 않는다친구야그곳에도 오월은 오니
김희숙
불청객 2023.05.08 (월)
  그날 아침, 나 여사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문득 시계를 보니, 아뿔싸, 새벽 5시였다. 약속시간에 맞추려면 30분 전에 깼어야 했다. 나 여사는 불에 덴 듯 벌떡 일어나서, 어젯밤 챙겨두었던 등산복으로 환복을 했다. 발라클라바 덕분에 엉망으로 눌린 머리와 쌩얼을 가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현관으로 향하는데, 거실에서 드르렁, 컥, 퓨! 하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왔다. 남편은...
곽선영
특별한 봄 2023.05.08 (월)
  해마다 봄은 온다. 들판을 수놓는 갖가지 꽃들과 포근히 내리는 봄비도 변함이 없다. 나이 들어 몸에 적신호가 오고부터 봄이 특별해지고 감사하다.젊을 땐 신경 쓰지 않았던 건강을 지금은 영양제를 챙겨 먹고, 하루 칠천 보 이상 걷는 걸 자구책으로 삼는다. 해빙기로 땅이 질퍽해도 불평하지 않고 피어날 꽃망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자연에 밀착한다. 너그러워지고, 느긋해져야 한다며 십계명을 외우듯 독백한다.갈수록 장수하는 노인들이...
이명희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