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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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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8-16 16:10

자명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말을 잘해 타인을 설득하고 그것을 비즈니스의 성공요소로 발전시키거나 관계를 더 좋게 만드는 기술 또는 처세술에 대한 책이나 강연 등은 수없이 많다. 근자, 말을 잘해 나를 돋보이게 하고 경쟁에서 앞서게 해 준다는 전문 학원들이 성행하는 중이다. 그러나 말하기를 절제하므로 얻게 되는 소양의 함양이나 품격의 차별화를 가르치는 책이나 강연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정말 말을 잘하고 폼 나게 나를 대변하는 말솜씨가 관계나 비즈니스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일까? 말은 그 사람의 인품과 가치를 가늠케 하는 행위는 맞다. 그러함에도 말을 많이 함으로 얻는 것 보다 잃는 점이 훨씬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넘치는 것은 부족함 보다 못하다는 경구가 있듯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하며 살고 있다. 그 말로 인해 오랜 관계에 금이 가고 부부의 연을 끊게 하는 원인도 따져보면 지나친 말로인해 상처가 되고 앙금이 쌓여 파국을 맞는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다른 의견이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이 침묵하고 그 순간의 단절을 택한다면 서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말의 단절을 통해 감정을 추스를 수 있고 그 공백은 상대의 진정성을 느끼고 오해를 풀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말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은 자기 방어이며 합리화를 주장하는 수단이 되기 쉽지만 침묵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최선의 방법이다.
 
전국에 있는 사찰들은 예외 없이 연례행사처럼 실시하는 것이 템플스테이다. 대중을 상대로 종교에 상관없이 행해지는 그 이벤트는 각 절마다 나름대로의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공통적인 하나는 묵언수행이다. 몇 번 참여해본 경험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좋았던 일정은 말을 하지 않은 며칠 간 침묵의 시간들이었다. 묵언을 통해 자신을 만나고 성찰하며 내적성장의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산사에 머무는 동안 예불에 참석을 요구하지 않은 점도 부담이 없었고, 묵상을 통해 비움의 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많은 참여자들 또한 가장 마음에 안식을 가질 수 있던 묵언수행이 가장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침묵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수단일 수 있고 또는 긍정의 신호를 보낼 수 있는 표현이다. 우리 부부가 좀처럼 부부싸움을 하지 못하는 것도 침묵 때문이다. 버럭 하는 나를 못들은 척 해버리거나 말없이 자리를 피해버리는 아내의 습관 때문에 내가 시도하는 전투는 늘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만다. 그 패배는 꼭 사과를 해야 마무리 되는 순서를 알면서도 나의 말실수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어떤 대응과 논리보다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응대는 침묵이다. 상대가 내 의견을 무시하는 처사 중 가장 화나게 하는 것도 대답하지 않거나 듣는 중 마는 둥 하는 행동이다. 그러함에도 맞장구를 치며 말이 거칠어지고 수위가 높아지는 감정이입의 많은 말보다는 침묵이 더 이롭다. 그러는가 하면 상대의 의견에 공감할 때 말없이 눈빛으로 대답하거나 잔잔한 미소를 짓는 침국의 표현도 좋은 수단일 수 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운 좋게 다른 동료들보다 일찍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이 대부분이어서 어떤 지시나 충고를 한다는 것이 여간 곤혹스러운 점이 아니었다. 그 고뇌의 시간을 통해 내가 찾은 묘수는 침묵이었다. '전쟁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는 싸움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는 문구도 큰 도움이 되었다. 자녀 또는 부하직원이 큰 실수를 했을 때, 그 어떤 질책이나 훈계보다 더 큰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스스로 잘못을 느끼고 반성하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다.
각 부서 책임자들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회사에 큰 금액의 손실을 입혔을 때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고역이었다. 그럴 때도 내가 택한 것은 침묵이었다. 실수를 한 직원을 내 방으로 불러 자리에 앉게 하고 차를 준비한다. 물이 끓여지면 적당한 온도까지 물을 식힌 다음 차를 우린다. 차를 마시기까지 대략 5분의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차를 우리는 데만 집중한다. 그러는 사이 그 직원은 안절부절 못하고 긴 형벌의 시간을 인내하고 있다. 자신이 왜 사장실에 불려 들어왔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그 직원의 일에 대한 능력과 됨됨이를 잘 알고 있기에 별다른 얘기가 필요 없었다. “이사회와 회장님께는 내가 설득하고 책임질 터이니 하루정도 쉬고 출근 하세요” 라고 말하며 대화를 끝냈다. 곰곰 생각해 보면 큰 과오 없이 회사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도 내 스스로 터득한 침묵의 습관이 아닐까 싶다.
 
침묵이 다 옳고 이롭다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침묵은 큰 무기가 될 수 있고 더 큰 오해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어떻게 하든 말을 하여 상대를 설득하고, 오해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때 그냥 침묵하거나 말을 아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면 그것은 회피이자 무책임이다. 의로운 행동을 보거나 대의를 위해 누군가 앞장서고자 할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비겁한 행동이자 방관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냉소적으로 결과만 보려하고 비평하는 부류들이다. 가정이나 직장, 단체모임에서 가장 힘들게 한 행위는 참여하지 않고 방관했으면서 결과만을 따지거나 뒤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건 침묵이 아닌 발전의 발목을 잡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침묵은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넘치는 정보는 생각을 엷게 하고,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 날 우리들에게 침묵은 분명 이로운 점이 더 크다. 모든 사물과 내적 아름다움을 보는 심미안은 성찰의 침잠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 성찰의 원천은 침묵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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