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최근에 읽은 프랑스 소설 ‘안남’(安南)을 읽고 종교와 인간에 대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소설의 원저자는 크리스토프 바타유이고, 이 책을 번역한 이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화영 명예교수이다. 이분은 원제인 ‘안남’을 ‘다다를 수 없는 나라’라고 명명하였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베트남의 노동운동이 일어난 1787년의 “떠이썬 운동’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과 루이 16세의 시기를 배경으로 프랑스에서 베트남으로 파견한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베트남 우옌안의 왕자인 어린 칸이 피에르 드브레엔 주교와 함께 구원병을 요청하러 파리로 보내진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그곳 파리에서 죽고 세월이 지나 베트남의 우옌안의 왕조는 국가를 다시 찾고 안정을 찾는다. 프랑스 정권은 불안정한 상태라, 한 수도원 원장이 개인의 병사들과 선교를 위한 수도사와 수녀들을 베트남에 보낸다. 우옌안은 아들의 죽음과 늦게 도착해 도움을 받지 못함을 빌미로 그들이 항구에 도착 즉시 모두 죽인다. 그리하여 수도사와 수녀들은 혼비백산하여 밀림으로 들어가 숨는데, 그중에 도미니크 수사와 키트린 수녀는 멀리 북쪽으로 도망가 죽음을 면한다.
프랑스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가 무의미해졌다. 대부분의 수녀와 수도사들은 아시아의 베트남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끝내 죽음에 이른다. 도미니크 수사와 키트린 수녀, 두 사람은 고독과 신앙의 혼돈 속에서 좌절했다. 그리하여 소설은 다음과 같은 두 남녀의 죽음의 모습으로 끝난다. 1802년 여름밤 무장한 군인들이 두 백인 선교사를 찾아왔다. 문을 열자 두 남녀가 알몸으로 뒤엉켜 죽어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던 것이다. 군인들은 성직자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창백함에 감동했다.
나는 이작품을 통해 종교 위의 인간의 모습을 느꼈다. 그와 함께 우리도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풍습들을 얼마나 잃고 무감각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문화인류학적으로 변화된 디아스포라를 생각하게끔 한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가 무엇을 남기고 캐나다에서 사라질 것인가?
소설가 김훈 씨의 에세이 '죽음의 고찰'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죽으면 말 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속이 빈 조가비에 나는 무엇을 채워야 할까!
큐티 성경 공부 시간에 한 성도가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인간은 선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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