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애플파이 유감

권순욱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5-17 11:14

권순욱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김석범 성도 (81세/폐암 4기/아내 김경자 권사/써리 길포드 거주)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 김석범 성도님께서 10월 19일 (화) 12시에 소천하셨습니다. 장례 일은 확정되는 대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슬픔 중에 있는 유가족들을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오늘 아침 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소식이다.

김석범 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이 일주일 전 페이스톡으로 나눈 8분간의 통화였다. 그때 그는 중환자실에서 코에 산소 호스를 연결한 채,
“권장로, 애플파이를 먹고 싶은데 언제 갈 거야?”
“이제 빨리 일어나서 맥도날드에서 만납시다. 이번에는 내 차례인데…”
그러고 나서 곧 만나기로 하고는 전화를 끊은 것이 그와의 마지막 통화가 되었다.

그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87년 초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막 이민을 와서 비즈니스를 찾고 있으면서 뉴웨스트민스터에 주유소를 운영하는 친구의 가게에서 시간제로 일을 할때였다. 김석범 씨도 나보다 훨씬 전 에드먼턴서에서부터 그 친구를 알고 있었고, 그는주말이면 가끔 시간을 내어 주유소를 들르곤 하였다.

그 후로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 서로가 바빠서 만나지 못하다가 은퇴 후 골프장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연습을 마치고 나면 몇몇 연배들끼리 가까운 한국식당이나 맥도날드에 들러서 커피와 애플파이를 곁들여 한동안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헤어지곤 하였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서 다른 골프장으로 옮기게 되면서 자주 만날 수가 없게 되었고, 그래도 생각이 나면 주로 토요일 오후에 우리들의 추억이 담긴 맥도날드에서 만나 시름을 달래곤 하였다.

얼마 전 김석범 씨로부터 문자가 왔다. 오랜만에 애플파이 생각이 나서 연락하니 맥도날드로 나오라는 전갈이었다. 도착해 보니 그는 나보다 일찍 와서 커피와 애플파이를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길포드 몰 근처에 살고 있어서 차로 출발을 하였고 나는 집에서 가까워 걸어서 갔다. 그가 먼저 지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80이 넘고 보니 운전면허 갱신을 하는데 생각보다 까다롭다면서 몇 가지 팁을 일러 주었다. 그러나 나는 당시 2025년까지 면허증이 유효하였기에 그냥 참고삼아 건성으로 들었던 것만 같다. 평소와 같이 약 1시간 가까이 정담을 나누고 다음에 다시 보자는 약속을 한 채로 해어졌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서 교회 홈페이지에 그가 폐암 4기라며 환우 중보기도란에 업데이트가 된 것이다. 뜻밖의 소식에 놀라 양치질하던 내 손에 경련이 일었다. 그의 부인은 1부 예배 성가대로 봉사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일 년에 신년 주일,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예배에만 참석하는 편이어서 교회에서 만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맥도날드가 우리의 가장 유용한 만남의 장소가 돼주곤 하였는데…

교회에 연락하였더니 구역 담당 목사님께서 지금은 응급실에 계시기 때문에 코로나 기간 면회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고 며칠이 되어 카톡 문자로 연락했더니 곧 일반 병실로 가게 될지 모르니 그때 다시 연락하겠다고 해서 그날을 기다리던 중 아직은 중환자실에 있어서 직접 만나기는 어렵고 일반 병동으로 가면 만나자며 그날도 내게 커피와 애플파이를 먹고 싶다고 하였다. 문병 갈 친구를 떠올리며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어젯밤 12시 친구가 영면했다는 교회 홈페이지의 소식이 올라온 것이다.

그를 보내며 죽음에 대해 깊게 성찰해보게 된다. 지금까지 삶이 정해진 길을 따라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걸어온 길이라면, 죽음을 향해가는 남은 삶의 여정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여겨진다. 건강하게 살며(well-being), 아름답게 늙어가고(well-aging), 사람답게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well-dying)이 가장 이상적인 행복한 노년이 아닐까? 별거 같지 않은 하루가 지나가고, 새로 맞이하는 날이 다시 별거 같지 않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져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았던 지난 시간과 죽음으로 다가가는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 삶의 의미를 가득 담고 있는 오늘, 그리고 지금이라는 시간이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돌아보니 그와의 만남, 밴쿠버에서 만 35년 세월이었다. 참으로 우리가 걸어온 지난 그 세월의 걸음들을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노정이었다. 그동안 당신은 우리 모두의 빛나는 별로, 하늘의 큰 별처럼 멋지게 살아온 동지였소. 당신의 급별(急別) 소식 듣고 친구가 보내온 문자는 더욱 나를 아프게 하였다. ‘친구, 이 세상에는 착하고 좋은 사람들은 빨리 가고 나쁜 사람들만 남는 것 같아’ 그래, 당신은 참으로 더없이 멋진 친구였고, 그래서 우리는 당신과 함께함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소. 그동안 행복했다오! 친구야~ 이제 80년 그 거룩한 수고를 그쳤으니, 우리가 모두 당신에게로 돌아갈 때까지 평안히 안식하시라. 그동안 당신이 뿌렸던 씨앗들, 손수 거두지 못한 것들, 우리가 풍성히 거두어 가는 그날까지 부디 잘 계시라.

잠시 머무는 이 세상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오면 곧바로 여름이 오듯이 우리네 인생도 그와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웃들과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따스한 마음으로 대할 일이다. 무상한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 친숙했던 전화번호도 잊어야 하고 지기지우(知己之友) 백아절현(伯牙絶絃), 이 모두가 잊혀 갈 텐데… 친구 떠난 자리가 이리도 크단 말인가? 친구가 떠나간 지금 나의 마음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고통 없이 편안히 잠들기를 바라며, 오늘도 홀로 맥도날드에 와서 스몰 커피와 애플파이를 시켜 놓고 당신과 함께했던 그 테이블에 앉아서 정담을 나누었던 그날을 생각하며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소...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지나가나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 90:10)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프랙탈 2024.06.07 (금)
“오늘의 헤드라인 뉴스입니다. 어제 오후, 속칭 <버뮤다 연쇄살인>의 여섯 번째 희생자가, 다섯 번째 희생자 이후 불과 7주만에 발견되면서 사회를 다시 충격에 빠뜨린 가운데, 오늘 경찰은…” 고준호 씨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양손으로 뼈채 들고서 발라 먹던 고기를 잠시 내려놓고,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TV 리모컨을 집어올려 홈쇼핑으로 채널을 돌려 버렸다. 고기를 먹으면서 연쇄살인 어쩌구 하는 얘기를 듣기에 고준호 씨의...
곽선영
이민자의 특징 2024.06.07 (금)
  ‘동양의 도학은 약육강식을 부도덕이라고 하지만 서양의 철학은 이기는 자만이 생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을 인용한 것은 과거엔 이민을 운명, 팔자, 역마라 치부했다면 현재는 용기 있고 강한 자의 결단과 도전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의 방법은 초기엔 간호사나 재봉사 등의 기술이민이 주였다면 지금은 독립이민, 기술이민. 투자이민, 초대 이민 등 다양한 통로가 있다. 초기엔 전문직이 일반적이지 않았는데 이민의...
이명희
나물 캐는 아낙의 시선 피하여길섶 풀숲 속숨어 핀 샛노란 민들레해를 사랑하여환한 꽃 피우고임 온기 느끼며 길가에 서 있다가흰 나비 애무하고 떠나간 뒤날개 단 홀씨 한 다발 들고초원 지나갈 바람 기다린다오! 바람이여저 멀리 하늘 끝에 계신 내 임에게로Please! send seeds beyond the cloudsto the end of the sky
김철훈
강물을 보네깊어지며 흐르는 거역 없는 몸짓을 보네하루를 다 날아온 고단한 태양을 눕히고어느 산기슭 떠나온 나뭇등걸도 함께 눕히고강물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나를 보네팔랑이는 잔물결들 사이로 얼핏 설핏 보네정(精) 때 묻은 부모 형제 다 두고태평양 큰물 건너오던 반세기 전 그날비단결 검은 머리 스물여섯 살 새아씨여!세월을 보네꿈, 좌절, 인내들이 들락거린 한 세월을 보네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째 일어서면서고향 떠나 멀리 또...
안봉자
세 번의 외과수술 2024.06.03 (월)
우리는 지금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여 새롭게 나날이 달라지는 세상을 산다고 했더니 어느 날 주위를 살펴보니 100세 이상 사시는 노인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60세 환갑잔치를 요란하게 치르던 때도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환갑잔치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100세 잔치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도 아니다. 수명이 늘어난 것은 의료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덕분이다. 이런저런 수술로 죽을 사람이 죽지 않고...
심현섭
감자 꽃 향기 2024.06.03 (월)
“할무니, 왜 이쁜 감자 꽃을 다 따분당께라우?” “꽃을 따내 줘야 밑이 쑥쑥 든다고 안 그러냐?”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까. 할머니를 따라 밭에 나갔다. 할머니는 밭을 한 바퀴 휘 둘러보시더니 감자 밭으로 가 감자 꽃을 따기 시작했다. 꽃은 꽃이고 밑은 밑일 텐데 어린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니 어미가 감자 꽃을 참 이뻐했느니라.” 하시더니 눈물을 훔치셨다. 엄마가? 순간 흐린 기억으로 어머니가 감자 꽃을 바라보고...
최원현
오 월 찬가 2024.06.03 (월)
상큼한 산들바람 손등 스치고 지나가면나무를 건너뛰던 다람쥐 나도 보아 달라하고 작은 무도회를 연캐나다 구스 공연 햇살도 왜 나는 안 봐주냐며무릎에 앉았다 눈으로 보아도 들리는 님의 소리처럼
전재민
엄마의 빨랫줄 2024.05.27 (월)
그 시절 엄마는아침 설거지 마치고이불 홑청 빨래를 하곤 했다커다란 솥단지에 폭폭 삶아돌판 위에 얹어 놓고탕탕 방망이질을 해댔다고된 시집살이에마음의 얼룩 지워지라고부아난 심정 풀어보려고눈물 대신 그렇게 두드렸을까구정물 맑아진 빨래를마당 이편에서 저편으로말뚝 박은 빨랫줄에 널어놓으면철부지는 그 사이로 신나서 나풀댔다부끄러운 옷까지 대롱대롱 매달린울 엄마 늘어진 빨랫줄은 마음의 쉼터옹이 지고 구겨진 마음이훈풍에...
임현숙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