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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의 정치화··· 고인과 유족을 두 번 죽이는 일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11-05 15:20

“2022년 2월, 여의도 이룸센터 앞, ‘빈곤을 철폐하자’는 목소리와 함께 송파 세 모녀 8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추모제를 열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빈곤층을 방관하는 사회에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분들이 ‘송파 세 모녀’를 기억할 것이다. 2014년 2월 26일, 서울 송파구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동반 자살한 사건 말이다. 몸이 아팠던 큰딸과 병원비를 대느라 신용불량자가 된 둘째 딸이 돈을 벌지 못했기에, 그들은 어머니가 식당에 나가 벌어오는 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출근길 빙판에 넘어져 출근을 못 하게 되자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번개탄을 피웠다. 70만원이 함께 들어있던 편지는 그들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였다. “주인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 이들의 죽음이 충격을 준 이유는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고 자부하던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 여러 시민단체가 매년 추모제를 열며 이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일러스트=유현호
일러스트=유현호

하지만 이와 비슷한 사건은 그 뒤에도 계속 벌어졌다. 예컨대 2019년 성북구 다세대 주택에서 70대 노모와 40대 세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2021년 7월 5일, 강서구 화곡동의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강서구 일가족 3명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60대 어머니와 30대 아들, 40대 조카 등 한집에서 살며 힘겹게 생계를 잇던 이들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이 끊기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숨지기 직전 20만 원이던 월세를 10만 원으로 깎아 달라고 했다는 뒷얘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런 일가족 자살이 2019년 16건, 2020년 14건, 2021년 8건이나 발생했다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복지의 사각지대는 이렇듯 넓다. 하지만 ‘성북 네 모녀 2주기’ 등으로 검색해 봐도 아무런 자료가 없는 걸 보면, 송파 세 모녀와 달리 이들의 죽음을 기리는 단체는 없는 듯하다.

다른 일가족의 죽음에 소홀한 게 비단 시민단체만은 아니다. 2014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었던 한정애 의원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브리핑하다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그 이후 보내온 서면 브리핑에서 그녀는 “이번 사건이 안타깝다”며 ‘축소되고 왜곡되는 복지 정책’을 질타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후 발생한 다른 일가족 자살 사건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흔적은 없다. 심지어 2021년 발생한 일가족 3명의 죽음은 그녀의 지역구 (강서 병)와 밀접한 화곡동에서 벌어졌는데도 말이다. 강서구 사건의 파장이 송파 세 모녀에 미치지 못하고, 2021년엔 한정애가 환경부 장관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해도, 그녀의 선택적 감수성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의심도 든다. 혹시 이 사건들이 문재인 정권 시절에 벌어졌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한 것은 아닐까.

2022년 10월 29일, 대한민국에 커다란 비극이 벌어졌다. 핼러윈을 즐기려던 젊은이 156명이 희생된 것이다. 모든 사고가 그렇듯, 이번 사건에서도 ‘이랬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경찰이 공개한, 당일 112에 걸려온 신고 내역은 그날의 참사를 예견하고 있기에 더 안타깝다. “그 골목이 지금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거든요. 그니까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아요.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거 인파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 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사람들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막 지금 너무 이거 사고 날 것 같은데, 위험한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막 압사당할 것 같아서… 좀 부탁드릴게요.”

경찰은 왜 이 신고에 대응하지 못했을까. 지금까지 별 사고가 없었으니,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경찰의 부실한 대응을 지적하고, 행안부 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가짜뉴스를 동원해 가며 이 사태의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행위는 규탄받아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기는 바람에 이번 참사가 났다는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위원장의 SNS 게시물이나, “예전에는 폴리스라인을 치고 한쪽으로만 통행하게 했다”는 한국판 괴벨스 김어준의 발언이 대표적인 예다. 안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갑자기 달라지지 않는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2014년, “우리 복지제도가 참 민망하다”고 SNS에 썼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자신의 재임 기간 중 이와 비슷한 사건이 수십 건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하지 않았나. 이번 이태원 참사의 근본 원인은 코로나가 끝나 예년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린 탓, 지금 대통령이 문재인이었다면 이번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2017년 5월,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데는 그보다 세월호 사고가 큰 역할을 했다. 이게 직접적인 탄핵소추 사유가 된 것은 아니지만, 헌재의 탄핵 결정문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명시돼 있다. 문 전 대통령이 세월호 희생자 방명록에 쓴 ‘미안하다. 고맙다’가 일종의 자기고백이란 말이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래서일까. 좌파들은 이번 이태원 참사를 제2의 세월호로 만들려고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재난을 정치화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찾는답시고 9차례나 조사를 벌이는 바람에 많은 돈과 인력이 낭비됐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이 벌어졌다. 지금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애도하지 못하는 것도 그때의 후유증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유가족이다. 오랜 기간 좌파들에게 이용당한 나머지,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진상 규명을 외치는 분들이 상당수이지 않은가.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일은, 그게 어느 정권 하에서 벌어졌든, 그 자체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안전망을 고치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그분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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